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enough. Enough now.
"나 이제 수속 밟아~ 탑승수속을 우리 과 선배가 해줘서, 옆자리 비워주셨어. 그 자리에 네가 앉아있다고 생각할게"
그렇게 진철이는 떠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일상은 예전과는 달랐다.
그 아이는 분명 한국에 없었지만, 내가 가는 곳마다 존재했다.
부평지하상가 싱크빅 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릴 때도, 종우와 간 명동 거리에서도, 내 방 책상 위 시드니 여행을 준비하는 연습장 속에서도. 그 아이는 어디에나 있었다.
"나 이거 시드니 갈 때 입으려고 샀다~"
새로 산 청 반바지 사진을 보내면 "너무 짧아. 반품시켜"라고 답이 왔다.
진철이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내 사진첩이 따로 생겼다.
내 사진첩의 이름은 “너”였다. 참으로 간단한 2인칭.
그 사진첩에는 마지막 데이트 때 홍대 커피프린스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우리 잘 어울리나요' 사진 설명도 참 간단하다.
"지아야. 어떻게 하면 너희 어머니한테 잘 보일까?"
그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카톡으로 나에게 물었다. 페이스타임으로 영상통화를 할 때 가끔 엄마가 뒤로 지나가면, 목놓아 “어머니임~~~~~~~~~~”을 외치며 불러댔다. (이어폰이라 전혀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너 때문에 나 군대도 갈 거야."
아직도 난 이 말이 진심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병무청에서 군대 안 올 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니까 영국으로 쪼르르 갔냐?"
난 재빨리 핀잔주었다. 데이트 중 병무청 전화가 온걸 어쩌다 듣게 되었는데, 이중국적은 군대를 가지 않으면 한국에 머무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됐어. 내가 가던지, 아님 너 졸업하면 이리로 데리고 올 거야."
이 말도 진심인지 정말 궁금하다.
인생의 커다란 결정을 앞둔 고민들. 그 중요한 결정들의 변수가 정말 “나”인 걸까.
비현실적인 환상 속에 사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일상. 거짓말 같게도 이게 요즘 나의 일상이었다.
진철이는 전화비가 60만 원이 넘게 나왔다고 했다. 국가코드 +44를 볼 수 없는 게 슬프긴 했지만, 스카이프와 페이스타임을 이용해 연락했다.
매일아침 8시.
페이스타임이 울리면, 하루를 마친 진철이가 나를 깨운다.
부스스하게 막 일어난 오늘을 시작할 내 얼굴과, 고단한 듯 지친 어제를 끝내는 진철이의 얼굴.
조금은 헝클어진 두 얼굴.
하루의 시작과 끝은 결국 그렇게 이어졌다.
진철이는 가끔 휴대폰을 들고 컴퓨터 책상 옆 작은 창으로 나를 데리고 가, 창밖 영국의 저녁거리 풍경을 보여준다. 그건 우연히 어느 날 통화하다가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려서 창밖을 내다본 것을 내가 궁금해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아침에 누리는 영국의 야경. 이보다 더 황홀할 수 있을까.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눈이 수북이 쌓이는 길게 뻗은 거리의 풍경은 평온했다.
비가 부슬부슬 흩날리던 3호관 앞 등나무 벤치 앞에서 본 풍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노란 가로등 아래 내리던 비. 그리고 길게 뻗은 그 길. 일어서던 내 팔을 잡고 고백했던 그 아이의 모습까지.
매일 저녁 6시.
하루를 마친 나는 진철이에게 페이스타임을 건다. 영국은 아침 9시. 어서 일 나갈 준비를 하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깨운다. 어느 날은 씻고 나갈 준비를 다 마칠 때까지 페이스타임을 그대로 켜 놓는다.
서로 무심한 듯할 일을 각자 하다가, 힐끔힐끔 화면 속 서로의 움직임을 확인한다.
어느 날은 별다른 말 없이 서로 얼굴만 한참을 바라본 적도 있다.
와이파이가 끊긴 건지 의심되지는 않는다.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 섬세한 눈빛의 움직임을 느끼며, 이것이 현실임을 서로 진득하게 천천히 느끼는 것이다.
"아.. 그냥 계속 이렇게 니 얼굴만 보고 있고 싶어."
라고 내뱉는 그 낮은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의 파동이 좋았다.
해와 달처럼, 어긋난 시간 속에서 찰나의 만남으로 그 아이는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경이롭지만 곧 밝아올 여명처럼, 아름답지만 곧 사라져 버릴 석양처럼.
