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 온주
상하이에서 박사유학을 했던 나는
유학 기간 동안
가끔 시간을 내어 인근의 강소성, 절강성을 좀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도록 여러 곳을 다양하게 다녔으면 더 좋았겠다 싶지만
당시엔 또 그게 그리 생각처럼 되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졸업하고 나서
방학을 이용하여 여기저기 구석구석 더 다니게 되는 것 같다.
절강성 역시 전형적인 강남지역의 모습을 보인다.
물 많고 땅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하다.
절강성에서 가장 먼저 가본 곳은 역시 항주다.
항주의 서호는 여러번 언급했으니 패스하고
오늘은 절강의 남부도시 온주에 대해 좀 얘기해볼까 한다.
온주는 특히 상업과 상술이 발달한 곳으로 이름나 있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
특유의 빼어난 상술로 인해 온주 사람들을
중국의 유대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온주에 가게 된 인연은 유학시절 알고 지낸 사람에 기인한다.
유학 3년차인 2003년 가을쯤이런가
슬슬 논문에 대한 틀을 짜가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즈음이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붐비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알게된 귀여운 여학생,
그 친구의 고향이 절강성 온주였다.
정규 학부생이 아니라 1년인가의 특별과정을 다니는 중이였다.
작고 여릿한 외모와는 다르게 당차고 포부있는 청춘이었다.
그렇게 알게된 T는 나이 좀 있는 한국인 꺼꺼가 재밌었는지
가끔 학교 식당 등등에서 같이 밥도 먹고
집에도 종종 놀러오기도 했다.
그렇게 몇달 지났을까, 과정이 다 끝났다며 집으로 돌아가게 됐을때,
자기의 판카, 즉 금액이 얼마간 남아있는 학교 식당 카드를 나에게 주었다.
"꺼꺼, 카드에 돈 남았으니까 이걸로 밥 먹어!" ㅎㅎ
그래 고맙다. 잘 가고 잘 살아!
그렇게 잊었는데 몇년 뒤,
중국의 카카오톡이라 할 위챗을 통해 다시 만났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엄마도 됐으며
온주 상인의 후예 답게 가게를 열어 잘 살고 있었다.
"꺼꺼, 나 보러 온주 한번 놀라와"
"그래, 내 한번 놀러갈게"
그리하여
방학을 이용해 중국에 들어갔을때,
항주를 찍고 절강 남부 온주를 가게 되었다.
한 10년만의 재회,
귀여운 소녀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남편과 귀여운 딸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눌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인 특유의 그 진한 의리, 통크고 거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T의 안내를 받으며
남계강 일대를 둘러보았다.
기암괴석과 초록의 산, 그리고 맑은 강이 멋들어진 조화를 이루며
여기가 선계인가 싶은 기분에 빠지게 하는,
그 멋진 풍광도 잊히지 않는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가까이 지나고 있는데
다시 항공노선이 재개되면
상하이를 거쳐 온주에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