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과거로 만들고, 추억으로 포장하는 사진에만 집착했던 나날들.
오랜만에 편입학원 친구들과 부평에서 약속이 있다.
침대에 걸터앉아 협탁 위 거울을 보며 외출 준비를 했다. 귀걸이를 착용하러 고개를 살짝 돌렸다. 협탁 위에 놓아둔 메모리얼체인이 눈에 들어온다.
거울을 보며 귀걸이를 체크하고, 메모리얼체인을 들었다.
묵직한 느낌. 왼팔에 착용해 보았다. 하트모양 락이 채우기 조금 어려웠다.
얇은 내 팔에는 많이 컸고, 그리고 무거웠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약속장소가 하필 부평 나무그늘이다.
밸런타인데이 전날이라 부평 지하상가는 가게마다 달콤한 선물들로 활기를 띄운다.
오후 늦게 만난 우리는 편입 후 각자 대학에서의 생활을 나누며 오랜만에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그 아이와 슬픈 대화를 나눴던 이곳에서, 그 아이가 준 핸드크림을 만지작 거렸던 이곳에서.
오후 6시 난 잠시 통화를 하고 오겠다며, 일어나 카페 안 다른 빈자리로 갔다.
그리고 진철이에게 페이스타임을 걸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나왔다고, 지난번 우리가 같이 왔었던 그 카페라고.
영국은 아직은 어두운 아침. 부스스한 진철이의 얼굴이 환한 화면으로 하얗게 비쳤다.
"형부!!!!"
저 쪽 자리에서 수현이가 소리를 질렀다.
"누가 형부야. 종우오빠 오라고 그래."
은아는 못마땅한 듯 뾰로통하다.
그 소리를 들은 진철이는 자신을 형부라고 부른 수현이에게 처제라고 부르며, 화색을 띄웠다. 평소에는 침대 위에서 한참 동안이나 뒹굴거리던 애가 오늘은 벌떡 일어나 아디다스 져지까지 걸치고 화면 앞에 앉는다.
"형부 영어 한번 해주세요! 영국식 발음으로요!"
다짜고짜 영어를 해보라니. 이건 그냥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 말 좀 해봐라.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진철이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열심히 영어로 뭐라 뭐라 말해주었다. 편입 시험을 본 우리 넷은 아무도 못 알아들었지만. (은아는 심지어 뭐래..라고 하며 계속 궁시렁거렸다)
"오~~~~~~~!!!! 멋있어요 형부!!"
넉살 좋은 수현이의 반응에 진철이는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라고 자기가 사겠다며 큰소리로 떵떵거렸다.
'얼씨구...'
내 친구들에게 인정받아 기분이 좋은듯한 진철이는, 일 나갈 준비를 하겠다고 했고, 난 재빨리 팔목에 찬 메모리얼 체인을 보여주었다.
"진철아! 나 이거 차고 나왔어" 메모리얼체인이 내 팔목에서 딸랑거렸다.
"어! 그거 빨리 갔네! 이쁜데?" 뿌듯해하는 표정. 이 메모리얼체인과 함께 저 행복한 얼굴을 추억으로만 간직할 거라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언니, 난 그렇게 생각해. 진철오빠한테 끌리는데 왜 망설여. 한번 사귀어 봐. 그래야 후회가 없어."
진철이의 영상통화를 끈고 자리에 돌아온 나를 향해 수현이가 그렇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종우오빠가 훨씬 낫지! 어디서 저런 바람둥이 같은... 몰라 종우오빠 오라고 해!!!"
은아는 정말로 못마땅해했다. 그럴 만도 하다. 편입학원에서 종우가 나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잘했는지 알기에. 종우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다른 누가 보더라도 너무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철이조차도. 그게 진철이가 나에게 온전히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를 위하여.
진철이는 종우와의 헤어짐을 한 번도 요구한 적 없었다.
그저 종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순간에는 나는 조용히 말을 잇지 않는 것으로, 진철이는 한숨을 쉬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일관했다.
"종우보다 나를 먼저 만났었다면, 나를 좋아해 줬을까?"
예전 네이트온에서 진철이가 했던 말. 그렇게 언제나 진철이는 한걸음 뒤에 떨어져 더는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군대에 있던 동안 내 옆에 있어줘서 오히려 진철이에게 고맙다고 했던 종우처럼. 진철이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 넷은 헤어지기 아쉬워 다모토리라는 술집에 갔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였지만 심난함에 맥주를 몇 잔 마셨다. 맥주잔을 들 때마다 헐렁이는 메모리얼체인은 짤랑거리며 맥주잔에 부딪혔다.
