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엇갈림...모성애의 끝은 정말 배신일까?
“엄마가 제일 좋아!”라던 딸이 이제 “엄마 미워!”라고 소리친다.
그날, 내 마음도 같이 닫혔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나’를 찾기 시작했다.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졌던 나,
사랑받던 엄마에서 미움받는 엄마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 배신감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붙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내 딸은 내 편 이였다.
말도 못하고 걸어다닐 시절
가구를 잘못 시켜 취소를 한 적 이 있는데 배달원이 그 소식을 모르고 두고 가다가
취소해서 가져가시라고 실랑이를 벌인적이 있다.
평일 낮이라 집안에는 나와 돌이 채 안된 우리 딸만 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화가 났는지 나에게 화를 버럭 내기 시작했다.
"배송을 취소 했으면 연락을 했어야지 참 "
나는 버럭 화를 내는 소리에 무서워 얼음이 되었고,
그 큰 소리를 듣고 아장아장 걸어나와 말도 못하는 우리 딸이 옹알이로 내 대신
그 아저씨에게 따지듯이 옹알 옹알 말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그렇게 옹알이로 따지니 그 아저씨는 그냥 가버리셨다.
나는 돌도 안된 우리 딸이 멋져 보였다.
그렇게 엄마를 지켜내던 딸이 였는데...
그 이후로도 항상 딸은 내 편이였던 것 같다.
항상 나도 좋아해줘 사랑해줘를 이야기 하고 엄마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 딸에겐 30개월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생겼고
남동생은 7살 까지 매일 매일 울었다.
말도 느려 의사소통도 서툴고 매일 울기 일쑤니 어린이집에서는 밥만 먹고 데려가라고
전화도 많이 왔었다.
나랑 있다고 매일 우는 아이가 달라지진 않았다.
항상 관심을 줘야했고 사랑을 줘야했고 달래줘야했다.
그래서 딸에 입장에서는 나를 짝사랑 했다고 느꼈을 것 이다.
그 시절 내 사진을 보면 둘째 아이의 예민함에 시달려 입술은 물집이 잡혀서 터져 있고,
예민함을 달래느라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서 깡말라 있었다.
딸은 그런 엄마를 위로 하고 자기의 뽀로로 가방에 동생 기저귀와 우유병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엄마를 돕고 싶어했다.
자금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 시절 여유가 없어 충분히 큰 아이의 사랑을 못 느낀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이 아이 만큼은 사춘기 없이 항상 평생 엄마 편이 될 줄 알았다.
"엄마가 제일 싫어"
초등 고학년이 된 우리 딸은 변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지고 친구가 좋아진다고 했다.
이제 둘째도 어느정도 발달이 올라와서 편안하게 아이들과 친구 처럼
잘 지낼 일 만 남은 줄 알았는데..
딸에겐 사춘기가 와버렸다.
우리는 엇갈리는 사랑을 하고 있었나보다.
남동생을 안고 왔을 때 부터 나는 딸의 사랑을 배신했을지도 모른다.
애써 웃어 보이며 아기야 안녕을 했던 우리 딸
우리의 사랑은 계속 엇갈려 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글을 쓰면서 생각해 봤다.
이제 나는 아이를 사랑해 줄 준비가 되었는데...
아이는 사춘기를 만나면서 우리 사랑은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