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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Dec 29. 2020

당신은 비가 갠 뒤 햇빛을 다시 보았나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영화 리뷰

장맛비와 함께 길을 잃은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20살부터 시작된 소설가의 꿈을 잃고 오랜 시간 비 속에서 사랑, 가족 등 모든 것을 빗물에 흘려보낸 45살 남자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막 움트기 시작한  달리기를 좋아하던 17살 소녀이다. 장마와 함께 찾아온 먹구름에 의해 달릴 방향을 잃고, 헤 메던 중 같이 비를 맞고 있으면서도 밝은 웃음으로 친절을 베풀어준 남자를 만난다. 빗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오던 소녀가 그 남자에게 전한 고백.


제가 점장님을 좋아해요.




과연 그 둘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비가 갠 뒤에도 햇빛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짧은 이야기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영화의 내용이다. 영화적 노이즈 마케팅으로 45살과 17살의 사랑 이야기를 먼저 내세웠지만, 그건 크나 큰 착각이다. 둘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빛 한 점 안 보이는 먹구름 가득한 곳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배우며, 잠시 가려진 꿈이 햇빛을 다시 맞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빗물처럼 투명한 색감과 빗물이 바닥을 두드리는 리듬을 고대로 옮겨 놓은 OST가 매력적이지만, 그보다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당신도 비 속에서 길을 잃어본 적 있나요? 아님 계속 그 비 속에서 헤 메고 있나요?’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는가? 설명할 수 없는 내면과 현실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원하던 꿈을 놓고 현실에 급급하게 사는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운 날. 어쩔 수 없이 꿈 앞에서 몰락할 수밖에 없던 날. 급하게 사라진 나의 모든 것들을 급급히 채우고 싶어 다른 반짝이던 걸 찾던 날. 인생에서 마주했던 수없이 아픈 날들. 영화에서는 그 모든 날들을 비에 비유하여, 그들의 내면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난 고작 21살밖에 안된 나이지만, 두 사람의 아픔 모두 다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꿈을 이루고 싶지만, 글로는 제 밥벌이하지 못할 것 같은 걸 알아, 영상으로 눈길을 돌렸던 나. 하지만, 쉽사리 놓을 수 없던 펜. 발걸음도 떼지 못하거나 결말이 나지 않아 멈춰버린 글들이 수두룩하게 서랍 속에 먼지가 쌓이고 있다. 달리기를 좋아하던 17살의 소녀인 타치바나 아키라가 육상부의 에이스였지만,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다시 달리지 못할 걸 알고 단념했던 모습과 다른 반짝이는 무언가 였던 점장 콘도 마사미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아픔. 그리고 끝까지 놓을 수 없지만, 여전히 책상 앞에 놓인 빈 원고지와 펜을 미련이라 부르던 콘도 마사미의 아픔까지 닮았다고 느껴졌다. 괜 시리 마음 한쪽이 아려 왔다. 원작이 만화여서 그저 킬링 타임용 영화라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다고 느껴질 만큼.



영화 속 콘도 마사미의 친구이자 막 소설가가 된 치히로는 콘도 마사미가 미련이라고 부르는 빈 원고지와 펜을 집착이라고 말해줬다. 자신도 미래를 알 순 없어서 두렵지만, 하지만 소설이 너무 좋다고. 그 대사를 들은 순간, 콘도 마사미도 나도 깨달았다. 결말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그냥 좋아해 보는 걸 조금씩이라도 발을 내디뎌 보자고. 이러한 깨달음은 곧 타치바나 아키라에게 전해져 그녀도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보자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내가 짐작하는 건데, 영화 속에서 콘도 마사미를 향한 타치바나 아키라의 사랑은 그가 비바람이 쳐도 놓을 수 없던 미련을 놓지 못하는 용기를 동경한 게 아닐까. 달리기의 꿈을 애써 덮어둔 채 다른 것을 찾아 헤 메이는 텅 빈 눈에서 그의 용기를 발견하고,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제가 점장님을 좋아해요’는  

‘저도 당신처럼 비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고 싶어요.’라는 그녀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원작이 만화에서는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햇빛은 그 두 사람을 비추며 열린 결말로 끝난다. 두 사람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성장이 아닌 다시 절망 속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성장이라 말하는 영화가 우리에게 참으로 살가운 위로를 해준다.



잠깐 지나갈 소나기 속에서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장마 속에서 당신은 흠뻑 젖을 수 있다.

추위에 덜덜 떨어서 빨리 비가 그치길 바랄 수도, 아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빗 속에서

우산도 없이 한 참을 서있을 수도 있다.


고통스럽고 슬픈 날들이 종종 찾아오는 인생이란 날씨 속에서

난 당신이 비 속에서 아픔을 삼키지 않고 다 게우고 토해내며,

비가 그친 뒤의 햇살을 맞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비가 갠 뒤 햇빛을 다시 보았나요?


-공구공오 드림.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OST

(2) Aimer 『Ref:rain』MUSIC VIDEO(5th album『Sun Dance』『Penny Rain』2019/04/10(水)2枚同時発売)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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