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의한 허무한 결말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셜록 홈즈』의 저자 코난 도일은 추리소설의 전개 방식에서 셜록의 훌륭한 보조자인 왓슨을 화자로 설정했다. 그러나 주체인 셜록은 왓슨이 서술할 수 없는 오로지 탐정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단서를 찾고 추리한다. 이러한 서사적 구조에서 독자는 탐정의 추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때문에 독자는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으며 범인이 어떠한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 지배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대되는 범죄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우연’으로 없애버린 것이다.
추리소설에 반영된 시대 상황은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의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를 말한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 영국 추리소설인 『셜록 홈즈』의 등장은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 자본의 집중 등을 통해 거대해진 대도시의 역사적 조건들에 대한 문학적 반응이었다.
19세기 급속도로 팽창한 대도시는 인구 유입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불안한 사회 기반으로 인해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또한, 짙은 런던 안개와 타지에서 온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이질적인 풍경은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는 무대가 되었다. 그에 따른 반응으로 『셜록 홈즈』는 합리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배 이데올로기를 투영한 탐정을 내세워 범죄는 패배가 예정된 계급·인종적 환상임을 보여주었다. (문병훈, 「Sherlock Holmes 연재물에 나타난 허구적 공간과 서사적 전략」, 한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9, pp.6-8.)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유추할 수 있듯 추리소설은 체제 순응적인 문학으로, 그 이전에 등장했던 뉴게이트(Newgate) 소설과 비교하면 추리소설의 특성을 더 잘 알아볼 수 있다. 뉴게이트 소설은 지배계급의 유한 물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법체제의 부작용으로, 그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범죄자의 목소리를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심판대에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모순된 체제를 전달하는 범죄자의 발언은 지배계급의 이익에 해를 입히는 매우 거슬리는 존재였다.
반면, 추리소설 속 지배계급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초월적인 지위를 가지며 영웅적인 면모를 겸비한 탐정은 자신에게 투영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여실히 반영했다. 따라서 추리소설은 범죄의 원인 및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제시함으로써, 셜록에게 범죄는 “가장 난해한 암호”, “가장 복잡한 분석과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추리소설은 범죄자의 정체를 마지막까지 은폐시킴으로써 그를 침묵하게 하고 범죄에 관한 발언을 탐정이 독점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범죄자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형성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또한, 왓슨은 “셜록 홈즈의 유일한 단점은-만일 그것을 단점이라 부를 수 있다면-그가 완전히 수사를 종료하는 순간까지는 자신의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에 대해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셜록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추론의 과정은 왓슨과 독자 모두에게 대부분 은폐된다. 독자에게는 이러한 ‘은폐’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이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연성’인 것이다.
따라서 『셜록 홈즈』의 ‘우연성’은 -범죄자를 통해 사건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은폐함으로써 하나의 의문점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표상과 본질 간의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탐정이 독점하는 서사 구조를 배제와 은폐를 통해 더욱 공고화시킨다. 그리하여 우연이 가미된 추리소설 속에서 ‘타자’인 범죄자와의 소통 가능성은 사라진다. 특히 셜록의 경우 우연으로 인해 범인 검거 장면이 삭제됨으로써, 범죄자의 범행 동기 등 ‘사건’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없앴다. 따라서 ‘사건’이 이제는 사건으로의 의미를 잃게 되었으며 ‘게임’으로 받아드려야 할 이야깃거리로 축소됨과 동시에 범죄자는 생명을 가진 상호 소통의 대상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했다. (문병훈, 위의 논문, pp.48-49.)
이로 인해 독자들은 셜록이 독점하는 추리 과정을 눈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한 편의 서사가 있는 ‘사건’에 대한 부정으로 단순히 오락적인 유희를 받게 되었다.
그때에 나는 처음으로 탐정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탐정소설들을 읽어왔는데, 너그럽게 말하더라도, 그것들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미스터리의 해결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작가들이 일종의 우연성에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공정한 게임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탐정의 성공은 자기 정신의 어떤 자질에 따른 것이어야지 실제 현실에서 항상 일어나지 않는 단지 우연적 상황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에드거 엘런 포(Edger Allan Poe)와 에밀 가보리오(Emile Gaboriau)의 작품을 즐겨 읽었던 코난 도일은 1886년 이전과 다른 탐정을 구상한다. 이때 도일은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떠한 우연이 개입되는 것을 “공정한 게임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폄하했으며, 우연에 의해 서사가 완결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를 통해 그는 탐정이 사건을 추리하는데 우연적인 요소를 집어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정이 사건을 ‘게임’으로 인식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도일은 셜록이 즐기며 임하는 게임에서 그를 위한 우연적 단서를 전혀 주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셜록의 추리를 전하는 화자가 왓슨이라는 것에서 독자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주체의 시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어떠한 경로로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단서를 찾게 된 경위가 우연에 의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탐정의 성공”이 “실제 현실에서 항상 일어나지 않는 단지 우연적 상황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부분이다. 탐정의 성공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 즉 사건을 만들어낸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라면 셜록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연에 이해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논리적인 사고로 접근하여 범죄자를 처단해야 한다.
그러나 도일의 『셜록 홈즈』 연작에서는 범인 검거 장면이 우연에 의해 삭제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탐정의 성공은, 다시 말해 탐정이 게임에서 이긴다는 것은 범인이 사건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추리의 과정을 맞추는 것이다. 사건을 게임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사건을 저지른 범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셜록의 게임은 인간이 가진 행동 동기, 감정의 복합성과 특이성을 무시하고 특정한 단서와 상황에 집중함으로써 승리하였다. 즉, 셜록이 논리와 합리성의 힘에 대한 빅토리아인들의 신념을 체현하는 상징이라면 그러한 위상은 작가의 서사적 조작(narrative manipulation)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셜록의 능력은 작가가 플롯의 운용을 통해 탐정이 처음부터 옳게 추측하도록 하거나 단서나 상황에 대한 다른 가설들을 배제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셜록의 논리적 해결은 발견되기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문병훈, 위의 논문, p.3.)
지금까지 추리소설에 반영된 시대적 배경과 탐정의 독점적 지위를 통해 추리소설의 특성을 알아보았다. 셜록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세계의 기반이 당시의 빅토리아 시대이며, 도일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티프를 이용하여 세계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탐정이 사건을 맡게 됨으로써 시작되는 추리소설에서 ‘사건’의 발생은 필연적이지만 탐정과 사건은 별개의 것으로 구분된다. 19세기 말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대도시의 등장으로 혼란한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탐정이 사건의 인과 관계를 주목한다면 이는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도일 역시 자신의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게임’으로 다루었으며 탐정인 셜록을 초월적 지위를 가진 영웅으로 그렸다. 무엇보다 도일은 우연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몹시 거북해했는데 “탐정의 성공은 자기 정신의 어떤 자질에 따른 것이어야지 실제 현실에서 항상 일어나지 않는 단지 우연적 상황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도일이 추리소설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는 탐정의 범인 검거 장면을 우연에 의해 삭제한 것은 그의 서사적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볼 수 없다.
즉, 탐정의 독점적 지위에 반한다고 생각했던 ‘우연성’은 오히려 범인의 변론 기회를 삭제·은폐함으로써, 하나의 유기적인 ‘사건’을 단순한 ‘게임’인 유희 거리로 만들어버렸으며 사건의 무게를 줄이는 장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건 종결에 필연적인 속성은 범인을 체포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의 발언 기회를 제거하여 탐정과 미스터리 이외에 어떠한 방해 없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탐정 독점 서사구조는 더욱 공고해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계정민, 『범죄소설의 계보학』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 문지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