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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Sep 05. 2020

오빠를 만나다.

'때문에' 29년만의 짧은 만남

 무슨 연유에서 였는지,
그가 예전에 말했던 내용과 행동이 모두 달랐다.
그녀는 그의 태도에 아까부터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기 시작했다.

동아리 내에서 회장이었고,
그 직분에 맞게 어느 정도 권한이 그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지만,

그럼에도, 이번 일은 선순환적 연결선상에서 그의 역할이
중요했고, 그의 언행일치는 모두가 기대했던 바였기에,
그에 대한 그녀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데 그의 언행 불일치가 크게 작용했다.
그와의 불꽃 튀는 굵고 짧은 언쟁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더우기 그녀 또한 같은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이 상황에 대해 견딜 수가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 시작한 화를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얼굴에 꾹꾹 눌러 담은 채, 그에게 한마디 쏘아 부친다.

" 어이구, 오빠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됐잖아(약간의 비꼬는 말투로) 아까, 오빠가 그렇게까지만 하지 않았어도 ..."
라고 그녀의 말이 그의 귀에 채 닿기도 전에, 그의 공격은 무차별적으로 시작됐다.
전투 중  아껴 둔 전장의 총알처럼,
그의 말은 속사포처럼 그녀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수 분간의 언쟁이 벌어진 동아리실에는 분명 그와 그녀 만 있지 않았을텐데, 오롯이 그들만의 전쟁터로 남겨졌다.
언쟁의 불씨가 사그라질 때 쯤 주변을 살펴보니, 동아리실에 사람은 그와 그녀 뿐이었다.
누군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갔는지, 피했는지 혹은 애초에 구경꾼들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이미 주변의 인물은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서로가 내뱉은 날카로운 화살 같은 말들이 뇌리에 박혀서 생채기를 드러낸 영혼의 살갗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어색함과 서로의 밑바닥까지 드러난 모습에 화들짝 놀란걸까? 몇 분간의 정적이 흘렀고, 그는 떠나고  없다.

전장터에 덩그러니 남겨진 패잔병처럼 그녀만 홀로 남겨졌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사 결정적인 순간에 빠르게 판단하고 결론 내려 행동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그의 우유부단함이 이해되질 않았다.
그랬기에, 그들의 부딪힘은 예고된 결과였으리라.

우유가 바닥에 엎질러진 후에서야 비로소,
"아! 우유가 바닥에 쏟아졌구나~" 라고 한발짝 더디게 반응하는 아이처럼,
서로의 언어의 바다에서 사납게 부딪히고 난파되고 나서야,
그녀는 그와의 다툼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여러차례 그 상황을 재연하면서,
도대체 이 일이 무엇에  기인된 것인지, 골똘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에게 상처준 말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화가난 채, 투덜대기 시작했다.
"이유야 어찌됐든간에, 분명 그 일은 오빠의 잘못이기에 내가 그 부분을 확실히 꼬집어 지적한 것인데...
그게 그렇게 기분 나빴단 말이지.
내, 참! 자존심은 쓸데없이 세기만 해서, 잘났다. 정말~"
이런 마음의 소리를 내며, 그녀가 분을 식힐 때 쯔음....
곰곰히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말 덩어리가 수면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 오빠 때문에~~~" "때문에" 라는 이말에 그는 몹시 부르르 떨며, 그녀에게 생채기를 내며 언성을 높였던 것이었다.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때문에' 라는 단어.

당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그의 상황이 배제된 채,
오롯이 그녀의 말이 온전히 전달 되었다 해도, '때문에' 라는 단어가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의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며칠 뒤, 그와 그녀는 동아리실 인파 속 여러 시선들 사이로 어색한 눈인사를 건넸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스럼없이 다시 일상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어려운데 쉽게 화해했던 젊은날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서 지나갔다.

그 일을 겪은 후로,
'때문에' 라는 단어를 써야하는 순간이 도래할 때마다, 그녀는 순간 멈칫하곤 한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때문에라는 이 말을 꼭 써야 하는지?"라며 그 상황을 점검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때문에' 트라우마나 강박증이 아닌,  일종의 자기점검
혹은 자기검열 정도라고 해도 되겠다.




그녀가 KTX 역사 안으로 들어 와,
급하게 열차시간을 맞춰 오느라 두리번거리며,  
게이트 번호를 찾고 있는데, 5미터 전방에서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와 ~~~ ! xx야 진짜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진게다.
29년 전 '때문에'로 다퉜던 그 오빠였다.
그가 그녀 앞에 정지된 듯 하얀 미소를 띄운 채 서 있다.

"어머, xx 오빠!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다. 여기는 어쩐일이예요?"

29년만에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난다는 것은 실로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수분의 시간동안,
 29년 동안 배설하지 못한 여러 사연 모두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얼마나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느냐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기뻐하고 반가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나이 먹고,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쳤고,
 옛모습이 아직 남아 있어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이 모든 것 위에 반가움과 고마움과 행복이 버무려진 순간이었다.

"잘 지냈지? 어디에 살고?"
일상의 대화 속, 29년 전 오빠의 '때문에' 사건은 그녀에게 만 기억되는 해프닝 일지도 모른다.

그럴지언정, 그녀는 그에게 '때문에' 가 아닌 '덕분에' 잘 지냈어요라는 대답을 해 주고 싶었을게다.

"29년 전, 오빠와의 '때문에' 사건으로, 나는 '때문에' 와 '덕분에' 사이를 오가며, 그 단어를 아주 적절히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어요..."라고 말 해주고 싶었지만,

그에게 아마도 '때문에 사건'은 그의 기억 저편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서로 해맑게 웃으며, 옛이야기를 주고 받으니,
다시 29년전 대학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함께 공유했던 젊은 시절 기억들이 짧은 만남 후에 또 다시 긴 헤어짐이 교차되는 순간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마음 속의 파문을 일으킨다.

오로지 그녀에게 만 기억되는 29년 전 '때문에' 사건은 오늘 다시 그를 만난 '덕분에' 29년 전 기억을 오롯이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오빠! 이렇게 우연히라도 만나서, 정말 좋았어요. 잘 지내요! 그리고, 늘 건강하구요"
헤어지면서 건넨, 판에 박힌 이 말의 결이 고귀한 생의 쉼표처럼 아름답게 들린다.

고결하고 귀한 언어를 되찾아서 쓸 때마다,
 세상이 두 스푼 더 따뜻해진 느낌이다.





코로나 19로 세상의 풍경이 하루 아침에 달라졌다.
#덕분에챌린지 의 동기에 어떤 의견이나 이견도 덧붙히고 싶지 않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따뜻함에 더 많이 불을 쬐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일인이기에,
사회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타계하고자 하는 동력의 단어로 차용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제 소임을 다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수어


이 모든 것은 긍정의 힘에서 비롯되며,
서로가 서로를 챙겨야 하는 부채의식도 함께 가져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인생의 기본 아닐까?

      



코로나 19로 의한 수도권 방역은 앞으로 일주일 간 더  2.5 단계를 유지한다는 뉴스를 접하니, 마음이 골골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견뎌야하는 것을, 모두들 건강 잘 지키시길....

 2020.09.05. 토,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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