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무엇일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전시회에 작품을 거는 사람? 아니면 예술 대학을 나왔거나 누군가로부터 ‘예술가’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사람?
나는 여전히 이 질문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를 자꾸 들여다보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한 아이의 엄마다. 퇴근 후 육아와 가사로 하루가 끝나버리는 삶을 산다.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나는 밤마다 아이가 잠든 사이 아이패드를 켜고 그림을 그린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몇 줄을 그리면서도, 그것이 오롯이 나의 시간임을 느낀다.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내가 누구였는지를 상기하고, 오늘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붓을 든다. 그렇게 질문은 이어진다. 나는 왜 예술가가 되고 싶은 걸까? 아니, 나는 정말 예술가가 되고 싶은 걸까? 어쩌면 이미 예술가인 건 아닐까?
내게 그림은 표현이자 기록이다. 머릿속에만 가둬뒀던 생각을 꺼내 보이고,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감정을 쓸어 담아 선으로 펼쳐내는 일. 그건 단지 결과물로 보이는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내가 오늘 하루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남들이 보기엔 낙서일지라도, 나에게는 감정의 진폭이 묻어 있는 기억이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던 순간들을 붙잡기 위한 애쓴 기록이다.
육아를 하며 하루하루가 쪼개지고 흘러가는 지금, 내게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내 아이의 낮잠 시간,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안, 남편을 기다리는 카페 구석 자리에서 그리는 10분이 쌓여 한 장의 작품이 되고, 그 시간들이 쌓여 내 삶의 결을 만들어준다. 하루 10시간을 몰입해 그린 작품도 있겠지만, 단 10분이라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건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이 내 편이지는 않다. 회사 업무에 치이고, 아이가 아플 땐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다. 뭔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작할 자격도 없는 것 같은 완벽주의가 나를 자꾸만 멈춰 세운다.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설수록 도화지를 여는 데 더 오래 걸린다. 낙서로 시작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만큼. 애정을 가진 무언가일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그 마음은 오히려 그림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그래서 때때로는 그냥 졸라맨 하나라도, 직선 하나라도 그려본다. 손에 힘을 빼고 그린 선 하나가 오히려 마음을 풀어줄 때도 있다.
한 번은 그림을 배우던 시절, 30일 동안 매일 한 장씩 드로잉을 그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하루 한 장은 쉬워 보였지만, 30일 내내 그린다는 건 꽤 어려웠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덕분에 나는 완벽에 대한 미련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매일매일 ‘무엇이든 그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형태가 어긋나고 비율이 이상해도, 지우고 고칠 시간 없이 마감이 다가오면 그냥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어진 작은 ‘허용’ 속에서 매일 하나씩 그림이 늘었고, 그중에는 언젠가의 작업으로 확장될 씨앗 같은 스케치도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야 더 많이 그릴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시간이었다.
그림을 반복해서 그린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예전엔 같은 걸 또 그리는 건 지루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게 과제로 내준 ‘한 달 동안 자신의 왼손을 매일 그려보라’는 말 이후, 나는 매일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됐다. 같은 손인데 매일 다르게 보이고, 보지 못했던 주름, 손가락의 각도, 피부의 미묘한 굴곡이 새롭게 보였다. 결국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제대로 보기’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림뿐 아니라 내 아이를, 내 가족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에도 닿아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결국 ‘보다, 들여다보다, 느끼다’의 다른 표현 아닐까. 예술가란, 그것들을 멈추지 않고 매일 실천하는 사람 아닐까. 누가 허락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평가받지 않아도, 나의 시간과 감정과 삶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표현하려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지금도 충분히 예술가다.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고, 표현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분명 예술가가 되어간다고 믿는다.
그림은 잘 그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자주 보고, 관심을 가지고, 느끼려는 사람의 것이다. 꼭 무엇을 멋지게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세상을 눈여겨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그 마음만 있다면 이미 우리는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은 선과 감정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것을 사랑하며, 다른 장면을 기억한다. 같은 하늘을 봐도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이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떠올리는 기억도 서로 다르다. 바로 그 다름이 예술의 시작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과 감정, 언어와 리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그는 이미 예술가다.
특히 지금처럼, AI가 너무도 쉽게 창작을 흉내 낼 수 있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표현은 더욱 절실해졌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럴듯한 시를 쓰고, 멋진 그림을 그리고, 정교한 음악을 만든다. 하지만 AI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울어본 적이 없고, 품에 안아본 적이 없으며, 어떤 장면을 두고 망설이며 기억해본 적도 없다. 그들의 표현은 통계에 가깝고, 우리의 표현은 체온에 가깝다. AI가 표현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살아낸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 계속해서 예술가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 쉽게 창작이 가능한 이 시대에, “굳이 내가 예술을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차서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신이 표현해야 한다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당신만의 시선, 당신만의 삶, 당신만의 감정이 있다면, 그건 이미 표현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표현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그림이 아니어도 좋다. 글이든, 노래든, 일기 한 줄이어도 괜찮다.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이고, 지금 여기를 지나가고 있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다. 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 잊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표현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내가 그리는 것은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오늘의 나 자신에 더 가깝다. 기억하고 싶은 감정, 지나치고 싶지 않은 장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이야기들이 나의 그림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림은 내 마음의 감도를 유지하는 일이다. 하루를 살아내며 흐릿해진 나의 감각을 다시 조율하고, 무뎌진 나 자신을 다시 만져보는 시간이다. 거창한 의도나 대단한 실력 없이도, 나는 오늘도 그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어쩌면 그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가 예술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 매끈하지 않고, 틀어지고, 삐뚤어진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살아 있는 장면’을 이룬다. 그 안에 감정이 있고, 시선이 있고, 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표현이다.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반드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고, 나를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결국 예술가가 되어간다. 그것이 서툰 낙서이든, 단 몇 분의 스케치이든,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은 예술가라는 이름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히고,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각자의 시선과 감정을 잃지 않고 지켜내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artlib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