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 던져져도 서로를 찾아냈을 만큼 강력한 그런 인연
2016.01.11
담백한 듯 애틋한 이것 보다 더 영화 같은 재회가 또 있을까.
용산급행 1-1과 10-4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쏟아놓고 떠나가는 전철과 나란히 걸어오며 만났던 그 재회만큼,이상하게만치 우린 기억에 남을 지하철에서의 재회와 헤어짐이 많았던 것 같다.
예배가 끝난 뒤 종우와 동인천에서 용산행 급행을 타고 점심을 뭐 먹을지 고민하며 부평에서 내리는 그 순간,길게 늘어서 있는 스크린도어 밖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생각해보니 맨 앞에 선 사람의 실루엣이 조금은 당황한 듯 쩔쩔매는 모양 새였던 것 같긴 하다.
전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그 찰나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하필 또 왜 난 정확히 네가 서있던 오른쪽 방향으로 내린 건지. 정말 다행히였네.
문이 열리자마자 내리는 나에게 맨 앞에 서있던 네가 내 손을 꼭 잡았다가, 스르르 풀며 전철 안으로 들어갈 때.
너와 스친 그 찰나가
너한테 잡혔던 그 손길이
꽉 잡았다가 스르르 놓아버린 그 행동이
너무도 우리의 10년간의 추억을 함축한 것 같아 가슴이 시리더라.
그래도 여전히 네 손은 따듯했어.
잡혔을 때의 느낌보다 천천히 놓던 그 떠나던 감촉이 더 오래 남았지.
누구인지, 무슨 상황인지 당황하여 뒤늦게 돌아본 전철 안에 문이 닫히기 전까지 마주한 네 얼굴, 그런 애매한 표정을 지금까지 본적이나 있었나.
종우가 옆에 있어 크게 아는 척할 순 없고,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떨리는 마음에 잔잔히 다가와 손끝의 감촉만 남긴 채 스쳐버린 너. 마치 우리의 지난 날들 같다.
데이트하러 가는 길이라는 네 카톡에 이렇게 스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연이다 싶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담백하게 지나칠 수 있나 서운하기도 하네.
세상의 정반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
뭐 하나 비슷한 점 없던 우리지만, 오늘의 우연이 말해주듯 우린 무조건 만나게 될 인연이었을 거야.
세상 어디에 던져져도 서로를 찾아냈을 만큼 강력한 그런 인연.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이라며 늦은 밤 다시 온 네 카톡.
왜 그렇게 말랐냐는 네 말에, 예전 생각이 나 가슴 한 켠이 아련하게 먹먹하다.
친구로 보고 싶진 않았어.
그런데 이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거겠지.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얼굴은 많이 상했지만 웃으며 내리는 내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는 네 말.
뭘 먹을지 고민하며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행복하다는 내 대답에
피식 웃으며 다 아는 듯 거짓말하지 말라던 너의 말에
아, 이젠 정말 끝이구나.
이젠 정말 사심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아니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그래야 하는 그런 때가 온 것 같다.
너를 잃은 날
그리고 또 너를 찾은 날
반갑다.
내 친구 이진철
그 이름의 마법이 이제 풀려가네.
그립겠지.
살면서 문득문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