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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애 Dec 23. 2020

복잡하고 미묘한 찝찝함과 불쾌함 - 살인자의 기억법

너무나도 빨리 읽어버린 소설,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인자’, ‘알츠하이머’, ‘살인’.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머릿속에 남은 세 단어이다.


처음 읽는 김영하 작가의 책이었지만 영화로도 만들어진 『살인자의 기억법』은 유명했기에 내용은 물론 엄청난 반전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기 전 영화의 내용을 알고 있었고, 영화 해석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하면서 소설의 결말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스포일러에 민감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김영하 작가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기에 책장에서 집어 들게 되었다.


굳이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몇 년 전 방영했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애청자였기 때문이다. 색다른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고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로 재미있는 답변을 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가서 다양한 체험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를 보고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겠다고 했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p.7

70세의 나이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김병수는 약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 박주태의 눈을 보고 자신과 동류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시작된다. 


김병수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도 신경 쓰이지만, 자신의 딸 은희의 곁을 맴도는 박주태를 경계한다. 그러나 치매로 인해 끊기는 기억을 막을 수 없었던 그는 은희를 보호하기 위해 박주태를 죽이기로 한다. 망상과 현실을 오가는 혼란 속에서 마지막 살인을 실행할 수 있을까.




반전을 알아도 괜찮다고 그냥 읽긴 했지만, 모르고 봤더라면 분명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동안은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려 한다. 반전을 모르고 볼 때 받는 충격이 더 짜릿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찝찝함과 불쾌함. 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아닌 살인자 김병수에 대한 느낌이었다. 치매를 앓는 살인자의 시선은 소설을 보는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살인에 대한 행위를 일종의 유희로 치부하는 태도와 마지막 살인을 사냥이라 표현하면서 어떤 성취를 이루려 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김병수가 이러한 일들을 겪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고스란히 느꼈다.


단발적으로 훅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김병수의 혼잡한 기억에는 당연히 빈틈이 존재했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짧게는 한두 장 길게는 수십 장을 건너 끊어진 부분을 이어붙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기억이 끊길 때마다 등장하는 ‘*’ 기호가 페이지에도 구멍이 뚫린 것처럼 만들어 필요한 내용을 붙잡을 수 없었다. 치매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는 살인자의 기억을 메울 수 없었다는 듯 말이다.


이 찝찝함과 불쾌함은 책을 덮은 후에도 가시지 않았다. 진득하게 달라붙어서 어디 한 번 해석해보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살인자’, ‘알츠하이머’, ‘살인’. 세 단어가 이리저리 충돌하며 잔여물을 만들어냈지만 끝내 제대로 된 해석을 내놓지 못했다. 평소보다 너무나도 빨리 읽어버린 탓일까.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건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반전을 김병수가 떠올린 기억의 편린으로 서술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힌트를 긁어모았으나 다듬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에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잠언들은 머리를 더 아프게 했다. 이를 돌발적으로 던진 농담으로 달래보려고 했으나 진흙탕 속에 뭉툭하고 무거운 돌을 던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같이 혼돈을 바라보느라 그 속에 빨려 들어갔던 것 같다. 포스트잇으로 표시하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적어두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온전하지 않은 기억 속 망상, 알 수 없는 위화감 그리고 자율성이 0으로 수렴하는 결말. 무언가 말하고 싶었는데 끝에 다다를수록 점점 작아져 버렸다. 결국, 스포일러를 조심하자는 다짐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 문지애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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