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 탐정 독점 서사구조와 우연성 ①
우연에 의한 허무한 결말은 의도한 것일까?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으며, 셜록은 이러한 혼란을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해결해 보인다. 그 때문에 독자는 아무 의심 없이 셜록의 추리를 따라가며 그가 내린 결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의 추리에서 독자는 허점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서들을 바탕으로 한 셜록의 추리에서 독자는 모든 단서를 보지 못한다. 독자는 책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왓슨(Watson)을 통해 접하기 때문이다. 셜록이 보는 단서들은 그의 옆에 있는 훌륭한 보조인 왓슨이 자세히 설명하지만, 왓슨 역시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왓슨은 철저히 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전개에 불필요한 부분은 드러내지 않고,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들은 셜록의 추리에서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숨기기도 한다.
『셜록 홈즈: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예로 들 수 있다. 셜록은 왓슨에게 사건을 맡기고 자신은 런던에서 다른 사건을 맡는 척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건 발생지인 황야 근처 동굴에 숨어서 범인이었던 스태플턴의 흔적을 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는 자연히 화자인 왓슨과 그가 서술하는 탐정인 셜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코난 도일(Conan Doyle)이 책을 쓸 당시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더욱 그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결국, 독자들이 보는 것은 셜록이 내린 완성된 결론을 왓슨이 잘 정리해준 한 편의 이야기이다. 탐정이라는 독점적인 지위가 범죄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를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시드니 패짓(Sidney Paget)의셜록 홈즈 일러스트, 1904년이때 독자들은 왓슨에 의해 한 편의 정제된 이야기를 읽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우연’을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에 집어넣은 것이다. 이를테면 범인이 잡히기도 전에 사고로 결말이 나서 셜록의 추리를 따라가던 독자의 김이 새는 이야기가 있다.
당대의 수준 높은 지식인 과학으로 범인을 잡는 셜록이지만, 범인 검거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이 소용없다. 독자들은 제한된 텍스트 안에서 그들만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읽는 이야기 밖의 타자로서 개입할 수 없기에 가능한 완벽한 결말을 원한다.
셜록 홈즈는 추리소설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건에서 범죄 서사를 독점하는 탐정이다. 그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건을 우연으로 풀어낸 코난 도일은 자신의 소설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필자는 추리소설에서 독자들이 더욱 현실감을 느꼈으면 하는 생각으로 우연을 만들어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탐정은 당대의 지배계층을 보호·대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추리소설이 가진, 탐정이 가진 범죄 서사의 진술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범죄자가 처벌을 받는 결말이 합당하다.
하지만 도일은 독자가 원하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고, 우연으로 인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장면은 이야기를 완결짓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셜록 홈즈』 속 ‘우연성’은 탐정의 독점적 지위에 반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불어 탐정이 가진 능력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탐정 독점 서사구조를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914년그러나 탐정 독점 범죄 서사를 조사하면서, 우연에 의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것이 범인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없애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대적 배경과 탐정의 독점적 지위, 코난 도일의 목적을 탐색해보았으며 이에 대한 내용은 [『셜록 홈즈』 - 탐정 독점 서사구조와 우연성 ②]에서 다룰 예정이다.)
탐정의 독점적 지위로 이끌어가는 범죄 서사에서 범인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탐정에 투영된 지배계층의 권위를 생각한다면, 범인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배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도일은 독자들이 범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범인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는 것은 범인에게 관심을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범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소설에서 ‘우연성’으로 작동했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연에 의해 범인 검거 장면이 삭제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범인이 우연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다면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체포 등을 감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셜록이 사건의 전체적인 흐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도일은 ‘우연’을 가장하여 범인의 변론을 들을 기회를 없애 버렸다.
위와 같은 이유로 범인의 목소리를 삭제함으로써 도일은 탐정이 독점하는 서사구조를 더욱 견고히 다졌으며, 셜록은 탐정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어떠한 예외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자료
계정민, 『범죄소설의 계보학』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 문지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