수현이와 은아는 계속 '종우vs진철'의 화제로 티격태격 중이었다.
이상하게도 당사자인 나는 열심히 구경만 했다. 안주로 나온 뻥튀기를 우물거리며. 수현이와 은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에게만 한결같은 종우를 떠나면 후회할 거라는 은아의 말도, 운명적인 사랑을 계속 외면하면 나중에 평생 후회할 거라는 수현이의 말도. 모두 맞다. 나도 안다.
분명 머리로는 안다.
이미 난 2007년 종우를 한번 놓아보았고, 진철이도 잃어 보았다.
2006년 여름. 난 그 짧은 세 달 동안 너무 많은 감정을 느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었다.
하늘을 붕붕 떠다니듯 행복했다가, 땅 속 마그마까지 깊숙이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기도 했었다. 기다리다 지쳐 화났다가, 슬펐다가, 기대했다가, 인정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그 아이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3년 만에 다시 재개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됐어. 내가 가던지, 아님 너 졸업하면 이리로 데리고 올 거야."
네가 오든, 내가 가든. 어느 한쪽만 움직이면 되었다.
그런데 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였고, 나에게로 와준 건 언제나 그 아이였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쪽은 언제나 그 아이였다.
이번 두 번째 인연도 진철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아직도 티격태격 싸우는 수현이와 은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맥주잔을 바라보았다.
이 맥주잔 한가득 소주를 마셨던 진철이.
둘이 따로 빠져나왔던 종강파티.
우웩 구토.
분무기처럼 내리던 보슬비.
비에 젖은 네 무릎.
울먹이던 목소리.
결혼하자던 그 목소리.
내 이름을 말해주던 그 목소리.
난 비겁했다.
제한적인 상황에 나를 가뒀고, 남겨질 추억에만 집착했다.
그 아이는 순간순간 나에게 진심이었고, 난 그 순간을 과거로만 만들었다. 그리고 추억으로만 포장했다. 결국 추억도 그 순간은 현재였지만, 그 현재에 난 항상 없었다. 아니 있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60만 원이 넘게 나온 진철이의 전화비만큼 내가 그 아이를 위하여 희생한 건 무엇인가.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고, 마음으로만 간절했던 지난 날들.
불안정하고, 의심 많은 나를 믿고 한국으로 와서 살겠다고까지 하는 진철이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모함 뒤에 숨은 용기와 진심에 집중하지 않았다.
이제는 추억이 아닌 현재의 그 아이와 마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즐기려 해야 하는 거야. 어떤 상황에 처했던, 여행은 그곳에 있을 때 즐겨야 해.”
진철이 말이 맞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후회하면 소용없다.
일상을 여행처럼 온전히 즐겨내는 그 아이처럼. 나도 현재 나에게 날아온 그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서로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이다. 어떠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말이다.
종우에게 두 번의 상처를 주게 되겠지만. 나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이 여행을 즐겨내고 싶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술기운을 빌려 진철이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마다하고, 너랑 사귀고 싶다고.
2006년에도, 그리고 2010년에도 우린 한 번도 제대로 남자친구 여자친구여 본 적이 없었다고. 2011년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이제는 정말 너랑 사귀고 싶다고.
연달아 보낸 카톡메시지.
새벽 1시.
비 내리는 학교 후문에서 무릎을 꿇었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행복한 눈물이 흘렀다.
너도 이랬었구나.
이렇게 간절하고, 조금은 개운 했겠구나.
조금은 불안하고, 그리고 많이 행복했겠구나.
놓인 상황 따위, 계산할 수 없었겠구나.
그저 지금. 그 마음을 통째로 보여주고 싶은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겠구나.
10분 정도 지나 진철이에게 전화가 왔다.
일하다가 운전 중에 진동이 계속 느껴져 확인해 보았더니 카톡이 잔뜩 와있었다며. 정말이냐며. 그럼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냐고 좋아하는 네 목소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아이의 모습에 더 가슴이 시렸다.
술기운인지 조금 몽롱하고, 행복한데 눈물이 났다.
진철이는 친구들이랑 맥주를 왜 그렇게 마셨냐며, 핀잔을 주더니 일단 자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전화를 끈고 잠이 들었다. 편안하고 깊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긴장을 풀고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에서 깼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두통이 조금 있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아이팟에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진철이의 메시지가 두 개 와있었다.
어제 내가 사귀자고 했던 말의 채팅창을 스샷 찍어 보관하겠다는 말과. 하나는 장문의 영어였다.
I will be your punching bag.으로 시작하는 메시지.