하지만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분명히 우리는 그렇게 찰나를 스칠 수 있을 것이다.
1월 중순 호주 여행은 계획만큼 즐겁지만은 않았다.
같이 간 동기가 호주에서 가이드해 준 정식이의 가이드 방식을 못마땅해했기 때문이었다. 체계적이지 않다는 이유였는데, 해외 자유여행이 처음인 동기는 패키지여행이 더 입맛에 맞았으리라. 괜히 중간에서 난 굉장히 난처했다.
동기는 정식이와 같이 다니기를 거부한 채, 어느 날은 나와 둘이 1일 패키지여행으로 블루마운틴을 가자고 했고, 어느 날은 무작정 걸어 달링하버까지 가기도 했다.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꽤 운치 있었다. 원래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까.
계획과는 틀어진 하루 일과들과, 동기와 정식이의 트러블까지 모두 가져간 연습장에 꼼꼼히 기록했다.
진철이가 낙서한 페이지도 무심히 넘겨본다.
호주는 영국과의 시차를 2시간이나 더 늘려줬고, wi-fi는 최악이었다. 버퍼링이 심해 멈춘 화면만 바라본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드니에 머문 일주일간 진철이는 꾸준히 연락해 주었다.
통화상태가 좀 나았던 날, 나는 동기와 정식이와의 트러블 때문에 힘들다고 투덜거렸더니 진철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즐기려 해야 하는 거야. 어떤 상황에 처했던, 여행은 그곳에 있을 때 즐겨야 해.”
역시 진철이 다운 대답이다. 언제나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그 아이의 모습답게.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그 아이의 모습답게.
별다른 일정 없이 동기와 둘이 택시를 타고 오페라 하우스 앞으로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한 기분이 절로 드는 풍경이다.
바람을 쐬며 느꼈던 한겨울의 여름 냄새. 노천카페에서 흘러나왔던 재즈. 그리고 해 질 녘 바다와 하늘의 색이 같아질 때의 평화로운 풍경들.
그 자유로운 공기와 주변 소음의 어우러짐이 좋았다.
며칠 전 정식이와 다 같이 하버브리지를 건넜던 날(동기와 정식이가 틀어지기 전) 우리 셋은 각자 거리를 둔 채 생각에 잠겨 걸었다. 맨 앞을 동기가 씩씩한 걸음으로 앞장서서 걸었고, 가운데는 이어폰을 꽂은 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고, 그런 내 뒤를 정식이가 조용히 따랐다.
난 숨길 수 없죠
그대 눈 속에 난 많이도 웃네요
내 맘을 말해줄게요
떨리는 이 순간 빛나는 오늘밤
많이 기다려온 그 말을 참아왔죠
그대에게 모자란 나라서
늘 내 곁에만 그렇게 있어줘요
처음 같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보다 더 그대를 아낄게요
눈물도 없을 만큼 상처도 지울 만큼
셀 수도 없을 만큼 사랑할게요
진철이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음반. 브라운아이즈소울의 Love Ballad 가 흘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발길을 멈췄다. 진철이가 내 연습장에 그려주었던 그 하버브리지 위에서. 잔잔히 일렁이는 바다와 푸르른 하늘, 구름이 걸쳐진 오페라하우스. 그 옆을 지나가는 커다란 유람선.
"난 해피엔딩이 좋더라"
한껏 들뜬 그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이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일지라도, 나중에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라도,
다시 태어나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더라도, 난 그 아이를 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난 하늘색 체크무늬 반팔 블라우스와, 짧은 하늘색 캉캉 치마바지를 입었다.
뒤따르던 정식이가 돌아보라며 찍어준 사진 속 내가 마음에 든다. 바람에 휘날리는 내 머리와 자연스러운 미소에서 사랑받고 있는, 사랑하고 있는 내 행복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조금은 버겁고, 약간은 불안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느껴지는 미소.
너무 행복해서 조금은 슬퍼 보이는 옆모습까지.
호주에서 돌아온 남은 겨울방학기간도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비밀스럽게 시간을 날아 아침, 저녁으로 런던을 다녀와야 했기에.
진철이는 마치 나와 연락하는 일 이외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주말이면 진철이는 날 위해 런던 시내 풍경을 찍어 보내 주며, 생생한 현장 보고를 하곤 했다. 한밤 중 누비고 다닌 아침의 런던의 풍경은 안개의 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밝고 화창했다.
2월에 접어들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특별하지만 조금은 불안한 이 관계는 어느덧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 속 습관이 되어버렸다.
