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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중년 남자 Dec 31. 2020

중국기행3

산동성의 여러 도시들

태산이 높다하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없건 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의 문장가 양사언의 시조로, 예전 우리 교과서에도 실렸을 만큼 유명한 시다. 우리의 선조들에게도 중국 태산은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한 동경의 공간이었다. 사실 태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1532미터로 우리의 지리산과 비슷한 높이고, 중국 곳곳에는 태산보다 높은 산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태산이 이웃나라 조선의 선비가 시의 소재로 삼을 정도로 유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태산이 갖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산은 역대의 수많은 황제들이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며, 수많은 난다 긴다 하는 시인묵객들이 올라 흔적을 남긴 중국의 명산 중 명산이다. 중국에서는 중원을 중심으로 방위에 따라 다섯 개의 산을 오악이라고 하는데, 태산은 예로부터 그 오악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불렸다. 진시황도 올랐고 공자도 올랐다. 역사의 거인들이 올라 이름을 남긴 산이니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터이다. 또한 이런 이야기도 있다. “태산에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 그리하여 일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고, 중국은 물론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명소로 이름이 높다. 

  태산에 오르려면 일단 태안으로 가야한다. 태안까지는 전국 각지에서 기차로 연결되어 있고 그곳에서 태산 입구까지는 버스편이 있다. 태산 입구에는 대묘가 사람들을 반긴다. 진시황의 진나라 때부터 행해진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했던 곳이다. 시간의 장구함을 느끼며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태산 등반에 나설 차례다. 일천문을 지나 한참 계단을 오르면 중천문에 다다른다. 정상까지 끝없는 돌계단이 이어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게 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정말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렇지만 그런 피로를 상쇄하는 것은 기암괴석, 수려한 풍경, 그리고 깊은 역사의 흔적이다. 중천문을 지나 계속 오르면 드디어 남천문이 나오고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중천문까지는 버스로 갈수 있고,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 시간과 체력 여하에 따라 적절히 안배하면 되겠다.

  1996년 가을, 산동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나는 함께 공부하던 선배 둘과 태산에 올랐다. 아마도 중양절 즈음, 중국인들이 너도나도 산에 오르던 기간이었는데, 그때 우리가 택한 코스는 밤에 올라 아침에 태산의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선선한 밤에 오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끝없이 이어지던 돌계단을 오르며 힘들어했던 기억이 강렬하다. 게다가 정상에 도착한 것은 새벽, 정상의 날씨는 장난 아니게 추웠다. 특이한 게 얼마간 돈을 받고 두꺼운 솜외투를 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걸 입고 새벽까지 버티다가 드디어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우리처럼 태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곳에 있었다.          




물의 도시, 제남     


  제남(濟南)은 산동성의 중심도시, 즉 성도다. 산동성 곳곳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이자 인구 500만의 대도시이다. 제남은 예로부터 천성(泉城), 즉 샘물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곳곳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올라 큰 연못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또한 제남의 북쪽으로는 황하가 흐르고 있고 시내 한가운데에는 천불산이 솟아있다. 

  제남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곳이다. 1996년 처음 중국에 발을 내딛었는데, 그때 제남의 산동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말하자면 중국과의 본격적인 첫대면이 바로 이 제남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첫 관문으로 제남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제남은 젊은 날의 나에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준 것 같다. 그게 인연이 되어 제남에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오며 가며 자주 들리게 되었다. 내 고향 수원도 물이 많은 도시인데,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명호     

  대명호(大明湖)는 둘레가 6키로에 이르는 큰 호수다. 샘물의 도시답게 여러 갈래의 샘물들이 흘러들어 조성된 호수라고 할 수 있는데, 빼어난 경관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런 호수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또 놀랍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대명호에 와서 그 아름다운 정취를 읊었다. 예컨대 당대 최고의 시인인 이백과 두보 역시 대명호에 발자취를 남겼다. 

  20여 년 전 제남에서 어학연수를 막 시작하던 늦여름, 제남 역시 여름 더위로 유명한 곳, 더위를 식히려 한국, 중국 친구들과 대명호에 가서 보트를 탄 기억이 난다. 연수시절 내내 여러 번 대명호에 갔다. 몇 년 전 겨울,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여행을 갔을 때 대명호에 잠깐 들렀는데, 새삼 대명호가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였나 하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했다. 호수 멀리로는 우뚝 솟은 시내의 고층건물이 보이고 그 사이로 석양이 지는 모습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새로 지어졌다는 호수 언덕 위 북극각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그 위에서 바라보는 대명호의 전경과 제남시내의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표돌천     

  제남 곳곳에 수없이 많은 샘물이 있는데, 그중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바로 표돌천(趵突泉)이다. 입구에는 천하제일천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걸려있는데,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한 말이라고 한다. 대명호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라 도보로도 쉽게 갈수 있다. 맑게 솟아나는 샘과 그 주위를 멋지게 감싸고 있는 버드나무와 각종 나무와 꽃, 명청 시대의 고건축과 중국 특유의 그 회랑까지. 그 멋과 분위기에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한 가지 개인적인 추억을 덧붙인다면, 그곳에서 경극공연을 처음 보았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경극 특유의 소리에 재밌는 복장과 분장을 한 배우들, 그리고 그들 주위를 둘러싼 많은 관객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다들 즐거운 모습들이었다. 그때가 아마도 국경절 즈음이었던가. 벌써 아득한 옛 기억이지만, 그 표돌천의 신기한 풍경들, 그리고 경극이 펼쳐지던 즐겁던 분위기가 인상에 남아있다.               


천불산     

  제남 3대 명소에 들어가는 천불산(千佛山)도 한번 오른 적이 있다. 천불산은 300미터 남짓한 작은 산이지만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천불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수많은 불상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수나라, 당나라 이래 여러 절과 불상이 더해져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천불산은 전설 속 황제 순임금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으로 예전에는 역산으로 불렸다. 

  중국의 많은 산들이 그렇듯 천불산도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높지 않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오를 수 있고, 주위에 불교관련 유적과 관련 상품들도 많다.             


그리고 황하     

  제남 시내는 아니지만 제남에 왔다면 꼭 한번 황하에 가서 눈으로 직접 그 강물을 보아야 한다. 양자강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강이고, 저 찬란한 황하문명을 발아시킨 것이 바로 황하 아니겠는가.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5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황하가 흐른다. 버스 편도 많으니 제남에 왔다면 쉽게 가볼 수 있다. 최근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탁 트인 경관 속에 도도히 흐르는 황토색 강물은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황하라는 이름 그대로다. 강물이 어떻게 저렇게 누런 색일까 정말 신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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