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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을 위해 나를 숨겼다.

불안과 책임감 사이, 엄마였던 나의 이야기...

by 미소마을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안 그런 척,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늘 불안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불안이 극에 달할 땐
고성이 오가거나 눈물이 터지는 날도 많았다.
그 불안이 어디서 온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불안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미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단 사실이다.
뜨거운 걸 쏟을까 봐 여름에도 찬 음료를 마시고,
아이가 춥지는 않을까, 더운 건 아닐까,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짓눌러 왔다.

자유롭고 감성적이었던 나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고,
세상을 다 알지 못한 채 ‘엄마’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부족해 보였고,
그래서 더 조급했다.
내가 부족한 만큼 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조급함과 책임감을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스스로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불안은 조용히 나를 집어삼켰다.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춥지는 않을까, 덥지는 않을까,
감기에 걸려 고생하지는 않을까.
그 적은 가능성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수백 갈래의 상상으로 퍼져나갔다.



결국 나는 그 불안을 ‘사랑’이라 믿고 아이를 통제했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사춘기에 들어섰다.
그 아이의 반항과 나의 불안은 매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른다.
말수가 줄고, 방문이 닫히는 시간이 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면
“나중에 얘기해요.”
“엄마,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처음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절당한 느낌, 밀려난 느낌,
무언가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노력했다.
설득하고, 타이르고, 다그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예상 밖이었다.



“엄마, 그건 내 인권이에요. 왜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
“엄마가 날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나한테는 내 방식이 있어요.”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아이를 걱정했던 마음이
아이에겐 통제처럼 느껴졌다는 걸,
그 순간에서야 처음 실감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 울고,
아이를 위해 화냈고,
아이를 위해 애쓰며 나를 지워왔는데
아이에게는 그것이 감옥이었나 보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불안은 정말 아이를 위한 걸까, 아니면 나 자신이 두려운 걸까?’

불안은, 사랑과 책임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내 안의 결핍을 채우려는 또 다른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 불안의 소리를
잠시 무시해 보기로 했다.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건
사랑이지, 감시가 아니니까.
내가 아이에게 되고 싶은 건
울타리지, 벽이 아니니까.



불안을 내려놓는 건
아직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를,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엄마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보다
엄마여도 놓아줄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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