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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Jan 05. 2021

중국기행4

대륙의 문, 복건성 기행

  누구나 살다보면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피로감을 느낀다. 물론 그 일상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재미가 있고 또한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지만, 종종 일탈을 꿈꾸게 된다. 그 일탈이란 다시 욕망과 연결된다. 무언가 색다르고 재밌는 것을 찾고 싶은 욕망,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 등등. 욕망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변하게도 하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것들을 생산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어쨌든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자신의 이런저런 욕망과 긍정적으로 마주하고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복건성(福建省)을 만나러 간 때도 바로 그런 즈음이었다. 마흔을 맞아 이래저래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그 해 복건성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 좋은 여행이자 공부였다. 복건성은 중국의 기타 지역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요컨대 중국 남부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곳이였고, 중국이란 나라가 참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여행의 형식도 이전과는 좀 달랐는데, 일반적인 관광이나 배낭여행이 아니라 복건성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을 담아내는 방송국의 여행프로그램을 찍는 형식이었다.        

    

아모이, 샤먼, 고랑위     

   4월 초순, 떠나는 날 한국은 비가 내려 좀 쌀쌀했는데, 도착한 복건성 하문(廈門)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곳곳에 야자수가 즐비한 게 남국의 분위기가 제대로 풍기는 것이 흡사 동남아의 어느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하문의 풍경은 언뜻 유학생활을 했던 상해의 황포강 일대와 닮아있었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널찍널찍한 도로가 펼쳐져 있고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서 있는 대도시였다. 

   하문에서의 일정은 우선 시내의 번화한 풍경을 스케치하고, 하문의 대표적인 관광지 구랑위(鼓浪屿) 일대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하문은 아편전쟁 후 서구에 강제 개항된 도시로, 상하이가 그렇듯 곳곳에 서구열강의 흔적이 남아있다. 배를 타고 10여분 들어가는 구랑위 섬은 영국의 조계지였던 곳,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북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구랑위는 빼어난 남국의 정취를 자랑하고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일광암에 오르면 구랑위 전체와 건너편 하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실 구랑위에서도 많은 것을 찍었지만, 방송에는 그저 스치듯이 지나갔다. 구랑위는 중국 전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남쪽의 작은 섬이다. 그 아름다운 구랑위를 보면서 중국의 아픈 근대사를 또한 되짚어보게 된다.   

        

토루의 지혜     

   우리 촬영팀이 복건성편에서 중점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은 척박한 자연환경과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낸 사람들, 그리고 일찍부터 세계로 진출한 화교의 고향 복건성의 저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잘 맞는 것이 바로 토루(土樓)였다. 하문에서 차로 5시간, 험난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토루,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중국의 독특한 건축양식 토루를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신기함과 경외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들은 왜 그 깊은 산속에 그렇게 거대한 토루를 지었던가. 도대체 그 옛날 어떻게 그런 구조물을 완성할 수 있었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토루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외부세계와 차단되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완벽한 씨족 공동체 사회를 유지해 온 것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대형 토루들은 일찌감치 관광지화 되었지만, 아직도 근방의 많은 토루들 안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객가인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낯선 외지인에게도 친절했고 격의 없이 대해준 것이 깊은 인상에 남았다.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한 작은 토루 안에 있는 마을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은 도회지로 많이 나갔지만, 내일의 희망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이들은 내가 알려주는 한국어 인사가 신기한 듯 연신 큰 소리로 따라했고, 가장 어린 꼬맹이들은 그 소리가 무서웠는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 모두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기원했다.        


삼방칠항     

   복건성의 성도 복주에서는 옛 거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삼방칠항(三坊七巷)을 주로 촬영했다. 서울의 인사동이 생각나는 거리였는데, 그 골목골목에 아직도 사람들이 몇 대째 살고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복건성을 대표하는 보양식 요리 불도장의 진면목을 담기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촬영했다. 주방장 인터뷰에서 수없이 NG가 나며 촬영이 이어졌지만, 가게 지배인과 주방장, 직원들은 끝까지 웃으며 촬영에 임해주었다. 본고장에서 맛보는 불도장 맛은 어땠을까. 명불허전, 과연 일품이었다. 거리 한쪽에 있는 임칙서 기념관도 인상적이었다. 복건성 출신인 임칙서는 많은 복건인들, 나아가 전 중국인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들까지 많은 이들이 기념관을 메우고 있었다. 지난 역사와 선조들을 잊지 않고 기리는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새삼 중국의 저력을 느끼게 된다.     

         

천주 혜안녀, 그리고 서족     

   하문, 복주에 이어 찾아간 곳은 천주, 우리의 제주 해녀처럼 남자를 대신해 집안을 책임진다는 혜안녀(惠安女)들이 살고 있는 어촌마을을 찾아갔다. 혜안녀의 독특한 복장과 강인한 성격은 유명하다. 그들의 문화를 찍기 위해 일본 NHK에서 1년간 밀착취재를 했다는 말을 촌장에게 들었다. 방송에는 시간상 많은 분량이 나가지 못했는데 실제로는 많은 것을 촬영했다. 마을에는 남자가 거의 없었는데, 모두 바다로 어업을 나가 한달, 보름씩 집을 비운다고 했다. 그리하여 마을, 그리고 집안의 크고 작은 작업들을 모두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들이 하고 있었다. 일손을 좀 돕는다고 같이 돌을 나르기도 했는데, 작업량이 만만치 않았다. 

   소수민족 서족을 찾아간 것도 기억에 선하다. 산길을 달리고 달려 그들이 산다는 마을을 찾아갔지만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수소문해보니 더 깊은 산속으로 이주해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고수하며 살기란 쉽지 않은 듯 했다. 변화와 개발에 적응하기도 하겠지만, 자신들만의 정체성은 점점 흐려지기도 할 것이다. 결국 그들이 더 깊은 산으로 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토루의 객가인들도, 천주 해안가의 혜안녀들도 부디 자신들의 전통을 잃지 않고 오래 보전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다시 물어물어 찾아간 서족 마을, 깊은 산중에 자리한 촌락, 서족들은 차를 가꾸면서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기억에 특별히 깊이 남은 건 서족들의 전통적인 무술이었는데,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 그들 스스로가 만든 무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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