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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Apr 19. 2023

어느 날 갑자기 휴직했다

29살, 사회생활 7년 차만에



23년 2월 10일 금요일,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끝내고 강남역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한 2주 동안 밤샘작업을 했던 프로젝트라 힘들었지만 해방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오랜만에 회사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 놀 생각에 신나 있었다. 그리고 근황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요즘 어때? 잘 지내?"냐고 으레 그렇듯이 인사말을 했고, 나는 그 순간 펑펑 울었다.


누구든지, 이유 없이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29살, 직장인으로 일한 지는 4년 차, 23살부터 프리랜서로 일해왔으니 사회생활을 한 지는 7년 차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남들에 비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 직장 15년 다니는 사람도 잘 사는데, 나는 뭐가 이리 힘든 거지?'란 생각을 매일 하며, 작년 8월부터 내가 힘든 이유가 뭔지 고민해 왔다. 취미가 없어서 그런가 생각하며 쿠킹클래스, 피아노 수업도 듣고, 이직처도 알아보고, 심리상담도 다녀보고, 짧게 여행도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년 8월부터 내가 했던 노력들 기저에 있던 생각은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고, 나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휴직이나 퇴사를 추천했다. 회사 때문은 아니었지만 회사 특성상 온전히 나의 회복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그 당시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하루에 15분밖에 못 잤고, 회사에서 공황증세가 불현듯 나타났으며, 불안증세로 지하철에서 갑자기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회사에는 나보다 더 일이 많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나는 그에 비하면 '꿀 빤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은 아니어서 더욱 나에게 원인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으로 나의 힘듦을 판단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힘든 건 나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고, 23년 2월 휴직을 결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남들의 시선에 나를 맞춰서 이 정도면 힘들지 않다고 애써 생각하고 있었다. 내 기준 없이 남의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다가 2월 친구의 인사말 한 마디에 펑! 하고 터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터진 후 휴직을 결정하는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나는 펑 터졌던 그날의 감정과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그다음 날 부모님한테 휴직을 선언했고, 회사에서 휴직을 받아주지 않을 경우 퇴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은 내가 힘들어했던걸 알았기에 그냥 쉬라고 했고, 나는 정확히 3일 후에 회사에 휴직을 통보했다. 의외로 회사는 휴직에 긍정적이어서(?), 내가 2달 쉬겠다고 얘기했을 때 3달 쉬어도 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휴직을 회사에 통보한 바로 그날부터 나는 하루에 9시간 꿀잠을 잤다.


휴직은 정말이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다시 생각해 봐도 휴직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 학생 때부터 쉼 없이 공부했고, 그 결과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무언가를 계속해왔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했고, 대학 졸업 후 창업팀에서 잠깐 일하다가 알아주는 대기업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했고, 지금도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힘든지 즐거운지 기준조차 없는 채 남들이 보기에 성공한 인생을 살아오는 게 내 목표가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직처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하는 게 너무 무서웠고, 심지어 2달 동안 휴직해 공백기가 생기는 것도 정말이지 무서웠다. 아마 2월의 그 사건이 없었으면 나는 관성적으로 병들어가며 현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친구들이 했던 말이 휴직을 결심하게 해 주었다. 친구들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집에 가는 길에 온갖 유튜브 링크와 음악 링크를 보내오며 "언니가 행복하길 바라."라고 말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와닿았던 적이 있었나?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고, 내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행복한 지조차 모른 채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고, 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그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고맙다.) 


파워 J인 내 인생에서 가장 충동적이며 추진력 있었던 순간


그렇게 휴직을 통보하고 3일 만에 휴직계에 서명을 했고, 그날부터 나는 휴직 후 무엇을 할지 내 머릿속 꽃밭에서 행복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휴직일까지는 2주의 기간이 있었고 나는 휴직을 통보한 주의 토요일, 갑자기 멕시코행 티켓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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