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한 시간, 전시를 준비한다

퇴근후 예술가의 아침 루틴

by JH

나한테 아침 시간은 하루의 나침반이다. 가장 에너지가 많고, 정신이 말똥말똥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가장 많은 업무를 하기도 하고, 생각이 가장 선명하다. 오랫동안 창작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시간을 지친다. 아침에는 내가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차례차례 하곤 하는데, 가장 먼저 주로 그림을 그린다. 전시 준비를 할 때는 아이패드 드로잉을 주로 하지만, 틈날 때마다 전시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회의 시간에 집중이 잠시 흐트러질 때 그린 낙서가, 아침 시간의 아이패드 드로잉과 연결되어 더 많은 그림을 그릴 때도 있다.


엄마가 된 이후로는 조각난 짬짬이 시간을 이어 붙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침 시간의 한 덩어리와 하루 곳곳의 작은 조각들을 모아 전시 준비를 이어가는 셈이다. 이렇게 흩어진 시간을 모으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나만의 작업 리듬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침에는 가장 에너지가 왕성한 시간이어서, 생각을 해야 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이모티콘 작업을 한다면 어떤 메시지로 어떤 포즈를 할지 구상하는 일을 오전에 하고, 저녁에는 채색 작업을 위주로 한다. 출근 한 시간 전에는 늘 페어 준비를 했었는데, 그 시간이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작업물이 내 의지대로 나타나니까 뿌듯했고, 혼자 작업해서 외로울 때는 회사에 일찍 가서 동료를 만나는 것도 좋았다. 이 짧은 시간 안에서 느낀 성취와 교류는 하루 전체를 밝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예전에는 아침 한 시간이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다면 엄마가 된 이후 시간을 잘라서 쓸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타기 전 대기하는 시간이나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을 활용하는 식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반대로 지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양한 순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콘텐츠가 풍성해질 수 있다는 점도 크다. 이렇게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도, 아침 시간은 여전히 내 작업의 중심이었다.


엄마, 직장인, 학생이라는 세 역할을 동시에 완벽히 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때론 뭐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것 없이 미안하고 찝찝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간신히 잡아놓은 루틴을 건너뛰기도 한다. 그래도 꿋꿋이 아침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모두 잘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대신 위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기 등원은 내가 시키되, 하원은 남편에게 부탁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면서 비로소 아침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확보할 수 있었다.


아침마다 내 발걸음은 빠르다. 조용한 자리에 앉아 서둘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을 하나 시키고 앉자마자 바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나는 날마다 연필로 글자를 써가며 작업을 시작한다. 유난히 작업이 잘 풀린 날도, 잘 안 풀린 날도 없다. 물론 건강이 안 좋아서 고생했던 적은 있지만 아주 극적으로 일이 잘되거나 잘못된 적은 없다. 대체로 작업은 잘되든 안 되든 앞으로 나아가 진행하는 편이고, 마음에 안 들면 그다음에 다시 진행하면 된다. 이 꾸준함이야말로 아침 시간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다.


오전 7시, 창밖으로는 셔틀버스에서 내린 회사 사람들이 보인다. 아기를 낳은 뒤 아기가 감기에 걸리면 늘 나까지 몸살이 오곤 한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고 얼굴이 창백해진다.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최소한 해야 할 거리라도 생각해 메모장에 적어둔다.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기면, 다시 컨디션이 돌아왔을 때 흐름을 쉽게 이어갈 수 있다.


창밖의 회사 사람들을 보면 ‘나도 빨리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라는 조급함과 동시에 ‘나만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이 두 감정이 번갈아가며 나를 자극하고, 결국 다시 펜을 잡게 만든다. 조급함은 속도를 높이고, 안도감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아침 한 시간, 그 안에서 나는 하루의 리듬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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