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을 쓰며
이번 방학엔
몇년전부터 계획했던
사랑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내년 상반기 출간을 목표로 잡고.
이미 얼마간은 지난 몇년간 틈틈이 썼고
방학때 절반 정도를 쓰면 될 것 같다.
오십대 중반으로 가는 마당에 왠 사랑이냐 싶기도 한데,
사랑이야 말로 평생 애써서 추구해야 할 테마 아닌가 ㅋ
오늘 아침에 쓴 서문을 먼저 좀 적어보고자 한다.
기대해 주시길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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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사랑이 꽃피는 세상을 꿈꾸며
바야흐로 격랑의 시대다. 새천년이 시작되고 이제 한세대 정도가 지나가는 지금, 인공지능과 로봇을 위시한 최첨단의 과학 문명을 얘기하고 있고, 전지구가 한마당인 세계화 시대를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그런 허울 좋은 이름의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폭력과 야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난세 중의 난세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 고물가로 신음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해는 해마다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키고 있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념과 종교의 차이, 극도의 이기주의로 인해 서로 분열되어 치고 받고 싸우고 있다. 증오와 분노, 미움과 갈등의 사회다.
이런 난세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사랑이 아닐까. 다시 사랑이 꽃피는 사회,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세상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젊은 청춘들이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다. 결혼과 연애를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신조어처럼 나돌고 있고, 만혼, 초저출산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가 나서고 있는 실정이니 참 쉽지 않은 문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온갖 외설과 대책 없는 성적 일탈, 불륜 등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고 있다. 아무리 성인지감수성의 중요성을 외치고 이중 삼중으로 대책을 마련해도 성비위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매체에서는 소위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사회적, 심리적, 생리적인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관심은 그것에 있지 않다.
나 또한 젊은 시절, 이 사랑이라는 평범하면서도 복잡미묘한 개념에 대해 꽤 오래, 또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내 젊은 날 나를 사로잡았던 화두였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예전에도, 또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두고 씨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기쁨과 설레임,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극도의 절망과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들, 나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원망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상가 에릭 프롬을 좋아했다. 그의 저서들은 내 젊은 날의 여러 고민들에 대해 많은 조언을 건넸다고 할까.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를 두고 고민하던 시절,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가뭄 속 단비처럼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샤프한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또한 적지 않은 참고가 되었다. 자, 이런 명저들은 시공을 넘어 계속 읽히며 고전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온 지 이미 한두 세대가 흘렀고, 이 땅이 아닌 서구에서 기술된 책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날 여기서 우리의 말과 글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제 사랑을 시작할 나의 학생들과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힘껏 한번 써보고자 했다. 조그만 참고와 위로가 된다면 저자로서 무한한 기쁨과 영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