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은 비변답게, 라이선스가 없는 자유를 누려라

by 윤지아

기업에 속한(in-house) 회계사, 노무사, 변호사들을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드물었었다.

나는 사실 이들을 회사 내에서보다 회사 외부의 거래처로서 만나는 것이 더 익숙하다.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노무법인으로 말이다.

라이선스가 있는데 기업 내에서 상사의 업무지시를 받고 싶지 않은뿐더러, 월급쟁이보다는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굳이 회사에 속하고 싶을까?

그러나 요즘은 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라이선스의 취득 목적자체가 더 쉽게 취직하기 위해서인 사람들도 있다.


기업 내에서의 법무업무는 사실 그저 회사의 일, 평범한 직장인의 업무이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내변호사라는 말이 생겨난 게 아닐까. 오히려 사내에 변호사가 있는 게 특수했기 때문에.

그러나 로스쿨이 자리 잡고 변호사가 많아진 지금, 이미 회사 내 법무팀은 변호사 자격증을 요하는 경우가 많아져버렸다. 더더욱 비변호사들이 설자리가 없거나, 또는 있더라도 법무업무의 핵심이 아닌 지원 업무 정도를 하게 될 가능성이 커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럼 라이선스가 없다는 것은 핸디캡일까


관점에 따라 핸디캡일 수도 있고,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


기업 법무팀으로서 외부 법무법인은 우리의 거래처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고객이 되어 약간의 갑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언제나 급하고 무리한 부탁을 해도 괜찮다고 하시는 변호사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나라면 속으로 욕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업부의 이상하고 무식한 질문들을 우회적으로 여쭤볼 때면 더더욱 그렇다. 그걸 확인하라고 시킨 상사말은 들어야겠고, 이걸 어떻게 물어봐야 그나마 제대로 된 질의일까 고민해 보지만, 아무리 돌려 표현해도 이상한 그 질문... 창피함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질의들조차 가볍게 여기지 않고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변호사님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리스펙이다. 나라면 저런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할 것만 같다.

역시 변호사는 전문성은 당연하고 참을성과 서비스마인드까지 장착해야 하는 매우 하드코어의 직업임에 틀림없다.

그럴 능력이 없는 나는 그저 법무법인의 고객사입장으로 그 서비스를 누리는 게 더 맘 편하다.


단점으로는, 아무리 내가 법리적으로 맞는 주장을 하더라도, 내 말에 힘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 내에서 나의 지위나 신뢰도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문제지만, 결정적으로 공신력 있는 회신서를 원해할 때면, 이미 시간 들여 내가 다 찾아낸 법령들과 결과를 그대로 외부 변호사에게 전달해 줄 수밖에 없다.

고생은 내가 하고, 시간당 수당은 변호사가 먹고.

하지만 억울하지는 않다.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외부 변호사님이 내가 찾아낸 법령과 결론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줄 때면, 교수님께 A학점을 받은 것만큼이나 인정받은 것 같고 기분이 좋다.



기업 안에서 우리의 역할은 "걱정인형"


사업부에서 신사업을 하고 싶어 하거나, 디자인팀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며 저작권 걱정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민과 걱정은 제가 할 테니 여러분들은 마음껏 창작하시고 사업아이디어를 내세요!!


결국 우리는 법적이슈를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무팀은 회사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유기적인 한 부서로, 뭐든지 막아내는것이 아니라, 적절히 걸러내 주는 필터같은 부서라고 표현하고 싶다.

회사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회사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끔 회사의 이익과 우리의 법적 판단이 충돌할 때 큰 고민에 빠지곤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기업 내에서의 법적 검토는 사실 합법이냐 위법이냐를 따져내는 게 해결이 아니다.

위법의 소지가 있다면, 최대한 리스크가 없이 사업을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을 제안해 주고, 그래도 강행하여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리스크는 우리의 폭탄으로 안고 대응할 준비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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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은 비변답게, 라이선스가 없는 자유를 누려라


생각해 보니 나도 사회초년생 때에는 법적으로 맞고 틀린 거에만 집중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이 틀린 답의 사업을 왜 실행해야 하는지 너무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 것이다.

법적으로 명백히 향후 문제가 생길게 분명한 일들. 예언가처럼 우리 눈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뻔하게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측이다.

모든 가능성 중 가장 최악의 경우의 수를 먼저 계산해서 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을 극단치로 판단해 버리면, 회사는 아무런 시도도 해 볼 수 없다.

만약, 그러한 판단이 내 직업윤리를 벗어나는 중대한 사항일 때에는 이를 결정하려 끙끙대지 말고 외부 변호사에게 그 판단을 맡기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변호사가 아니다.

회사원으로서 시키는 것만 하기에도 스트레스가 한가득이다.


기업 내에서 변호사의 역할을 흉내 내려 하지 말고, 라이선스가 없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 변호사의 책임감의 무게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다.

비변이라는 용어가 그 책임감의 무게때문에 나온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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