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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된 이유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그 시차를 넘어, 너를 만난다' <외전>

by 윤지아 Feb 17. 2025

문득 궁금해졌다.

에세이스트가 글을 쓰는 이유가 말이다.

단지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회고인가 싶었다.

나 자신에게만 깨달음을 주는, 나 자신이 미래에 보기 위한 과거의 기록인 일기 같은 형태 말이다.


아마 이런 생각이 나를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몇 번이나 떨어지게 했을 것이다.

독자를 특정하지 못했기에.

독자는 애초에 나 하나뿐이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SNS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명백했다.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

그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이든, 특정 그룹이든,

단 한 사람이든.


내가 그 아이와의 추억을 쓸 때 내가 계획하는 내 독자는 단지 미래의 나뿐이었다.

미래의 내가 언제까지나 이 기억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점점 엷어지는 기억이 내민 작은 불꽃들을 살려두는 것뿐이었다.


그 불꽃들이 크게 타올랐던 순간들의 기억은 그 아이와 나 둘만의 기억이기에

그 기억의 장면들을 제삼자인 독자에게 설명할 필요도, 이해시킬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난 우리 이야기를 단 한 명의 독자인 나를 향해 소설이라기보다는 장편 일기로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다.

누군가 봐주길 원하며 쓰는 글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러나 그 아이는 봐주길 바랐다.

언제였던가 그 아이는 내가 SNS에 올리는 모든 글과 사진을 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십여 년 전의 말이 현재까지 유효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는 않았다.


하루에 한 번씩 버릇처럼 올리는 인스타그램은 나의 행복한 일상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과거가 아닌 나의 현재는 그 아이가 봐주길 바라는 기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스타 스토리를 본 사람들의 목록에서 그 아이를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날부터 난 스토리를 올릴 때면 언제나 그 아이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올리는 모든 스토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처럼, 여전히

브런치 글 이미지 1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때부터인 것 같다.

내 스토리를 본 사람 목록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출근길

나는 가방 속에서 ‘냉정과 열정사이’ 블루를 꺼냈다.


빨강책에서 아오이가 준세이 이름을 언급하기까지 절반가량을 읽어야 했다면, 파랑책에서는 첫 장부터 아오이 이름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냉정과 열정이다.

준세이는 아오이와의 일을 처음으로 제삼자인 인수에게 털어놓았다.

심지어 인수는 준세이가 갓 헤어진 전 여자친구인 메기의 룸메이트였음에도 말이다.


내 생활반경에서 조금은 떨어진, 하지만 닿으려 하면 닿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준세이가 인수에게 털어놓은 자신의 과거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인수로 하여금 그녀의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인수는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찾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부럽다고.

자신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인수는 준세이 앞에서 옛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다.

그 장면은 나로 하여금 내 독자를 설정하게 했고, 브런치 작가로 만들었다.


십 년 전, 난 그 아이에게 우리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했었다.

그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먼저 완성하면 내가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남자 입장으로 시즌2를 완성할게”

그때 그 말이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유효할지는 모르겠다.

그 농담과도 같은 말을 기억이나 할까.


이제라도 우리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글의 제형으로 가둬두어 다행이다.

점점 희미해지는 그 찬란했던 시절을 언제든 펼쳐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모두가 ‘냉정과 열정사이’의 인수처럼 옛사랑을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설레는 향으로 가득 찬 향수처럼 언제든 뿌리기만 하면 그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주는 그런 은은한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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