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예술가가 된 이유
회사에서의 하루가 끝나도, 내 마음은 좀처럼 퇴근하지 않는다. 회의실을 빠져나와 집에 들어서도, 오늘 있었던 대화, 처리하지 못한 업무, 그리고 내일의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줄곧 재생된다.
그럴 때면 나는 ‘정희’로 살아간다. 낮에는 회사원이지만, 밤이 되면 다른 삶이 시작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이모티콘을 만들고, 인스타툰을 그린다. 서로 동떨어진 일들을 병행하다 보면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냐", "언제 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내겐 오히려 이 시간들이야말로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마음이 붕괴되기 전에 나를 붙들어주는 작은 의식들. 하루에 8시간 이상은 직급으로 불리고 그 이후에는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린다. 그러다 보니 가끔 내 진짜 이름이 희미해질 때가 있다. 더 문제는 조직에 있을 땐 나보다는 조직의 분위기에 맞춰야 하고, 엄마일 땐 나보다 아이의 취향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면을 쓰게 되고, 나의 취향이 사라지게 된다. 나라는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 내 이름 ‘정희’를 전면에 내세워 그림을 그리고 내 생각을 또렷하게 만든다. 처음 그렸던 건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이 상황을 이겨내고자 인스타툰을 그렸다. 때론 핸드폰 화면에 비친 엄마 사진을 그려보기도 했다. 병실에서 내가 그린 그림들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낯설고 외로운 감정들을 엄마와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생각을 밖으로 꺼냈다. 이겨낼 수 있었고 조금은 담담해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도무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 때면 다시 조용히 종이 위에 낙서를 시작한다. 엄마의 건강이 걱정돼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천천히 엄마의 얼굴을 따라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라도 내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아무리 엉성하고 쓸모없는 낙서일지라도, 그것을 종이에 남기는 순간 마음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다.
3년 전, 회사에서 갑자기 업무 주제가 변경되었을 때가 있었다. 내가 애정을 갖고 있던 분야가 아니라 일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식었고,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 질려가기 시작했다.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날.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어떻게’ 쉴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회의 시간 중 연습장 한 구석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단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숨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조용히 흘려보낼 통로가 필요했다.
도망은 생각에서 그치지 않았다. 결국 몸도 도망쳤다. 라오스, 스페인, 이탈리아… 지루한 현실에서 최대한 멀리 떠났다. 낯선 도시의 햇살과 골목,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풍경은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들었다. 여행지에서의 감정을 붙잡고 싶어 영상으로, 사진으로, 그림과 글로 기록했다. 그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회사의 시간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내 삶의 저항이었다.
그렇게 나는 퇴근 후에도 다시 또 일하는 대신, 몰두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잘 그리지 않아도, 선이 삐뚤 해도 괜찮았다. ‘정희’로서의 시간은 성과를 평가받지 않았고, KPI도 없었다. 그저 나의 시선이 담긴 그림에 스스로 감탄하거나 실망하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갔다.
가끔은 도망이라고 믿었던 몰두가, 결과적으로는 나를 가장 단단히 붙잡는 힘이 되어 주었다. 회사에서의 일은 늘 나를 채찍질했고, 나를 점점 기능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성과를 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미끄러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런 틀 안에서 나는 조금씩 마모되고 있었다.
퇴근 후의 나는 조금 달랐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손에 펜을 쥐었고, 생각 없이 선을 그었고, 종이에 감정을 눌러 담았다. 그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었다. 말 대신 꺼낸 울음이었고, 너무 조용해서 스스로도 몰랐던 외침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피드백 메일에 속이 뒤틀린 날, 그림을 그렸다. 말이 안 통하는 아기가 왜 우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때 종이에 동그라미라도 그렸다. 종이에 내려앉은 선과 색은 말보다 더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그림은 나만의 ‘퇴근길’이 되었다. 누군가는 퇴근 후 넷플릭스를 켜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겠지만, 나는 나의 아이패드와 작은 책상, 그리고 조용한 라디오가 있는 그 방으로 들어간다. 마음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그곳. 거기서야 비로소 나는 쉬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회사가 끝나도 마음은 퇴근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그 마음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안다. 퇴근하지 못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림 속으로 천천히 데려간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견딘다.
지금도 회사 일은 여전히 벅차고, 아이는 울 때마다 여전히 당황스럽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안다.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그림이 잘 나오지 않아도, 인스타툰 반응이 없어도, 그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 준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오늘도 회사가 끝나고, 정희로 퇴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