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나는 고1 이었다. 새로 신설된 공립 고등학교의 1회 입학생이었으니, 이래저래 어려운 점이 많았다. 가령 운동장도 아직 제대로 다져지지 않았고, 건물은 짓다 만 상태여서 체육, 교련시간마다 자갈을 줍고 땅을 팠다.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학교에서는 명문 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미명하에 학생들을 쥐잡 듯 잡기도 했다. 그 폭력적이고 위압적이었던 당시의 고교생활은 참 답답하기도 하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참 어이없기도 했다.
물론 아무리 몰아대도 우리는 피어나는 청춘이었으니, 그 안에서도 할 건 다 했고 즐거운 일들도 많았다. 3년을 그렇게 지지고 볶았으니 친구들과 정 하나는 참 많이 쌓았다. 선생님들과도 미운정 고운정이 많이 들었다. 중, 고교 동창은 30년 만에 만나도 마치 며칠 전에 만난 것 같은 친근함이 있다. 가장 예민하고 꿈 많던 사춘기 시절을 함께해서 그런 것일까. 그 시절 우리 학교는 한반에 60명씩 총 10개의 반이 있었고, 그 중 2개 반은 여학생인, 좀 이상한 형태의 남녀공학이었다. 하하. 그때는 아직 남녀칠세 부동석, 식의 촌스러운 문화가 있던 시절이라, 남녀 학생이 출입하는 문이 다르고 층이 달랐다. 그것도 참 두고두고 이야기되는,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이다.
며칠 전 고교 은사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했다. 91년도에 졸업을 했으니 햇수로 28년만이었다. 선생님들 머리엔 허옇게 서리가 내렸고, 당시 가장 젋었던 선생님들도 이제 은퇴를 하는 나이였다. 80대의 선생님들, 70대의 선생님들을 수십년 만에 다시 마주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감회가 없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선생님들에게도 참으로 가슴 벅찬 시간이었을 것이다. 왜 진작에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나, 싶은 후회가 밀려들고, 반갑고, 고맙고 여러 감정이 마구 뒤섞이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삭막하고 각박한 사회라도, 일부 자격미달의 선생들이 물을 흐린다 해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의 본질은 결코 희석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귀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뒤를 이어 교직의 길을 걷는 나에게 이번 자리는 특히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안겨주었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너무 늦게 자리를 마련한 부족한 제자들 너그럽게 보아주시고, 앞으로 좋은 자리로 자주 모실테니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