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비노무사, 비회계사라고 하지는 않으시죠?

by 윤지아

나는 올해로 기업법무만 11년 차인 법무팀 유 과장이다.

사실 이전 직장에서는 차장이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직급이 하나 까였다.

이직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직급은 그저 그 회사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여섯 번의 이직을 하며, 어딘가에서는 님으로, 어딘가에서는 매니저로, 어딘가에서는 실장님으로 불렸다.

직급뿐만 아니다. 팀 이름도 회사의 문화에 따라 다양했다.

법무팀, 법무관리본부, 법무유닛, 법무행정실 등등.

그러다 보니 팀 이름이라던가, 내 직급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단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였다.


그렇다. 난 내가 이 회사에서 뭘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내 회사생활의 목적이라고나 할까?

남들은 연봉상승을 위하여, 회사의 네임밸류를 위하여 이직할 때, 나의 이직의 기준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분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가장 핏 되는 포지션인가'였다.


기업법무팀에서 하는 일을 크게 보면

계약서 검토..................... 유 과장 픽 선호업무
법률 질의응답.................. 유 과장 픽 선호업무
특허출원 검토
신사업리스크 검토
송무 (소송업무 전반)
등기, 주주총회.................. 비선호업무

등등이 있다.


가끔 채권업무가 법무업무에 포함된 회사들이 있는데, 그런 곳들은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그 일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다.

과거 대기업 송무팀 소속으로 채권업무를 2년간 했던 적이 있는데,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는 업무가 매력적이긴 했지만, 반복적인 그 일이 좀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 업무가 더 적성에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좀 더 고민하고 판단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의 회사까지 오게 되었고, 직원들의 아리송한 질문들(법자 들어간 건 다 물어봄)에 대답을 해주거나, 계약서를 수정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이렇게 내 업무로 꽉 채운 하루가 꽤 재밌고 보람차다.



그런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회사명"이나 "전문직명"이다.


내가 이렇게 무슨 일을 하는지에 집착하는 반면, 일반 사람들은 일이 아닌 회사명만 궁금해한다.

누군가 넌 무슨 일 해?라고 물어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회사명"이나 "전문직명"을 말한다.

애초에 직업이 뭐냐는 질문 자체가

"너 어디다녀?" ("어디" = 회사명)이다.

그리고 대답도 대부분 이렇다.

응~ 나 삼성 다녀.
-> 이경우 삼성에서 그 사람이 뭘 하는지는 전혀 안 중요하고, 그냥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에 꽂힌다.
응~ 나 변호사야.
-> 전문직은 이렇게 한마디로 뭘 하는 사람인지 요약할 수 있어 좋다.

사실 영어권은 다르다.

What's your job?로 직업을 물어보면,

대답은 직무로 대답한다.

I'm an engineer.

I'm a designer.


이 뜻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문직을 제외한 직장인의 경우 직장의 네임밸류로 사람을 판단할 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게 중요한지가 가장 중요한 나는, 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이 구차하고 길어질 수밖에 없다.

어 000 앱을 운영하는 핀테크회사 법무실에서 기업법무업무를 해.

무슨 일을 하는지 중요하고 너무나도 말해주고 싶지만, 뭐라 한마디로 표현할 길이 없다.

변호사처럼 딱 떨어지게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패러리걸(paralegal)이란 용어가 있긴 하지만, 말해도 잘 모를 터이고, 어차피 이 용어는 우리나라에선 법무법인 내 어시스턴트로 더 흔하게 쓰인다.

기업 내(in-house) 법무담당자를 표현하는 변호사가 아닌 직원은 역시 웃프게도 비변호사가 딱이다!!


그러나 나만 애쓸 뿐 사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법무팀이나 인사팀이나 재무팀이나 뭐 큰 관심 없이 그냥 회사원일 뿐이다.



나는 내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브런치스토리 작가소개란의 직업을 넣을 때도 열심히 커서를 아래로 내려 살펴봐도 정답은 그렇다.

나는 단지 "회사원"을 찍을 수밖에 없다.

특수하고 전문적이라 자부해 온 나의 업무를 단지 "회사원"이라 표현해야 할 때의 허탈함.


어젯밤, 아이를 재우면서 여섯 살 우리 딸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 거야?"

나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이미 다 커서, 지금이 엄마의 이다음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또 물었다.

"그러면 엄마는 뭐가 됐어?"

또다시 할 말이 없어진다.

이거 참... 이럴 때만큼은 변호사 자격증이 너무나도 탐이 난다.

(한마디로 뭘 하는지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나 편하잖아!)

그 단축적인 표현이 갖고 싶어 변호사 자격증을 탐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법무의 업무는 변호사의 업무와 겹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확실히 난 변호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브런치 북 이직의 여왕- 11화 나는 변호사가 되지 않기로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 내 법무 담당자다.

딸이 조금 더 크면 이렇게 대답해 주어야겠다.

"엄마는 회사 법무팀에서 일해. 그리고 이건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엄마는 그 꿈을 이뤘어!"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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