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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_ 아날로그시대의 종료

네가 살고 있는 그 시간은 나에게는 이미 지나간 시간일 것이다.

by 윤지아

2010년 11월

등굣길, 법철학 자료를 찾기 위해 중앙도서관을 먼저 들렀다. 파란 학생증을 찍고 들어가면, 또래 여자아이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앉거나 누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행기 내부처럼 생긴 좌석이 있었는데, 비행기의 작은 창이 옆에 나 있고, 아름다운 하늘 위의 풍경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 빼곡히 놓인 책장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프로이트의 이론 책을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철학서에 한눈도 팔아본다.

손가락으로 책 제목만 보고 살포시 책을 들썩여본다. 그 딸깍거리는 소리가 좋다. 쾌쾌한 책 내음과, 사각사각 책을 넘기는 소리들이 좋았다.

학창 시절 도서관에 처박혀 살았던 나로서는 이곳이 고향 같았다.


원하는 책을 빌리고는, 도서관을 나와 악명 높은 언덕을 오르면 두 건물을 기억자로 두고 넓은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있다.

제법 겨울다워진 날씨 탓에 잔디밭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따듯하게 몸을 녹이기 위해 프로이트 책 한 권을 들고 5층에 위치한 교내 카페에 간다.

기하학적 소파들이 놓여있고, 비비드 한 색상의 조각상이 있는 곳.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달콤한 벨기에 와플 향이 가득한 이곳. 학교에 일찍 도착하거나, 공강이 있을 경우 난 언제나 이곳에 앉아있다.

언제나처럼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천 원짜리 벨기에와플하나를 주문한다.

창가로 햇살이 살짝 스며들어오는 4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유리창에는 까만 고양이 스티커가 붙어있어, 바깥풍경을 살짝 가리기도 어우러지기도 한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아까 대출해 온 책을 펼친다.


"언니 또 여기 있었네요." 같은 과 동생인 윤서가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았다.

하얀 얼굴에 까만 긴 머리,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적당한 체형에, 무채색 옷을 즐겨 입는 윤서는 오늘도 하얀 셔츠와 까만 바지를 코디했다.

동그란 얼굴에 시원시원한 말투가 통통 튀는 친구다.

"다음 강의실 201호지? " 나는 벨기에 와플을 한입 베어 물며 물었다.

"아, 노동법 진짜. 외울 거 많아 귀찮아. 언니 공부 많이 했어요?"

윤서는 투덜거리며 물었다.

노동법 쪽지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적당히 자리를 정리하고 강의실로 내려왔다.


하나 둘 강의실이 채워지고, 근로기준법 시간은 시작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게 금세 끝나버린 것 같았다.

법대로 진학한 뒤, 내 적성을 찾은 기분이었다. 항공과 때에는 억지로 외워도 잘 안 외워지던 항공 코드들과, 실무들로 간신히 B플러스를 받곤 했다.

그러나 법학은 내가 찾던 학문인 것 같았다.

학창 시절 문과였지만 수학을 가장 좋아했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공식에 따라 정확한 답을 내는 수학도 좋았다.

법학은 딱 국어와 수학을 합쳐놓은 듯한 학문이었다.

제정된 법령에 맞추어 사례를 풀어나가는 논술형 시험을 칠 때에는, 내 손은 날개가 돋은 듯 답안지를 작성했다.

난 거의 모든 과목이 A플러스였고, 동기들은 내 노트를 자주 빌려가곤 했다.


만족스러운 대학 수업과, 새로 사귄 친구들, 종우와의 즐거운 주말 데이트를 하며 행복한 날들이었다.

"언니 나도 스마트 폰으로 바꿨어요!!"

수업이 끝나고 윤서가 SKY 베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종우는 진작부터 스마트폰인 아이폰3gs를 쓰고 있었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나는 스마트폰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이미 절반 이상 스마트폰으로 바꾼 것 같았다.


그해 겨울 종우는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나에게 아이팟을 선물해 주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나를 위해 아이팟으로라도 스마트폰의 앱들을 써보라는 의미였지만, 나는 카카오톡을 다운로드한 거 이외에는 거의 MP3의용도로만 사용했다.

아. 종우와 페이스타임을 할 때에도 종종 사용하긴 했다.

와이파이 환경에서 무료로 영상통화를 즐길 수 있다니 세상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교내 카페는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 곳이기에, 그곳에서는 아이팟으로 스파이 캠 앱을 켜놓고 책을 읽곤 했다. 스파이캠은 전 세계의 관광지나, 동물병원, 공원 등 여러 장소에 설치된 공개 CCTV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앱이었다.

