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이야기 11

진시황의 문자통일과 육국문자

기원전 221년, 중국 대륙에서는 550년간 지속된 춘추전국이 막을 내리고 통일왕조인 진이 들어선다. 황제라는 호칭이 시작되고 문물과 제도가 정비된다.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고 불로초를 구하고, 분서갱유를 하는 등 진제국은 빠르게 움직인다. 자, 그리고 중국어 역사 중 첫 번째 문자통일도 단행된다. 여기서의 문자통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국시대 가장 큰 세력을 가졌던 7개의 제후국을 전국칠웅이라 하는데, 그 중 진에 의해 무너진 나머지 6개국은 각자 다른 문자, 즉 같은 한자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한자를 사용했다. 통일 진나라는 자신들이 이전에 사용하던 대전을 기본으로 하여 새로운 자체인 소전을 만들어 공표했고 이로서 복잡했던 문자는 소전으로 통일이 되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멸망한 6개국의 문자는 각자 특색과 개성이 있었겠지만, 이후 그냥 통칭해서 육국문자, 전국문자, 혹은 육국고문, 고문이라고 불렸고 빠르게 잊혀졌다. 만약 제나라나 연나라, 혹은 초나라가 통일을 했다면 당연히 그 나라 문자로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머지 육국문자가 古文으로 불리게 된 상황이 재밌다. 천년만년 영원하길 꿈꿨을 진제국은 진시황이 죽자마자 바로 무너지게 되고, 이어 등장한 한왕조, 4대 황제인 경제가 아들을 옛 노나라 지역의 왕으로 봉했다. 신하를 시켜 공자 고택의 일부를 허물었는데, 그 안에서 유교의 경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의 분서령을 피해 벽속에 숨겨둔 것이었다. 그 책들은 은닉 당시 사용되던 육국문자로 기록이 되었는데, 그 글자체가 한나라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들만큼 이상하고 생소했던 모양이다. 불과 6, 70년의 시차가 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한나라 사람들은 그 문자를 먼 옛날의 문자로 오인을 하여 옛날 문자, 즉 고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곡부의 공자 저택, 즉 공부에는 그때 그 경전이 쏟아진 곳을 기념하여 ‘노벽’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곡부에서 그 노벽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아 여기서 바로 육국문자로 쓰인 책들이 쏟아진 곳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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