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걷기

정말, 작은 것이 가장 아름답다

by 한지애

두 번째로 파견을 막 떠났을 때, KBS1 채널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촬영팀이 방문을 왔다. 피디님을 비롯해 촬영팀 세 분이 우리 마을에도 오셨다. 마을 공부방에서 먼저 촬영을 하고, 우리 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말 그대로 생생하게 집에서 공부방까지 내가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담기 위해서 우리는 다 같이 집으로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그것이 고난의 행군의 시작이었다!


나에겐 일상이 된 마을들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촬영팀 세 분에게는 거칠기 그지없는 존재하지 않는 길들이었다. 우리가 가는 길목에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하나, 하나” 하며 내 이름을 불러댔다. 홀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 외롭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이다. 다만, 촬영팀과 올라갈 땐 더 많은 아이들이 따라오곤 했는데, 외국인을 4명 씩이나 마을에서 보는 것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드디어 산길로 이어지는 도로가와 만나자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이제 거기서부터 경사가 진 이 길을 20분은 더 올라가야 우리 집이 나온다.


“이제 저희 반 다 왔어요! 힘내세요, 아자아자!”

“겨우 반이라고요? 우리 다 온 거 아니었어요? 아이고야...”


땀범벅이 된 얼굴로 힘겹게 올라오는 촬영팀을 보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이 길이 처음 방문한 이들에겐 그렇게 힘겨운 여정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피디님이 나에게 물었다.


“지애 씨, 여길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와, 안 무서워요? 너무 먼 거 같은데?”

“매일 오고 가니까요. 몸이 익숙해져 버려서 그냥 당연스레 다녀요. 그리고 해가 떨어지고 걸어 다니지만 않으면 위험하지 않아서요.”


송가니 시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서 집까지 올라왔다면 꼬박 1시간이 걸리는데, 촬영팀이 공부방에서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방송분을 보니, 이 부분은 깔끔하게 편집되어 아예 나오지 않았다!


DSC01823.JPG 시장 입구 쪽으로 평평한 길이다. 그리고 좀 더 올라가면 ...



IMG_3233.JPG 산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로 이어지게 된다. 마을 입구부터 여기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내가 매일 마을에서 걷는 양에 대하여 한국 촬영팀만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마을 공부방의 성과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좀바 시내에서 정부 관리들도 방문을 오곤 했다. 자연스레 방문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디에 사냐고 묻길래, “저- 위 선교 마을에 살아요.”라 그러면 다들 어떻게 집에 가냐며 화들짝 놀라곤 했다.


부끄러웠다. 대부분의 동네 주민들이 그 길을, 그 거리를 매일같이 심지어 무거운 짐도 한 보따리씩 짊어지고 다니는데 내가 걷는 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주민들에게 당연한 삶의 일상이 외국인, 외부인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주민들도 안다. 우리는 연약함의 상징이다. 어떤 부분에서 난 동네 꼬마 아이들보다 연약하다. 아이들이 맨 발로 좀바 산 정상으로 뛰어다닐 때, 나는 ㅋㅇㅌ등산화를 신고도 아이들보다 뒤처진다.


내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나의 벽을 없애기 위해서 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도 걸었다. 내가 먼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을 처음 보는 이들은 놀라워했고, 매일같이 반복하니 자랑스러워했고, 마침내 주민들에게도 내가 걷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공부방에 외부인들이 오면 우리 촌장님들이 큰 소리로 말한다.

“하나는 다른 외국인들이랑 달라요. 하나는 말라위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걸을 수밖에 없어서 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걷는 게 너무나 편안해졌다. 편하게 뻗은 길들 보다 울퉁불퉁하게 난 숨은 샛길로 들어가 성큼성큼 속도를 내는 법도 알게 되었다. 어디에 발을 두어야 하고, 어떤 바위는 밟으면 안 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크게 난 길만 보면 ‘저 길을 언제 다 올라가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많이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멀리 선 다 똑같아 보이는 그 길도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에 따라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리서 보지 못한 샛길을 발견하여 더 빨리 갈 수도 있다.


샛길은 고단하고 지루해 보이는 큰길에 대한 작은 반란일 뿐이지, 목적지를 바꿔 놓지는 않는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엄청 단축시켜주지도 않는다. 시간을 줄이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집에, 우리 가족이 있는 그 집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안다는 것에 대하여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그곳에 항상 내 편인 가족들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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