한국과 시간이 정 반대인 나라의 Bar CCTV를 볼 때면, 바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는 외국인들을 보고 나까지 덩달아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미국 어딘가 바닷가를 보여주는 CCTV는 그날그날 날씨에 따른 파도를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캠은 애견호텔의 CCTV였는데, 귀여운 고양이들이 하루종일 노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좁지만 안락한 장소에 앉아, 드넓은 세상을 훔쳐보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나에게는 오늘 오전이지만, 세상 어딘가에 어제 오후라는 것이, 나는 수업을 기다리며 학교 카페에 앉아있지만, 유럽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레스토랑에 있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다.


스파이캠 세계지도 검색으로 난 조심스럽게 런던을 검색해 보았다.

하루종일 차들이 왔다 갔다 지나다니는 도로를 비추는 CCTV가 떴다. 멀리서 잡은 화면인지 차들이 아주 작게 보였다. 하지만 아주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리니치천문대 표준기준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정확히 9시간이 느린 그 시간.

그 시간 속에 그 아이가 살고 있을 것이다.


카페 창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 계절의 추억이 있을까.

3년 전 겨울, 그 아이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기억이 어땠더라.

그래, 명동에서 만났던 청계천 데이트가 생각났다.

그 아이의 목도리도 떠오른다.

스퀘어 모양에 짙은 회색의 큰 체크무늬, 크고 굵은 술이 풍성했고, 그렇게 따듯하지 않았던 얇고 조금은 까슬거렸던 재질의 머플러.

왜 돌려줬을까. 그 목도리를 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를 떠올릴 추억할만한 무언가라도 하나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니, 우린 추억의 물건이 없었다.

마비노기 게임 속의 펠리컨 펫 정도(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아이와의 사이를 암시라도 하듯 우리에게 손에 잡힐만할 추억의 물건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나중을 추억할 물건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기억 하나하나 너무 소중해서 굳이 그런 건 필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추억상실증 환자처럼 뭐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언젠가 일기장에 '너 하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한 적 있었다.

목도리, 대학후문, 청계천, 까만 뿔테안경, 한쪽귀걸이, 우웩 구토 등의 단어들을 쭉 나열한 것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떤 단어는 무슨 기억일까 싶은 것들이 나온 것이다.

나도 이럴 수 있구나. 그 아이도 그럴까.

어쩌면, 그 아이에게 난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종료는 지나간 추억을 추억만으로 남길 수 없고, 현재의 영속으로 강제시켜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SNS에는 온통 그 아이의 일상이었다.

페이스북에서 훔쳐본 그 아이는, 언제나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즐거운 모습이었다.

원래 그런 아이였다.

조금은 슬픈 미소를 지니고 있던 나와 달리, 언제나 밝고 즐겁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런 아이.

장난스러운 표정의 사진들을 볼 때면, 잘 지내는 모습에 서운하기도 행복하기도 했다.


여자친구는 있을까.

결혼할 한국여자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그날의 고백이 떠올랐다.

사진은 온통 외국인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뿐.

아직 혼자일까.

진철이도 내가 올리는 페이스북 사진들을 몰래 볼까.

가끔 그리운 마음에 끄적이는 내 글들을 읽어보고, 자신을 향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눈치챌까.

아니면 우리의 3년 전 추억은 그 아이에는 지난 기억일 뿐, 아무렇지도 않을까.


그 아이의 마음에 대하여 언제나 물음표였었다.

3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결국 우리는 끝까지 그런 믿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 아이의 생각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 아이에게 그런 믿음이 없었다.

영원한 약속을 하기엔 장난기 가득한 그 아이가 다소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다.

언젠가 내 그런 마음을 알고는 그 아이는 담배를 한대 물고는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며,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아이는 진심으로 나를 평생의 사랑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사실 그 아이를 떠 올린 건 그리 오랜만은 아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호선과 4호선을 갈아타야 했고, 무려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 수많은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은 그 아이 생각이 떠오르기에는 충분하거나 오히려 모자란 시간이었다.

특히 MP3에서 tamia의 officially missing you가 나올 때면 주변의 모든 움직임은 멈춘 듯 내 마음은 속수무책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런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대학시절 평생을 추억할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면, 등하굣길이나 출퇴근길 기나긴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무엇으로 버텼겠는가.

그 시간은 우리가 함께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곱씹어내기 충분했고, 그렇게 그 아이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현재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나 함께 했다.



대학교 3학년의 겨울방학에는 좀 특별한 계획을 짰다.

항공과 졸업 후 1년 정도 다녔던 회사에서 친했던 동기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여행지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시드니로 정했다.

태국 졸업여행 이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태국도, 호주도 사실 그렇게 가고 싶던 해외여행지는 아니었다.

단지 호주에는 워킹 홀리데이 중인 친구가 있어 편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친구와의 여행을 허락해 주지 않던 엄마도 이 점 때문에 안심이 되시는지 특별히 허락해 주셨기도 했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시드니 여행책자를 한 권 샀다.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레는 법이다. 그러나 별로 큰 감흥은 없었다. 현지에 있는 친구가 가이드처럼 모든 일정을 짜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곳이 유명한지, 무슨 먹거리가 있는지 훑어보고 싶었다.