난 너의 샌드백이 되어주겠다고 너의 투정은 모두 다 받아주겠다는 메시지.
머리가 아파, 일찍 씻으러 화장실에 다녀왔다.
진철이의 부재중이 찍혀있었다. +44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왜 난 한 번도 먼저 전화를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쉽게도 진철이는 받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따라 진철이의 페이스타임이 늦었다. 아까 한번 놓친 전화 이후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일까. 조금은 걱정을 하고 있던 차 아이팟에 카메라 화면이 뜨면서 진철이의 페이스 타임이 들어왔다.
"내가 좀 전에 휴대폰으로 전화했었는데 못 봤어?"
페이스타임이 연결되자마자 따지듯 물었다.
"전화 안 왔었는데, 뭐야 한번 다시 걸어보지. 나 보고는 한번 걸고 말면 뭐라고 하면서"
진철이가 웃으며 말했다.
"넌 항상 전화를 한 번밖에 안 하고 안 받으면 다시 안 걸더라~적어도 두 번은 걸어봐야지. 실수로 못 받았을 수도 있잖아 “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럼 네가 귀찮아할까 봐"
얼버무렸다.
"난 네가 나 버릴 때까지 아무 데도 안가. 행복해질 때까지 옆에 있어줄 거야."
낮고 진지한 그 아이의 목소리.
"밸런타인데이 날짜 잊어버릴 일 없고 좋지?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다!"
아직 술이 덜 깼는지, 대책 없이 튀어나온 말.
'하,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양다리네'
라는 생각이 들어 얕은 한숨이 나왔다.
그날 진철이는 나에게 처음으로 영국 애국가도 들려주었다.
밸런타인데이 아침.
오랜만에 종우랑 용산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오전에는 종우가 수강신청을 하느라 바빠서 낮에 보기로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오늘 아침은 진철이와의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에.
진철이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종우와의 데이트를 준비하기엔 감정이 너무 복잡했을 것이다.
밸런타인데이.
진철이에게 아무 선물도 보내주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오늘은 너무 특별한 날이 되어버렸다.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며 종우에게 건넬 초콜릿을 챙겼다.
어제 편입학원 친구들과 부평에서 만났을 때 밸런타인 초콜릿을 샀다. 고등학교 때 종우에게 주었던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샀던 그 가게에서 말이다.
하늘색 깃털이 잔뜩 달린 쇼핑백(다소 요란스러웠다)에 이것저것 초콜릿을 여러 가지 섞어 넣어서 주었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골랐다.
용산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종우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고맙다고 웃으며 받는 종우. 종우는 좀처럼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주 기쁘더라도. 아주 슬프더라도. 아주 화나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이 차분한 목소리 톤.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본적 없다.
난 그런 종우가 좋았다가도, 답답했다가도, 믿음직스러웠다.
오늘아침의 이번 밸런타인데이의 새로운 의미는 일단 잊고 종우와의 데이트에 집중했다.
종우만 생각하며 초콜릿을 골랐던 고등학교 소녀 때처럼, 여전히 내 곁에 묵묵히 있어주는 지금은 종우에게 일단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다. 익숙함을 끊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거다!"
뛸 듯이 기뻐하며 차를 세우고 전화를 했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용산역.
그 아이와의 추억이 있는 곳.
우리는 라푼젤 영화를 보고 파스꾸찌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지난번 진철이와 앉았던 자리에 자꾸 시선이 갔다. 젊은 여자 둘이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거 받아!"
종우가 내 주머니 속에 무언가를 쑤셔 넣어주었다.
카스타드? 얼마 전 카스타드가 먹고 싶다고 스치듯 했던 말을 기억하고 사 왔다.
살며시 웃으며 따듯하게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종우의 듬직함. 이 안정감. 별다른 표정이 없어도, 묵묵히 나를 챙겨주는 나무 같은 사람. 바위 같은 사람.
나는 종우를 배신할 수 없다. 일정 부분 이미 배신했을지라도.
나는 6시까지 집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인천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6시에 진철이에게 전화를 해줘야 하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종우는 내가 피곤한 줄 알고 걱정스럽게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무거운 마음. 약간의 죄책감. 이번 밸런타인데이의 의미.
아무것도 종우는 모른다.
그저 함께했던 수많은 밸런타인데이 중 하루였던 것으로 기억하겠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 맞이하게 될 수십 번의 밸런타인데이는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왜 하필 오늘을 고른 것일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사이에 대한 강력한 흔적으로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닿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결국 또 수많은 밸런타인데이를 거칠 때마다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다시 나는 현재가 아닌 추억으로서의 너를 되살려내기 위하여, 이기적 이게도 오늘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6시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진철이를 깨웠다.
