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52

북경, 원명원

북경에 와서 꼭 가봐야 하는 유적지이자 관광지 중 하나로 원명원을 빠뜨릴 수 없다. 원명원은 황제들의 정원으로 거대한 규모와 다양하고 화려한 건축을 자랑한다. 숲과 호수를 잘 가꿔놓고 있어 자연를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자객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 한그루 심지 않은 자금성, 돌로 지어진 첩첩히 에워싼 구중궁궐 자금성은 여름날 뜨거운 햇빛에 달궈져 얼마나 뜨거웠을까. 또 얼마나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었을까.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만주족 황제들은 그들의 고향과 대자연을 그리워했고, 그리하여 이 원명원을 지어놓고 여기서 생활하기를 즐겼다. 이 멋진 황제의 정원은 유럽에까지 명성이 퍼져 동양의 베르사유 궁전이라 부르며 가보고 싶어했다고 한다.


원명원은 청나라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황제 강희제가 1708년 아들 옹정제에게 주려고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 강희제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고 서양의 문물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원명원 안 한쪽에 당시 유행하던 서양식 건축물들을 화려하게 짓고 그것을 보고 즐겼다. 그것이 서양루다. 동양의 원림과 서양의 바로크 양식의 건축, 조각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광을 완성했다.


이때까지는 좋은 세월이었다. 세계의 중심이라 자부했던 중국은 세상 돌아가는 판을 전혀 읽지 못했고, 결국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원명원의 역사도 그것과 궤를 같이 했다. 1860년 2차 아편전쟁때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침공했고, 원명원도 불태워져 페허가 되었다. 서양루의 석재 건축물들도 부셔졌지만 불로 소실되지는 않아 남아있다. 중국으로서는 치욕과 아픔의 역사인데, 영불연합군은 자금성이 아닌 원명원, 즉 황제들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원명원을 청나라의 심장으로 보고 이곳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개방된 원명원은 원래 규모의 일부라는데, 그 자체로도 엄청 넓고 조경이 잘 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북경의 유적지이자 공원이다. 연꽃이 아름답게 피기로 유명하고 봄 가을, 꽃놀이, 단풍놀이 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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