시드니에 대한 내 머릿속 정보는 오페라하우스, 캥거루, 코알라가 전부이다.


그날 밤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작은 내 방의 침대에 앉아 여행책자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행은 떠날 준비를 할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책을 읽다 보니, 별로 마음이 없었던 여행지였지만 슬슬 흥미가 느껴졌다.

마음만은 벌써 시드니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하버브리지 걷기도 하고 싶도,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여유롭게 수다를 떨어보고 싶기도 했다. 가고 싶은 미술관도 하나 알아보았다. 같이 갈 동기에게 책에서 본 곳들을 말해주려고 아이팟 카카오톡을 켰다.


순간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진철이가 보낸 메시지가 빨간색 1을 띄우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아도, 진철이의 프로필 사진이 떠 있었고, '지아야...'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3년 동안 한 번의 연락도 없던 아이.

이미 떠난 아이.

무언가 더 이어나갈 이야기를 만들리 없다고 생각했던 내 과거 속에만 살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 2010년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내 안의 수많은 자아는 얼른 메시지를 누르라고, 아니 누르지 말라고 혼란스럽게 펼쳐져 나를 괴롭혔다.

‘그래. 최대한 자연스럽게. 쿨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자.’

나는 각오를 다지고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눌렀다.

"지아야, 잘 지냈어?"

3년 만이었다.

그렇게 진철이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와, 나에게 또 한 번 닿았다.

"어?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다. 당연히 잘 지냈지! 넌 잘 지냈어?"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를 대하듯 반갑게 인사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음을 숨겼던 예전 네이트온 대화들처럼.

"모야 윤지아 서운하게... 그동안 나 잊어버리고 잘 지냈나 보네"

여전히 돌직구에 솔직하다. 가식이나 겉치레라곤 조금도 없는 이 말투.

이건 현실인가.

"편입 공부하고, 법대로 진학해서 지금 첫겨울방학이야. 넌 뭐 하고 지냈어?"

난 적당히 대답을 회피했다. 그냥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얘기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난 그냥 외삼촌네 가게 일 도와주면서 지냈지."

진철이는 그동안 별다른 일 없이 지냈다고 했다.


우린 2006년의 어느 날로 돌아간 듯 한참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예전 네이트온에서 만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그렇게 약간은 장난스럽게, 마음을 숨긴 채 그랬다.

오랜만이라고, 그동안 하루도 네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오랜만에 우리는 3년 전을 회상했다.

우리가 갔던 장소,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

왜 이제야 일까. 그동안 그렇게 바빴던 것일까.

언제나 다른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학창 시절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난 이 아이에게 역시나 후순위겠지.’

오랜만에 나눈 예전 우리의 이야기는 슬프고 아름다운 하나의 소설 속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것과, 그 아이가 기억하는 것이 같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같은 흑백 사진을 보며 다른 의미의 미소를 짓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공감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 3년간 이 순간을 내가 기다려 왔던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내 남은 인생을 끌어갈 만큼의 행복한 사랑의 기억은, 2006년에만 가둬두고 싶었다. 2006년의 스타벅스 바나나프라푸치노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거나, 다시 만나더라도 같은 것일 수 없는 것처럼.

우린 분명 소울메이트였고,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알았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지아야, 우리 그냥 결혼할까? 나 너 정말 사랑했었는데.. 기억나?"

세상 뜬금없지만, 이 역시 진철이 답다.

"뭐야. 또 예전처럼 그런다 ㅋㅋ"

장난스러운 내 대답을 듣고 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뜬금없는 너의 제안에 정신 나간 대답으로 그러자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걸 정말 바랐을까?

너의 표정을 상상하며 대화를 이었다.

"나 다음 달에 한국 잠깐 들어갈 거야. 그때 만나자"

진철이의 말에 알겠다고는 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단지 한국에 들어올 일이 오랜만에 생겼을 것이고, 한국에 가면 뭐 하지 생각하다 단순하게 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가볍게 말이다.

게다가 잠깐 들어온다면, 가족들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기에도 부족한 시간일 것이다.

그 아이의 말들과 약속들은 그 순간에만 유효하다는 걸 나는 잊지 않았다.

다시 무언가를 기대하고 싶지 않았고, 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다.

끊어진 행복한 장면들의 필름에 부자연스럽게 다시 새로운 장면을 이어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짧았던 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겨울방학의 첫 한 달을 여행 준비를 하며 보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벨이 울렸다. 이른 아침이었다. 누구지. 휴대폰을 봤다. +44로 시작하는 번호

+44라면 영국인데, 그럴 리 없다.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지아야, 나야"

나는 잠이 확 깨버렸다.

이 목소리.

2006년 여름 방학, 내 스카이 휴대폰에 뜬 그 아이의 사진을 바라보다 한참이나 벨이 울리고 나서야 받았던 그 아이의 목소리.

3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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