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무팀이 존재하는 회사는 왜 강남에만 있는가.
나는 토종 인천태생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인천이 아닌 곳에서 살아본 적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천 내에서 회사를 다녀본 적은 일곱 번의 회사 생활 중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대기업에서 인천 지점발령으로 딱 한번.
전국에 지점이 깔려있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법무팀이 존재하는 회사는 이상하게도 전부 서울 강남에 몰려있다.
인천에서 서울은 워낙 교통이 잘 되어있어 출퇴근에 무리는 없다.
그러나 편도 1시간 거리로 타협 가능한 중구나 강서 쪽에는 이상하게 법무팀 공고가 뜨지를 않는다.
정말 공고가 10개라면 9개는 강남/판교이고 1개 정도만 강서/중구이다.
그러다 보니 공고나 잡 오퍼 확인 시 JD는 건너뛰고, 회사의 위치를 먼저 본다.
열심히 JD를 읽으며 매력적인 조건으로 쓰고 싶다는 결심이 선다 한들, 맨 마지막에 나와있는 회사의 위치가 강남구/분당구면 매우 허탈하기 때문이다.
이제 긴 출퇴근 시간에 지쳐버린 나는 근로조건이고 뭐고 그냥 가까운 곳이라면 무조건 지원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나마 나는 수도권에라도 살고 있어서 이런 고민이라도 하지, 지방에 사는 법무지원자들은 도대체 취업을 어디로 할까.
왜 회사는 다 강남에 몰려있는 것일까.
사람은 나면 강남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아침마다 겪는 지옥철의 헬은 기본 옵션값이고, 이번 회사는 신사동이 당첨되어 기어코 왕복 4시간을 찍어버렸다.
이제는 포기다.
칼퇴를 하고 회사를 나서도 집에 도착한 시간은 야근을 한 직원보다 늦다.
이 억울함은 인처너의 고정값인 것인가...?
그런데 이상하다.
중구/마포 쪽에도 회사는 많다.
근데 왜 법무팀은 수요가 없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법무팀은 없어도 그만인 팀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대기업에서조차 법무팀은 그 역사가 깊지 않다고 한다.
우리의 업무는 보통 중소기업 내에서는 경영관리팀이나 총무팀에서 적당히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닌 계약서류를 관리하는 정도의 업무일 것이다.
사실 리스크라는 것은 돌려 말하면
안 일어나면 없을 일
안 일어나면 그만인 것
일단 벌여놓고 보자!
뭐가 터지면 그때 생각하자!
이런 마인드에서 운 좋게 정말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사업이 고도화되고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꽤 규모 있는 회사나 되어야 우리를 필요로 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회사들은 강남에 집결되어 있다.
정말 작은 업체라도 반드시 필요한 직무, 예컨대 재무/회계를 보면 참 부럽다.
그들은 정말 전국 각지 어디에도 항상 수요가 있다.
잠시 일을 쉬고 돌아와도 수요가 넉넉하고, 자리가 많다.
맘만 먹으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골라서 갈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재무팀 동료를 알고 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회계학과로 진학할걸 난 왜 가장 취업이 안 되는 법대를 골라서 갔는지 참 고집스럽다.
그래도 이게 재밌는 걸 어떻게 하나.
재밌는 일을 하면서 사는데, 거리 좀 멀면 뭐 어떤가! (부러우면 지는 거야ㅠㅠ)
그래도 아주 작은 바람은 경기가 좀 더 나아져서 기업들이 채용을 더 활성화하고, 더불어 눈앞에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내실을 다지기 위한 법무팀도 좀 많이 뽑아줬으면 좋겠다.
돈을 벌어다 주는 공격수만 있으면 언젠가 쌓아온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반드시 뒤에서 묵묵히 막아주고 수습해 주는 수비수가 있어야 한다.
기업 법무팀은 그런 수비수와 같은 존재이다.
물론 더 많은 회사들이 법무팀을 필요로 해줬으면 너무 좋겠지만, 현시점에서 타협한 것은 그냥 왕복 4시간을 머리 식히기 타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골치 아픈 계약서를 보고, 법령검토를 하느라 머리가 너무 아팠다.
걱정인형인 법무팀은 머리를 식히는 걸 하지 못하니, 다른 이야기들로 머리를 채워 걱정을 밀어내는 방법이 제격이다!
지옥철에 오르는 순간 책 한 권을 펼쳐 들면, 거의 3-4일이면 소설책 한 권은 읽을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소득 아닌가?
근데다가 법과 전혀 상관없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정말이지 하루의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웃프게도 몇 달 뒤 안과에서 안구건조증으로 각막이 다 쓸렸다는 말을 들었다.
근무시간 내내 PC로 글자를 잔뜩보고, 퇴근하고 나서도 책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힐링 타임을 포기할 수 없다!
물론 아직도 집에서 좀 더 가까운 회사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말이다.
굳이 법무가 아니더라도 출퇴근으로 장시간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거리 위에서의 시간이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