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시 한수 35

왕안석 <첩제오강정>

왕안석 <첩제오강정>


百戰疲勞壯士哀

中原一敗勢難回

江東子弟今雖在

肯與君王卷土來?


백 차례 전투에 피로한 장병들 사기가 떨어져

중원의 한차례 패배 만회하기 어려워라

비록 지금 강동 자제들이 남아 있다 해도

군왕과 함께 권토중래하려 했겠는가?


앞서 초한지 항우를 얘기하며 당나라 시인 두목이 항우가 자결한 오강가 앞에 가서 지었다는 <제오강정>이라는 시를 소개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다시 200여년 뒤 송대에 이르러 또 한명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왕안석이 이 시에 답가 형태로 시를 지었다. 그런데 왕안석의 시는 두목의 시와 색깔이 완전 다르다. 왕안석은 권토중래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차갑게 말하고 있다. 북송에서 재상을 지낸바 있는 왕안석이니 다소 감성적이고 인간적으로 항우를 추억한 두목 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할까.


자, 왕안석의 견해는 대략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초나라 병사들은 이미 지치고 힘들다. 그런데 사실 그런 그들을 더 힘들게 것은 한차례의 패배가 아니라 심리적인 실망감으로 본 것 같다. 즉 오만과 독선으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을 꺾지 않는 항우에게 더 이상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하고. 그러하니 강동에 아직 인재들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항우와 함께 하려 하지 않았을거라고, 왕안석은 판단한 것 같다. 그 스스로도 인생의 여러 부침을 겪으며 지친 왕안석이 내린 다소 차갑고 냉정한 결론,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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