언제나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밸런타인데이인 만큼 단체 예약이 있어 바쁠 것 같다는 이야기. 그래도 4시 브레이크타임에(한국은 새벽 1시) 전화 주겠다는 이야기.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되었다.
어차피 한국과 영국의 시차 때문이라도 종우와 진철이에게 모두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게 2월을 보냈다. 낮에는 종우와, 이른 아침과 밤은 진철이와.
공간적인 제약과 시차는 그 둘을 아우를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해 줬다.
적어도 허락된 것처럼 보였다. 종우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정적인 교류와 설레는 이야기들을 진철이와 나눴고, 나무같이 한결같은 종우에게 다가가 쉼을 얻었다.
역동적이고, 활발한, 언제나 새로운 화제와 즐거운 대화를 먼저 걸어주는 진철이와 통화를 할 때면, 난 거의 대답만 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아이의 얼굴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는 종우와는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종종 용산 파스꾸찌에 앉아, 각자 책을 읽거나 건담을 조립하는 등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며, 함께 있음을 즐겼다.
두 관계는 모두 완벽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행복했다. 분명히 행복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살이 빠졌다.
해와 달을 모두 감싸 안았으니, 몸이 상하는 것은 당연했다.
양다리는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체력싸움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정신적, 신체적인 에너지 소모는 컸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야 했고, 오후에는 외출, 저녁에 통화를 하기 위해 서둘러 들어오고, 새벽 1시까지 기다려 진철이와의 통화를 끝낸 후 늦게 잠들고, 또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바쁘고 힘든 나날들이었다.
어느 하나 놓을 수 없기에 간절히 붙잡고, 어느 하나 미안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더 진심으로 잘해줬다.
두배로 행복했지만, 몇 배로 더 힘들었고, 슬슬 지쳐갔다.
죄책감의 무게는 그런 것이었다. 어느 한쪽에도 떳떳하지 못했던,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한. 더 이상 합리화 할 자신조차 없을 정도의 짓누름.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쳐갈 무렵 개강일이 다가왔고, 난 법학과 4학년이 되었다.
이번 학기는 무려 24학점을 신청했다. 학점 평점을 위해 무리하게 신청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집중 할 것이 필요했기도 했으리라.
"언니 24학점 가능해요? 일본어 때문이죠? "
윤서는 방금 배식받아온 라면이 올려진 쟁반을 내려놓으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오늘도 식판에 평범한 한식을 받아왔다.
"응 뭐, 일본어가 도무지 어려워서 학점이 잘 안 나오더라고."
전공인 법학은 거의 모든 과목이 A+였지만, 부전공인 일본어는 도무지 적성에 안 맞는지 B-를 받았던 것이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이었지만, 엄마가 일본인이거나, 일본에서 살다 왔거나 하는 일어일문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학점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평점 올려야지 뭐 "
반찬으로 나온 연근조림이 달짝지근하니 맛있었다.
윤서가 앉은자리 뒤편으로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고, 가수 비의 널 붙잡는 노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여대라 그런지 모든 학생들이 밥을 먹다 말고 멈춰 소리를 지르며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여대의 풍경은 졸업한 전문대학과는 사뭇 달랐다. 삼삼오오 몰려가 밥을 먹던 풍경이 아닌, 거의 대부분 혼자 또는 둘 정도로만 모여서 밥을 먹는 모습. 공부를 하며 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모습이 일상적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면 강의실까지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노란색, 빨간색 알록달록 튤립이나, 팬지 같은 꽃들이 심어져 있는 길이 나온다. 아기자기한 작은 텃밭도 있었다. 아직은 여전히 조금은 춥지만, 이곳은 제법 봄기운이 풍겼다.
계절이 바뀌면 나는 공기의 냄새를 즐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불어온 다른 공간과 시간의 내음.
봄 내음에서 나는 특유의 따스한 향. 대지의 냄새랄까. 운이 좋다면 2006년의 봄 내음과 비슷한 공기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2011년 봄은 무르익었고, 나는 24학점을 소화하느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거의 학교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 했다.
도무지 공강시간이 나지 않아, 교내 카페조차 가지 못하였고, 다른 생각할 여유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끔, 강의가 없는 날이거나 일찍 끝난 날은 종우가 명동이나 용산에서 나를 기다렸다.
새로 생긴 가게들을 탐방하며 맛있는 걸 먹었고, 예쁜 카페를 찾았다. 그날 들었던 강의에서 있었던 일이나 등하굣길 오가는 길에서 산 티셔츠 따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나처럼 옅은 미소를 띠며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종우와의 일상은 나를 안정되게 해 주었다.
