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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Apr 20. 2023

그리고 갑자기 멕시코로 떠났다

그 많고 많은 나라 중 왜 멕시코를 택했을까



휴직이 결정된 후 가족들과 친구들, 직장동료들이 나한테 물어봤던 공통질문이 있다.

"그래서 휴직하고 뭐 할 거야?"

"휴직하고 여행 갈 거예요."

"어디로?"

"음 고민 중이긴 한데, 아마 멕시코로 갈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면 99%의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멕시코'하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이 질문에 구구절절 설명하기 일쑤였다. 그 논리를 설명하면, 


1. 이왕 휴직했으니 지구 반대편 나라로 가고 싶다.
2.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대륙으로 가고 싶다.
3. 그러면 중남미와 아프리카가 남는다.
4. 이 중 아프리카는 너무 하드코어 하니 중남미로 정했다. (사실 중남미도 하드코어 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5. 내가 휴직했을 당시 페루, 브라질 등 남미 주요국으로 가는 육로국경이 시위로 인해 막힌 상태라 중미의 멕시코로 선택했다.


그러나 내가 멕시코를 선택한 이유는 친한 언니가 나에게 보여준 여행사진 때문이었다. 그 언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IT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나보다 6개월 전에 휴직을 해 2달간 남미여행을 갔다 온 상태였다. 그 언니가 휴직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언니한테 왜 휴직하냐고 물었고, 언니는 나에게 아래와 같이 짧게 대답했다.


그냥, 쉬고 싶어서

그 당시에는 그 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간 질풍노도 같은 시기를 보낸 후 휴직을 결정했을 때에야 언니의 말이 이해되었다. 휴직한다고 말했을 때 언니는 나의 결정을 누구보다 응원해 주었고 나는 1월에 언니가 보내준 사진이 불현듯 생각나 멕시코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멕시코의 사진도 나의 결정에 한몫했으나, 그 당시 휴직을 한 언니의 상태가 너무 평온해 보이고 자기만의 기준이 뚜렷해 보여서 언니처럼 나도 내 인생의 방향성을 찾고 싶어 멕시코로 결정했던 것도 있다.


23년 1월 (휴직결심 1달 전) 친한 언니가 보내준 멕시코 사진 (Nevado del Toluca). 아쉽게도 이번 멕시코 여행에서 여기는 가지 못했다.


사실 그다음에 멕시코 여행을 짜는 건 굉장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휴직사실을 팀에 공유한 후 더 이상 나에게 큰일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나는 휴직 전 남은 2주 동안 야근에서 벗어나 퇴근 후 시간을 온전히 멕시코 여행계획에 쏟을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두근거렸고, 나름 여행을 많이 다니고 외국에서 살았음에도 중남미는 처음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멕시코를 공부해 갔다. 


오랜만에(?) 일하듯이 여행일정을 짰었다. 그 날의 기록들


그리고 휴직일이 다가왔고, 멕시코에 미쳐있던 그 당시의 나는 빨리 쉬고 싶어 개인휴가를 써서 휴직일을 일주일 당겼다. 멕시코는 내 마음의 도피처였고, 멕시코 여행 외에 나는 모든 감각이 마비된 상태였으며, 회사에 있으면 내 안의 무언가가 닳고 닳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업무를 마무리한 그다음 주 월요일 주간 회의에서 나는 휴직일을 당기겠다고 말했고, 그때 내 상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러면 남은 하루동안 무엇을 하는 데에 집중할 건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의 퓨즈가 끊겼다. 그분이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저 문장만 보면 그리 심한 말도 아니지만, 조직의 경쟁적인 분위기에 너무나 지쳐있던 나는 정신적으로 한계였다. 


그리고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이 조직은 내가 50을 해오면 100을 해오라고 할 것이고, 100을 해오면 120을 하라고 할 것이고, 120을 하면 200을 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그 기대치는 결국 남(조직)의 기준이며, 내 평판보다는 내 정신건강을 우선시해야겠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전까지는 주간 회의에서 상사나 팀원들이 내 결과물이나 퍼포먼스에 의구심을 표현하면 반박을 해서 그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내거나 의견을 꺾었다면, 그날은 처음으로 다른 대답을 했다.


"음, 딱히 오늘 하고 싶은 일은 없는데요."

"오늘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


내 마음속에서는 '인수인계도 다 했는데 도대체 왜?', '진짜 왜 그러냐고 항의할까', '마지막날이니까 티타임 한다고 해볼까' 등 여러 말들이 맴돌았지만 그냥 짧게 대답했다. 어른들은 내가 정신 나갔다고 할 수도 있고, 되바라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내 최선이었다. 그렇게 주간회의가 끝났고, 나는 오후에 있던 회의에 불참 표시를 누른 채 저녁까지 회사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내 휴직생활은 시작되었고, 나는 마지막 한 주간 멕시코 여행을 준비했다.

나의 멕시코 여행은 계획적으로 준비했으면서도 매우 충동적으로 결정된 것이기도 했다. 3주의 시간 동안 나는 항공권, 숙소, 여행일정 짜기, 동행 구하기 등 모든 사항을 계획적으로 준비했고, J형 인간답게 결국 여행 하루 전에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사실 약간 불안하긴 했다. 여행은 많이 다녔으나 스페인어를 못하기에 말이 안 통하는 여행지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며 자기 효능감이 바닥인 상태였고, 난이도 있는 여행지에서 약간의 고생을 하더라도 나의 힘으로 온전히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 하루 전날 밤, 약간의 설렘과 떨림을 안은채 잠들었다.


내 인생 여행지인 멕시코의 사진을 티져로 먼저 공유하고자 한다. Mucho gusto,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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