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전시 부스 한 켠, 유모차와 굿즈 박스가 나란히 놓여 있다. 아기의 짐과 나의 작업물이 한 자리에 놓인 이 풍경은 마치 나의 현재를 대변하는 장면 같다. 유모차에는 기저귀, 물티슈, 이유식, 장난감이 담겨 있고, 굿즈 박스엔 내가 만든 메모지, 엽서, 드로잉북이 담겨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 두 개의 짐을 나란히 들고 이동하는 일상이 계속된다.
전시 참여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육아와 창작이 공존하는 일상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은 충돌을 만든다.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하루 계획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하고, 작업 도중 불쑥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안아 달래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틈을 이용해 붓을 들고, 펜을 움직인다. 내가 원하는 장면은 늘 그 아이와 함께한 찰나 속에 있다.
요즘의 그림 주제는 훨씬 소소하다. 과거에는 연출을 고민하고 기획을 정리하며 큰 틀의 작업을 이어갔다면, 지금은 일상의 작은 틈과 장면들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아기와 산책 중 마주친 고양이, 먹다 남은 과일껍질, 아이가 흘린 물 한 방울이 그림이 된다. 그 장면들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정확히 설명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아이를 안고 스케치북을 펼치고,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후다닥 아이패드를 꺼내 그림을 그린다. 처음엔 집중이 되지 않았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쪼개 작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10분이 하루 중 가장 나다웠다. 오히려 이전보다 빠르게 구도가 잡히고, 색을 입히는 손길에 주저함이 사라졌다. 고민이 길었던 시절보다 훨씬 명확한 감정으로 그림이 완성되어 갔다.
아이를 낳은 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하루하루 새로운 감정과 고민이 생겼고,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이미지로 남기고 싶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 가만히 앉아 오늘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쌓여갔다. 이건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보여주고 싶은 기록이자, 지금의 나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아이가 "이건 나랑 있을 때 그린 거야?"라고 물을 날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한 장을 그린다.
창작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도 바뀌었다. 한때는 작업실을 갖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거실 한 켠, 아이 옆, 주방 테이블 위가 작업실이 된다. 제약이 생기면 자유가 사라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 제약 속에서 더 넓은 상상이 피어났다. 아이를 위한 그림책 콘셉트를 떠올리기도 했고, 가족 행사를 위한 미디어아트를 구상하기도 했다. 내 창작 세계는 지금 이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다.
때로는 작가라는 말이 어색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육아로 보내고, 피곤함에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한 장 그리는 나를 '작가'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림이 없으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매일을 붙잡는 원동력이 되었다. 작가란 어떤 장소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고 기록하느냐의 문제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유모차와 이젤 사이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아이를 안은 팔과, 펜을 쥔 손. 이 두 개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때론 버겁고, 때론 흐트러지지만, 그 사이에 내가 있다. 완벽한 균형은 없을지 몰라도, 오늘 내가 본 아름다움을 내 방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마음이 있다면, 나는 지금도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artlib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