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33

절강 소흥-노신의 고향

중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산,

한 명의 대작가에 그치지 않고

격변기를 온몸으로 살아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사상가이자 혁명가이기도 한 노신,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은 그를 중국의 민족혼이라 부른다.


상하이는 노신이 말년을 보내고 별세한 곳이다

황포구 노신공원(예전엔 홍구공원으로 부름)에 그의 묘가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살던 집에서 멀지 않아 산책삼아 자주 갔다.

특히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하고 흔들릴때 그의 묘 앞에 섰다.

거기서 몇미터 떨어진 곳은 또한

우리의 윤봉길 의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폭탄을 던졌던 의거의 현장이다.


중문학을 전공한 이들에게 노신은 하나의 거대한 봉우리다.

나 역시 노신을 흠모하고 동경했다.

학교 앞 정문에서 139번 버스를 타면 종점이 노신공원이다.

자전거를 타고 간 적도 많았다.

그의 묘소에는 늘 신선한 꽃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꽃대신 담배를 올려놓곤 했다. 내가 좋아하던 중남해 담배를.


자, 상하이에서 버스로 3시간,

절강성 소흥시는 바로 노신의 고향이다.

상하이에서도 노신의 흔적을 짙게 느낄수 있지만,

노신을 흠모한다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소흥엔 가봐야 할 것 아닌가.


강남땅 소흥도 물의 도시다.

항주에 서호가 있다면 소흥엔 동호가 있고

도시 전체에 물길이 흐른다.

오봉선이라는 이름의 나룻배를 타고 한가로이 소흥의 물길을 따라가면

그 또한 작지 않은 도락이다.

소흥은 노신 뿐아니라

우리도 사랑해 마지 않는 대 서예가 왕희지와

중국인들이 사랑한 정치가 주은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소흥을 거닐다보면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배출한 역사의 거인들을

다시 되새기며 연신 감탄을 하게 된다.


소흥하면 또 빼놓을수 없는 한가지가 있는데

바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가진 황주,

즉 소흥주다.

애주가들이라면 소흥주를 모를수 없을 텐데

어느 한가한 객잔에 들러

한잔 넘기면 기가 막힐 터이다.


다시 노신으로 돌아가서

소흥의 노신고거, 즉 노신이 태어나 어릴적 살던 고택은

매일 전국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나 단체 관광객들로 붐빈다.

그의 뜨거운 애국혼은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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