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의 기억
전기가 들어오는 집에 살았다고 해서 항상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말라위는 전국적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가구는 10% 밖에 되지 않는다. 그 10%의 전기마저도 끊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홍수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이거나 공급해 줄 전기가 부족하거나.
전자의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여론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기에 매우 합당한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 된다.
학자들은 전기 사용량과 유엔 인간 개발 지수 사이에는 강한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말라위의 전기 공급 수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평균 수준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정전은 사실 이런 가난한 말라위 주민들이 매일 겪는, 익숙해져 버린 일상의 일부이다. 전기가 끊기면, 선교 마을의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에서는 디젤 발전기를 돌린다. 주변에 형편이 괜찮은 가게나 공장들은 발전기를 돌린다. 하지만 이 역시 매우 비싸기 때문에 아주 소수들만 할 수 있는 대처법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전기를 끊을 때에는 친절하게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무슨 날 몇 시부터 몇 시간 동안 전기가 끊기는지 미리 알려준다. 집에 라디오도 없고, 라디오를 원활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나로서는 전기가 끊기기 직전 즈음 어쩌다 어디서 주어 듣거나, 전기가 끊긴 후에야 “또 끊겠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린다.
대낮 시간에 전기가 끊기는 것은 내 생활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는다. 낮 시간을 대부분 아래 마을에 (전기가 없는) 공부방과 주변 이웃들을 방문하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대신 집에 돌아온 이후 저녁 시간까지도 정전이 계속되면 숯 난로에 불을 지펴서 밥을 해야 하고, 방과 집 곳곳에 촛대도 놓아야 한다. 헤드 렌턴이며, 손전등이며 한국에서 비상시를 대비하여 가지고 온 것들이 있지만 더 이상 정전이 ‘비상’이 아닐 때에는 실용적이지 못하다.
맨 처음 전기가 끊겼을 때는 저녁은 이웃이 챙겨주고, 잠은 일찍 청했다. 노트북에 배터리가 여유가 있다면 외장하드에 담아 온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 안 그래도 조용한 동네가 정전이 되면 더욱 고요해졌다. 마을 전체가 전기가 별로 없는 곳에서 전기가 없이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전기가 필요한 때는 딱 한 가지 이유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휴대폰 충전이다. 마을 사람들도 절반 이상은 휴대폰을 사용한다. 여기서 잠깐, 휴대폰은 스마트폰과 다르다.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으면 되고, 좀 더 럭셔리하면 비록 화질은 안 좋아도 인터넷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실용적인 이유에서 쓰는 휴대폰은 한 번 충전을 해두면 며칠은 두고두고 쓸 수 있다. 마을에는 한 두 가구 정도 주민들에게 소정의 돈을 받고 충전을 해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송가니 시장에 가서 폰 충전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가게에 맡겨 충전을 시킨다.
어둠이 내려앉은 집 앞 문을 열면 밝은 전등을 대신해서 개똥벌레들이 집 마당을 포위하곤 훤히 빛을 밝혀 주고 있다. 반짝반짝, 손에다 가두어 유리병 안에 넣어두고 싶을 만큼 예쁜 반딧불이들이 파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면 이렇게 정전이 되는 상황이 자주 생기는 것이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등이 없는 자리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어쩌면 가끔은 이렇게 어두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나는 어둠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둠은 무서움과 동일했다. 어두움에는 마술과 같은, 미지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나는 그 어두움에 대한 동경과 포근함을 이 곳 말라위에 와서야 느낄 수 있었다.
2년 반의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이륙을 준비하면서 내려다본 한반도의 밤하늘이 한 밤 중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어서 놀랐었다. 그전에는 한 번도 우리나라의 밤 풍경이, 그 빛들이 그렇게 밝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내 몸이 어느덧 아프리카에 적응이 되어 버린 것일까?
나에게 아프리카의 밤이 어둡고, 유럽의 밤이 은은한 주황빛 색이라면, 한국은 새하얀 색으로 기억된다. 주황빛 밤하늘에 살고 있는 오늘도 아프리카의 시커먼 밤이 그렇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