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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Jul 29. 2021

나를 위해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 아닌 나를 위해서

회사에서는 기획팀원으로 일한 지 어언 10년째이다. 기획팀의 업무는 임원이 의사결정을 하도록 지원을 하거나 KPI 설정, 로드맵 관리, 때때로 서비스를 기획하는 업무를 한다. 어떻게 보면 한 조직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를 하고 말 그대로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하부 조직 팀장들을 도와주면서 각종 안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조용히 뒤에서 누군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뒤에서 묵묵히 일을 한다는 건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아무리 보고서를 고민하여 만들어도 성과는 오롯이 내 몫이 아닐 수도 있다. 반대로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하여도 전적으로 내가 책임을 지는 구조는 아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성과와 책임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 성과나 책임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재주는 내가 넘고 타인이 책임을 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자주 꿈틀거릴 때면 천천히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내가 한 만큼 인정을 받고 싶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면 내 작업을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는 내 작업은 오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내가 전면에 나서서 오롯이 진행한 만큼 칭찬을 받거나 불평을 받는다. 내가 책임을 지고, 내가 성과로서 보상을 받기에 더 열심히 열중하게 된다. 내 작업물이 칭찬을 받으면 작업물이 나로 투영되어 마치 나 자신이 칭찬을 받는 것 같아 행복하다. 반대로 비판을 받으면 지원을 하는 업무를 할 때보다 더 크고 아프게 다가온다. 그래도 온전히 내 이름 석자가 나가는 작업이기에 느껴지는 책임감이 다르다. 




퇴근 후 그림을 그리는 건 자기만족일 수 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시간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 적극적으로 스타일을 바꿔보고 내 그림을 알리기 위해 마케팅도 적극적이다. 이 작품과 시간, 결과까지도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드니 몰입의 농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나를 위한 시간'은 소중하고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이유는 그 일에 대한 주도권과 책임감 때문이다. 지원을 하지만 결과도 동일하게 느끼고 나눌 수 있다면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내 마음가짐을 돌아보며 회사의 일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수많은 업무들이 있지만 우선순위는 단연 '나의 책임'이 돌아가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야만 나도 집중할 수 있고 동기부여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지원부서였다면 정말 싫을 것 같아. 계속 누군가를 위해 도와줘야 하잖아."


문득 내가 담당하는 팀 리더가 이런 말을 꺼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누군가를 위한 지원일 수도 있고 나를 위한 투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 일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성과도, 책임도 내 것이 아니기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큼 최선을 다하는 건 어렵다. 도와주는 사람에게 나만큼 열심히 하라고 한다면 그건 공허한 외침과 욕심일 뿐이다. 반면 '이 일은 너를 위한 너의 일이다.'는 좀 다르다. 함께 성과와 책임을 나누게 되면 '내 일'이기에 태도가 달라진다. 나의 포트폴리오가 쌓여갈 수 있기에 좀 더 관심을 지니고 들여다본다. 그래서 회사든 개인이든 '나를 위한 프로젝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를 먼저 생각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집중하는 밀도는 단연 높아진다. 내가 선택했고 집중한 나의 일이 '나를 위한 일'이 되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결국 나를 위한 일이 성과가 높아지고 성과가 높은 일은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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