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냥 목적지만 잘 가게 해주세요
마을에 살면서 한 번씩 좀바 시내도 가고, 주말이면 말라위 호수나 블란타이어와 릴롱궤 같은 큰 도시로 놀러 가기도 했다. 이곳저곳, 곳곳을 다녀본 뒤에 깨달았다. ‘집이 최고다.’
이 명언의 의미를 깨닫기 위한 과정으로 우리는 마음껏 탐험하고 몸소 겪어 봐야 한다. 여기 산골 생활도 너무 새롭고 아름다웠지만, 마을에서 일과 삶을 동시에 가꾸어 나가니 마치 나만의 시간이 없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이 대자연의 아름다운 아프리카 대륙에 살면서 한 시골 마을에만 갇혀 지내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로 이동을 하려면 우선 한 시간을 걸어 송가니 시장에 가서 미니버스를 타야 한다. 미니버스는 스타렉스 또는 봉고차 같은 것인데, 시내와 마을을 이어주는 대중교통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교통’이라고 했지만, 정부에 등록과 신고 절차를 밟으면 민간 회사나 개인들이 각자 소유한 미니버스를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보통은 통일된 가격으로 버스 운임료가 매겨지지만, 나 같은 외국인이 타면 한 번씩 턱 없이 값을 올려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미니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버스비를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더 높게 받으면 안 타는 '척' 하면 바로 제 값을 부른다.
승객들에게 버스 문을 열어주고, 운임료를 받는 사람들을 여기서는 컨덕터 Conductor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7,80년대 버스 안내원을 연상시킨다. 여기 안내원들은 편한 일상복을 입으며, 주로 남자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또한 한국에서는 버스 안내원이 승객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거나 중간에 세워 놓고 가버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겪어보지 않았지만, 내 눈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정말 많이 보았다.
미니버스의 뒷좌석에는 법적으로 한 줄에 4명까지 태울 수가 있다. 그 이상 승객을 받다가 교통경찰에게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안내 요원들은 승객들을 한 줄에 5,6명씩 꽉꽉 채워서 앉힌다. 만약에 주요 정거장에서 어느 정도 승객 수가 차지 않으면 이십 분이고, 삼십 분이고, 때로는 한 시간 가까이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기다리다 막상 출발했는데 교통경찰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근처에 내리기로 한 승객 (근처이지만 몇 키로를 걸어야 한다.), 이 전 정거장에서 막 탄 승객, 또는 가장 짧은 거리를 가는 승객 등을 황무지에 그냥 세워주고는 돈을 돌려주며 내리라고 한다.
미니버스에서 사건과 사고는 버스 운영자들하고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한번 나는 미니버스 제일 뒷칸 창문 쪽에 앉아 있었다. 보통 버스 안 냄새가 그리 유쾌하지 않고, 에어컨이 나오는 미니버스는 없기에 더우면 그냥 창문을 연다. 아무렇지 않게 창문을 열고, 버스가 잠깐 정차해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십 대 남자아이들 몇 명이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외국인으로 살면서 자주 겪는 일이기에 크게 반응을 주지 않는다. 버스가 막 떠나려는 참이었다.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창문 틈 사이로 손이 하나 들어오더니 내 가슴을 '훅' 만졌다. 그 사이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소년들이다. 누가 손을 뻗은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다. 수치스러움과 분노가 밀려왔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동료도 친구도 없이 혼자 낯선 이들과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그 소년들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무슨 일이 막 일어났는지 현지어로 설명할 실력도 안되고, 이야기를 한들 내 이야기가 분노할 거리라고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또 안내 요원한테 이야기해서 차를 세워 달라고 해도 나 하나 때문에 세워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미니버스를 타고 창가에 앉게 되면 더 이상 창문을 활짝 열지 않게 되었다. 그 날 버스에서 내리고 친구를 만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미니버스를 탙 때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니, 나중에 되어서는 웬만한 일 아니면 개인적인 이동을 삼가였고, 한번 이동하면 장기 휴가를 갖고 오래 떠났다. 이동을 하기 위해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컸다. 만약 내가 아프리카 여행을 다니며 미니버스를 탔다면 좀 더 너그럽게 상황을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년 반을 살면서 매번 개선되지 않는 이 대중교통 체제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말라위에 살면서 세상에는 예상치 못할 일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대게 그런 일들은 오래 생각하고 불쾌한 기분을 지속할수록 나에게 해롭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의도하거나 바라지 않은 일들이 미니버스에서, 큰 시장에서, 버스 터미널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들은 우리 마을 주민들처럼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동양에서 온 젊은 여자애, 우리보다 잘 사는 곳에서 온 다르게 생긴 여자애 아닐까? 그만큼 얕고 무지하지만 그들의 행동이나 말은 상대에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