"조만간 한국으로 소포 하나 갈 거야~"
아직 너무 졸려 눈도 못 뜨고 페이스타임을 수락한 나에게 진철이가 말했다.
화면 속 진철이는 캄캄한 방 안에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른쪽 상단 작은 화면엔 하얀 배경에 헝클어진 머리에 눈을 반쯤 뜬 내 얼굴이 가득 들어있었다.
"엥? 무슨 소포?"
진철이는 궁금해하는 나에게 조금은 고민하더니, 책상으로 화면을 옮겨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흐릿하지만 반짝이는 무언가.
화면의 초점이 맞춰졌고, 진철이의 손 위에는 두꺼운 체인 팔찌가 들려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섯 개 정도의 작은 참들이 달려있는.
난 졸린 눈을 비비며 진철이 손위에 놓인 저게 무엇인지를 실눈을 뜨고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봐봐. 내가 설명해 줄게."
설명이 필요한 팔찌인 건가?
"메모리얼체인이라는 건데, 하나하나 추억을 매달아 만든 팔찌야"
메모리얼체인. 처음 들었다. 낭만적인 이름이다.
"이건, 너 곰돌이 좋아해서 달았고!"
팔다리가 딸랑거리는 꽤 커다란(손가락 한마디만 한) 은으로 만든 곰이 화면 앞에서 딸랑거리고 있었다. 초점이 맞지 않아 화면이 흐릿해졌다.
"이건 종인데, 종은 영국에서 행운을 상징해, 그리고 이 주사위 한쌍도"
종과, 주사위가 왜 행운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건 캥거루! 너 시드니 다녀왔으니까"
피식 웃음이 났다. 캥거루라니. 그 의식의 흐름이 참 진철이다웠다.
그 와중에 ‘아니 난 차라리 코알라가 좋은데’라고 속으로 생각한 나도 참 나답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랜드피아노. 너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잖아"
뚜껑이 열리는 그랜드 피아노 참은 정말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뚜껑 부분이 얇고 가는 레이스로 표현되어 있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내 밸런타인 선물이야! 지금 보내면 밸런타인데이 전에 도착하겠지"
진철이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근데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주는 날 아니야?"
난 의아한 듯 물었다. 생각해 보니 난 진철이에게 아무것도 보내 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한국에서의 의미고, 외국에선 그냥 밸런타인데이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 주는 날이야."
진철이는 아까 정리하던 옷가지가 있는 침대 쪽으로 다시 화면을 옮겼다.
진철이가 미리 보여준 메모리얼체인은 정말 밸런타인데이 전에 도착했다.
먼 길을 오느라 많이 흐트러진 고급스러운 초콜릿 한 상자와 함께, 메모리얼체인은 빨간 오간자 실크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초콜릿은 엄마와 같이 까먹고, 촘촘한 오간자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빨간색 중에서도 장밋빛 빨강이 아닌, 쨍하고 야한 밝은 빨간색 주머니.
끈으로 조여진 부분을 느슨히 열어, 메모리얼 체인을 꺼냈다.
그 아이의 손위에 있던 것이 이제 내 손위에 있다.
드디어 내 손에 그 아이가 준 손에 잡히는 무엇이 들려있었다. 변하지 않을, 언제든 추억할 수 있는 물건.
찬찬히 달려있는 하나하나의 참을 바라보며, 진철이가 설명했던 그날의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건 종인데, 종은 영국에서 행운을 상징해, 그리고 이 주사위 한쌍도"
종안에 추가 딸랑 거리며 쇳소리를 낸다.
이걸로 족하다. 충분하다.
러브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 장면 후 여자가 달려와 남자에게 키스해 주는 장면에서 나왔던 대사. enough now.
이름처럼 메모리얼체인 안에 우리의 추억이 영원히 가둬졌다.
살면서 언제든, 추억하고 싶을 때, 기억해내고 싶을 때. 꺼내어 볼 수 있는 그 무엇. 손에 잡히는 그 무엇.
"한국에서 살 방법을 찾아보려고. 외삼촌네 가게를 그만 둘 생각이야"
지난번 페이스타임 때 진철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고민 중이라던 그 아이.
희망찬 듯, 조금은 불안해 보였던 그 눈빛. 차분했던 그 목소리. 난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영원히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손에 들려있다.
그러나 enough now라고 중얼거릴수록 분명해졌다.
영원히 잡고 싶은 건 추억이 아닌 그 아이의 현재라는 사실이.
외면하려 할수록 분명해졌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차가운 추억의 은팔찌가 아닌, 지금 당장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따듯한 그 아이의 손이 잡고 싶다는 이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