벌써 3월 중순으로 접어들어, 제법 바쁜 학교생활에 익숙해졌고 날씨도 꽤 따듯해졌다.
만연한 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모든 일상의 루틴이 일정하게 돌아갈 때즈음, 그렇게 진철이와의 연락은 끊겼다.
어느 한쪽이 끊었다기보단, 개강 이후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진 것이다.
집에서 2시간이나 걸리는 등교시간 때문에 난 항상 일찍 일어나야 해서 오전 9시 진철이와의 페이스타임은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일 끝나고 들어와서 우리 지아 얼굴도 못 보겠네."
개강전날 진철이가 페이스 타임에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 아침 9시면 이미 나는 첫 교시 강의를 듣고 있을 시간이기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철이의 브레이크타임인 새벽 1시(영국은 오후 4시)에는 이미 다음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 내가 잠들어있는 시간이어 통화할 수 없었고, 진철이를 깨워줄 오후 6시 또한 거의 학교에 있거나 돌아오는 전철 안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도 카톡 자주 하면 되지 뭐~ "
난 그렇게 무심하게 말했다. 마치 오랜만에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언제 한번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듯 무책임하고, 대책 없게.
사실상 연락이 어려울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고 각오했다.
아직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았던 나는, 카카오톡을 확인하려면, 학교 중앙도서관이나 wi-fi존인 교내카페에 가서 일부러 아이팟을 확인해야만 했다.
24학점을 소화하느라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 간간이 이어지지 않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다가, 그렇게 점점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장거리 연애의 종착점에 다다른 것처럼.
그렇게 긴 여행을 마치고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부평역에 들러, 두꺼운 종이와 펜과 각종 꾸미기 용품들을 구매했다. 팬시점에서는 끈끈한 풀내음이 났고, 종이향이 났다. 왠지 마음이 안정되면서 차분해진다.
마지막일 것이다.
이 행위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정리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카드를 만들 재료를 구입해서 집으로 왔다.
열심히 오리고 붙이고, 커다란 카드를 만들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카드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담을 수 없기에. 내 마지막 손길로 직접 만든 편지지에 우리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적고 싶었다.
편지지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요즘 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기록했다. 마치 어제 통화한 사이처럼.
3월 28일 너의 생일.
오늘 보내면 생일 전에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받은 메모리얼 체인이 생각났다.
생일 선물을 사서 보낼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그 아이와의 관계가 흐릿해진 시점에 내가 준 선물이 나뒹굴지는 않을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리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지막 노력으로 직접 만든 카드와, 꾹꾹 눌러쓴 한글 편지를 선택한 것이다.
만약 그 아이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읽을 수 없을 테니까.
이러한 생각을 하니 입가에 쓴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했던 지난 2월의 추억을 좀 더 간직해 둘걸.
좀 더 기록하고 좀 더 상기시킬걸.
그러나 2006년 종우와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그 아이에게로 갔을 때 멀어진 그 아이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귀기로 결정하고 한 달을 채 가지 못한 우리 관계.
결혼하자는 한국에 와서 살겠다는 졸업 후 영국으로 오라는 너의 끊임없는 요구와 우리의 수많은 약속들은 끝이 다다르면 이렇게 모두 무효가 되는 것일까.
해제조건부 사랑. 역시 그랬던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완료되었고, 완료된 시점에 모든 약속들은 없던 것처럼 해제되어 버렸다.
봉투에 영어로 그 아이의 주소를 적고, 그 아이의 이름을 적는 순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 모든 행위가 무슨 의미일지,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우체국 직원에게 그 편지를 전해 주던 내 손은 머뭇거렸지만, 젊은 직원은 친절한 미소로 그 편지를 1분도 안 돼 접수시켜 버렸다.
흐릿한 인연의 끝의 정리.
내 손으로 자연스럽게 일상처럼 우리는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그렇게 곧 중간고사기간에 접어들었다.
학교로 오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형법각론을 펼쳐 읽는다.
네 생각은 나지 않는다.
지난 밸런타인데이 사귀자고 고백했던 내 무모함과 죄책감은 이제 만족하냐는 듯 나를 놓아주는듯했다. 잘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사귀지 않고 끝냈더라면, 2007년처럼 되었으리라.
시작을 해야 끝도 낼 수 있듯.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에 다시 한번 후회할 거였을 테니.
이런 끝에 만족했다.
안녕이라는 끝맺음 없이.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다시 꺼내 놀 것처럼 정리하여 침대밑에 넣어둔 어린 시절 장난감 상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