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반반결혼은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가

평등과 사랑,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by 애송이

반반 결혼.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이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혹 처음 듣더라도 이 단어의 뜻을 대략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에서 평등을 유지하자는 것. 내가 하는 만큼 너도 하고 너가 하지 않는 것은 나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스레 출산에게까지 적용하면 나는 낳는데 넌 안 낳네? 내가 젖도 주는데 너는 젖도 안 나오네? 반반이 안되니까 아이는 갖지 말자. 이런 흐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명확하다. 자신들이 보고 자란 결혼 생활이 불평등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윗세대는 대다수가 외벌이였다.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집안을 돌보고. 명절에 친가 쪽은 가지만 외가 쪽은 가지 않고. 사실 단어에서부터 아버지의 혈육에게는 가까울 '친'을 사용하고 어머니의 혈육에게는 바깥 '외'를 쓴다는 것으로 얼마나 이 관계가 형평성이 어긋난 관계인지 느낄 수 있다. 사실 형평성이 어긋났다기보다는 동등하지 않은 관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친가에 가는 만큼 외가를 간다고 해도 어머니의 가족을 '외가'라고 부르는 한 그들은 여전히 외인(外人) 들일테니까.


처음 반반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든 생각은 '역시 요즘 세대는 똑똑하군.'이었다. (필자는 88년생 여성으로 결혼 9년 차에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은 '그렇다면 이전 세대는 멍청했던 것인가?'였다. 만약 그들에게도 평등이 주어졌다면, 그들은 행복했을까?


일단 첫째로 그들은 멍청하지 않다. 되려 대단하다. 아이를 키워내고 있는 입장에서 이것은 겁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다. 게다가 나는 현재 세탁기와 건조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나의 어머니는 손빨래를 하였다. 심지어 아이도 둘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다 해냈을까. 그들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평등이 부재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대단함을 치하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들의 남편이 매일 저녁 그들의 손을 잡고 '당신이 참 고생이 많아. 어떻게 이 많은 집안일을 다 했어?'라고 말해주었다면, 우리의 머릿속에 그들의 관계가 불평등하게 남아 있을까?


어느 정도 반반(半半) 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으로 감히 말하자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형평성이 아니라 '인정'이었을 것이다. 결혼 생활 중 내 마음을 슬프게 했던 것은 신랑의 본가 방문 횟수가 나의 본가 방문 횟수보다 많음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이를 당연스레 여긴 신랑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 대목에서 누군가 말할 것이다. '그니까 애초에 똑같은 횟수로 방문하면 그럴 일이 없잖아?' 아마도 그렇겠지? 나의 본가를 가는 만큼 신랑의 본가를 가는 공평한 관계가 된다면, 아. 횟수만으로는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내가 신랑의 본가에서 받는 대접과 신랑이 나의 본가에서 받는 대접이 동등한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잔소리를 한번 듣는다면, 그도 잔소리를 한번 듣고. 내가 설거지를 한번 하게 된다면 그도 설거지를 한번 하고. 만약 신랑의 본가 방문이 먼저였다면 나는 그 횟수를 기록하여 신랑이 나의 본가에서 동일하게 실행하도록 하면 된다. 설거지 횟수, 안부를 묻는 횟수, 억지 미소 횟수 등등. 신랑이 내가 했던 만큼 동일하게 실행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다. -일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린 여기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내가 신랑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곤란을 겪는 것을 보고 기뻐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라는 아주 중요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사회적 인식 개선은 필요하다. 여자의 역할, 남자의 역할을 정하지 않아야 하며 신랑의 가족이 나의 가족보다 가깝다던가, 내가 신랑의 본가에서 설거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랑이 나의 본가에서 설거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던가 이러한 생각들은 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평등이 아닌 사랑이다. 고생이 많았던 우리 윗세대 여성들에게 평등한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것은 꽤나 통쾌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진정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감사의 표현일 것이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 팽팽한 내 손으로 같은 마흔에 훨씬 주름졌을 그들의 손을 잡으며 너무 고생이 많았다, 당신이 그 힘든 시간을 견뎌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살아있다고, 나라면 견디지 못했을 그 시간들을 참고 견뎌주어 고맙다고 그리 말을 건네는 것이 반반 결혼을 외치는 일만큼이나 중요할 것이다.


- 글을 맺으며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반반 결혼이라는 것은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면 사랑한다면 나도 모르게 상대를 위해 희생하게 될 테니까. 그것이 사랑이니까. 다만 행복한 결혼이란 가능할 것이다. 사랑을 바탕으로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서로가 그 희생에 대해 감사한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항상 표현해 준다면 행복한 결혼은 가능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양성 평등을 외치는 만큼, 나도 외치고 싶다. 사랑을 표현합시다. 서로의 존재를 감사히 여깁시다. 서로의 노고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한다면 평등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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