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유일한 동양인
고요한 마을들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농번기 밭일과 매주 월요일, 목요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다.
산중으로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마을 입구 큰 도로변에 위치한 동네 이름이 송가니 Songani인데, 시장 이름은 여기 지역 이름을 따서 송가니 시장으로 불린다. 좀바 시내와 15km 정도 거리가 있고, 시내에는 정기 시장이 있지만, 송가니 시장은 워낙 유명해서 시내에 사는 사람들도 장을 보러 내려온다.
모잠비크와 국경을 둔 중부 지역에서 가지고 온 감자, 칠와 Chirwa 호수와 말라위 호수에서 잡아온 생선, 좀바산과 마로사 Marosa 산 사이 산꼭대기 마을에서 직접 제작해서 싣고 내려온 원목 문짝, 탄자니아에서 가지고 온 전통 천 치텐제 Chitenje 등 정말 평소에 장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 파견된 활동가들 중에서는 생선을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곳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난 말라위 호수에서 나는 민물고기 반찬을, 특히 현지식 소스를 더해 먹는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보통날 미니버스들이 줄지어 있는 도로변이 장날에는 분주히 장을 보는 사람들과 떼 온 물건을 하나라도 팔려고 열심히인 상인들, 그리고 장을 다 보고 한 짐 챙겨서 미니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게다가 대목을 챙겨서 허기진 사람들을 달래주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사람들로 꽉꽉 찬다.
장날에 나올 때마다 꼭 친한 마을 주민이나 공부방 동료와 함께 온다. 어딜 가나 해외에서는 동양인들은 모두 중국에서 왔다가 생각하는데, 난 평생 살면서 들었을 법한 양을 장날에 나가면 하루 만에 다 듣곤 했다. 장터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런저런 말을 걸고, ‘치나, 치나 (중국인을 일컫는 말)’ 할 때, 가장 좋은 방패는 현지 친구이다. 그중에서 최고는 마을 촌장님이다. 위엄 있는 촌장님과 함께 장을 볼 때는 주변에 기웃 거리는 사람들 수가 훨씬 적다.
맘 한 구석에는 항상 내가 외부인, 외국인,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지을 수가 없었다. 나만 보면 뭐 하나라도 더 팔려고 오기를 부리는 상인들을 상대할 때, 중국인들은 여기서 사업을 많이 한다며, 나는 어디서 장사를 하냐며 대뜸 나를 사업자로 가정할 때, 나에게 무언가를 팔려고 친한 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사람들이 만났다 흩어졌다가, 시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나는 그들이 어디서 온 지 모르고, 그들도 내가 어디서 온 지 모른다.
그럼에도 2년 반이란 시간 동안 장터 여러 구역 곳곳에서 각종 농산물, 물건,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 중에 내 이름을 알고, 나를 아는 이들이 많아졌다. 짐이 많을 때, 장을 보고 올 때까지 내 짐을 봐주는 촌장님의 염소 고기 가판대, 내가 좋아하는 현지 곡물 음료를 돈을 받지 않고 그냥 건네주는 음파소 Mphatso, 현지식 도넛 빵을 팔면서 나에겐 늘 서비스로 몇 개씩 더 주시는 이름 모를 어머니까지. 내 짐을 전담으로 운반해주는 자전거 택시 기사도 있었다.
지극히 로컬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을 나는 로컬 사람들도 놀랄 만큼 잘 먹었다. 마을에서 이웃들이 한 번씩 해준 요리는 잊지 않고 시장에서 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 먹었다. 내가 만든 것은 당연히 얻어먹었을 때보다 맛이 없다. 그래도 그런 방식으로 나는 현지 언어로 반찬 이름과 재료 이름을 배울 수 있었고, 집에 먹을거리가 있으니 현지 친구들을 불러서 내가 대접을 해줄 수도 있게 되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대접하는 것이란 내가 재료를 제공해주고 자신들이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굳이 한국 음식을 찾지 않고, 시내에 나가서 통조림 음식도 사지 않고 정말 백 퍼센트 송가니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끼니를 때우니 한 달 식비가 50달러면 충분했다. 말라위에서 첫 5개월 파견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 보고를 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 엄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행복한 얼굴에 살찐 몸으로 돌아왔다고 말이다!
모든 공로는 나에게 맛있는 현지 음식의 맛을 보여준 이웃들과 신선한 재료들을 제공해준 송가니 시장의 상인들에게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