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즐겁잖아요
이번 2020년은 다 같이 기억에서 지우는 건 어떨까요?
벌써 12월이라니 한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가끔 올라오는 질문을 장난스럽게 던져보았다. 아마 모두 그렇다고 답할 만큼 이번 연도는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한 해였을 것이다.
실제로 트위터의 공식 계정에서 ‘2020년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는 말에 대부분 ‘잊고 싶다’라는 뜻을 담아 답했다. 유명한 IT 기업들이 자사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특색있는 답변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이끈 어도비의 ‘Ctrl+Z(실행 취소 단축키)’는 2020년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DELETE(삭제)’,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의 ‘404(오류 메시지)’, 유튜브의 ‘Unsubscribe(구독 취소)’ 등이 있다. 강제로 기억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은 만큼 절대 잊을 수 없는 2020년을 표현한 답변을 보고 있으니 조금 웃프기도 하다.
지난 3월 WHO(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규정하고 모든 것이 멈췄다. 휴학을 신청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으나 전 세계적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찾아보고 선명하게 기록된 확진자 수를 보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재난문자에 일일이 확인을 누르며 창을 닫았지만, 사망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현 상황을 경고하는 덤덤한 목소리는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즐겁잖아요.
고백하자면 며칠 전까지 연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크게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무뎌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번 2020년은 달력보다 코로나19 검색창 화면에 뜨는 확진자 숫자를 더 많이 봤기 때문이다. 또, 집에 있느라 활동량이 적어져서 더욱 느리게 흘러갔던 것 같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금은 괜히 기분이 들뜬다.
이맘때 즈음이면 거리는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물들었고 그 위를 노란 불빛이 장식했다. 가끔 보이는 거대한 트리는 동글고 반짝이는 장식을 자신의 무게만큼 짊어지고 환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리를 가득 채우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만의 분위기를 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연말의 마지막 휴일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보다 따듯한 위로와 격려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면서 다가오는 연말의 들뜨고도 따스한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졌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에 제약이 생기면서 또 마냥 즐길 수 없는 상황에 심란하기만 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슈퍼 전파자가 될 위험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분위기에 취해 부유하던 기분이 갑자기 현실에 처박혀 낭만 따위 챙길 여유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가 즐겁다고 말한 이유는 말 그대로 즐겁기 때문이고 또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연말을 장식하는 크리스마스는 단어 자체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비록 암울한 현실에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 미뤄왔던 설렘을 느끼고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주는 분위기와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의도적으로 집안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거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지 않는 이상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서 즐겨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주접을 떨어주는 것이 국룰’이라는데 하루 전 담아두었던 감정을 마주하고 있으니 더 잘 보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트리를 꾸미기에는 늦은 감이 있으니 크리스마스에 빼놓을 수 없는 캐럴을 플레이 리스트에 서둘러 담았다.
울리는 벨 소리와 시원한 목소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다. 막힘 없이 쭉 뻗어 올라가는 고음과 경쾌한 멜로디에 저절로 신이 난다. 크리스마스 전 가장 들뜬 그때의 느낌을 잘 살렸다. 가사와 함께 보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썰매와 순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잘 느껴진다.
크리스마스에 어렵지 않게 모두 따라부르면서 즐길 수 있다. 재즈풍의 잔잔한 크리스마스 노래만 듣다 보면 조금 심심해지는데 그럴 때 선택한다. 마치 내가 썰매를 끄는 순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흥겨워진다.
언젠가 영어 회화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른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간인 크리스마스의 즐겁지만 쓸쓸한 감성을 담은 것 같다. 이미 지나버린 일에 대해 조금 추억하고 싶다면 미련을 가득 담아 부르기 좋다.
크리스마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이면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면 크리스마스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전주부터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크리스마스의 소울이란 소울은 몽땅 담아서 노래로 만들어질 때까지 휘저어 만든 것 같다. 크리스마스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실체화한다면 머라이어 캐리가 되고 그가 노래를 부른다면 크리스마스가 시작된다.
지나가던 산타도 듣고 가는 플레이 리스트라는데,
집에 있는 우리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 문지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