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재미없고 따분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나의 첫 기업 법무팀의 경력은 한 교육업계에서 시작했다.
사원 말 대리 초 정도의 2-3년 송무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단연 법무팀 막내였다.
그나마 그 송무 경력이라도 없었으면, 신입 잘 안 뽑는 법무팀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다.
이런 거 보면, 첫 직장의 질도 중요하긴 하지만, 일단 뭐라도 1-2년 경력은 밑작업을 해 놔야 하는 것 같다.
그 신입 시절. 지금은 참 생소한 00 씨라는 호칭.
지금도 그때 그 당시의 상사분들을 뵈면, 가끔 말실수로 00 씨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 그 말이 듣기 좋다.
마치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막상 어른이 된 후로는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심리랄까.
가끔 00 씨의 호칭이 가져다주었던 그 편안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적당히 몰라도 용서되었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고,
상사라는 우산이 있었던 그때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
노코멘트.............ㅋ
막내시절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 법무팀의 특징이 있는데 그야말로 남자밭이다.
그런 중 그 당시 나는 막내이면서, 여자.
팀 내 수다 포인트 자체가 맞지 않는 것도 힘들었지만, 법무팀만의 이상했던 수다들이 기억에 남는다.
법무팀의 점심시간, 회식자리, 티타임의 단골 화제!
나 0대 법대 나왔어~이다.
이것은 누가 시작이랄 것도 없이 대화 속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
"근데 A과장 고대 중앙도서관은 말이지~ " 어쩌고 저쩌고, 도서관 이야기로 빠진다.
그럼 너도나도 서울대 법대, 고대법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대화에 끼어들 군번도 아니고, 조용히 듣고 있자면, 무조건 누구 하나 꼭 이렇게 물어본다.
"00 씨는 어디 법대 출신이야?"
'불과 지난번 회식이 두달 전이었는데 이걸 또 묻는다고?' 라고 생각하며 대답한다.
"아 저는 00여대 법대 출신입니다!"
그럼 그 뒤에 돌아온 대답은 무조건!!!!!!!!!!
진짜 100이면 100!!!!!
"아 나 거기 00여대 누구랑 사귀었었는데~"
로 끝난다.....
트루스토리다....
아무리 우리 대학이 법대가 유명하진 않다 해도, 대화의 내용이 왜 항상 이렇게 흘러가는지 불편하다.
그 다음부터는 너도나도, 00여대 정문 앞에서 전여친을 기다려본 경험을 늘어놓는다.
문제는 이 대화를 거의 분기별로 회식 때마다 반복한다는 건데.
그들은 내가 정말 어느 법대를 나왔는지가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이런 대화를 통해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
그저 자신들은 메이저급 법대 출신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자신감을 충전하고자 하는 듯 보였다.
지금도 업무적으로 도움도 많이 받고, 여전히 존경스러운 상사들이긴 하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며 다른 부서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대학자랑을 법무팀 내에서 매번 안줏거리 삼는다는 건, 결국 라이선스가 없기에 내세울게 대학밖에 없어서이지 않을까?
나만 소외된듯한 그 메이저 법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난 여기 왜 앉아있나. 이 아저씨들은 대체 삶의 재미가 이것뿐인가.. 하는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었다.
회사생활에 같이 대화 티키타카도 맞고, 같이 회사 욕이라도 할 동료가 있다면 그래도 좀 버틸 만 한데
이 아저씨들 사이에서, 법무팀 막내 여직원은 점점 말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말을 할 곳도 없고, 할 말도 없고, 메이저 법대도 아니면
그냥 조용히 듣고 있는 게 절반은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랄까.
결국 팀 내 여자 동료는 포기했고, 근처 부서의 여직원과 소통을 시도한다.
법무팀의 절친은 단연 재무/총무/인사팀이다.
다행히 저 팀들은 여자들이 넘쳐난다. 세상 눈물 나게 반갑다.
그러나 우린 터놓고 탕비실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질 수 없다.
의심스러운 시선들이 날아온다.
회계팀 대리님과 따로 밥이라도 먹고 들어올 때면, 법무팀 아저씨들은
"왜 너 왜 찾았데? 무슨 이슈 있데?"라고 묻는다.
난 법무담당이기 이전에, 그냥 여자 사람이다.
그저 단편적인 회사 욕을 나누고, 스트레스를 풀고, 개인적인 수다를 떨고 싶었을 뿐인데 그마저도 보는 눈이 많다.
결국 이런 이슈때문에 주변 팀 여직원들과 다소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롯데리아에서 접선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아저씨들은 햄버거를 먹으러 안오기 때문이다. (중국집이 가장 위험하다 주 2회는 간다)
직원들과 취미에 관한 대화를 하면 모두들 의외라고 깜짝 놀라곤 한다.
난 일본 애니 보기, 건담 만들기, 피규어모으기, 게임하기의 취미를 가지고 있다.
다들 법무팀 직원의 입에서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라는 표정으로 입을 떡벌린다.
그러나 나도 단지 평범한 20-30대 여자 사람일 뿐이다.
닌텐도나 플스의 새로운 기계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줄을 서서 겟 한다. 주말이 지나면 비슷한 나이대의 타 팀 직원들과 열띠게 신제품 영접 소식을 알린다.
난 법적이고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만 하는 법무팀 직원이기 전에, 작고 귀여운걸 모으며 재미를 느끼는 덕후이기도 하다.
단호한 표정으로 입 닫고 앉아있는 왠지 따분해 보이는 여러분 회사의 법무팀 유 과장을 발견한다면, 자연스레 일상의 대화를 나눠주길 바란다.
법무팀 유과장은 웃기는 옆팀 언니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프로페셔널하게 180도 돌변하여 당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이것이 법무언니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