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아시나요
2014년에 한 두 달 정도 호주에서 자원봉사를 온 17살 두 소녀 케일리와 크리스티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하루는 시내를 갔다가 돌아와서는 그녀들이 나에게 말했다.
“네 이름이 ‘하나’ 맞지?”
“응! 너희 내 이름 몰랐어?”
“아니, 알고 있었지! 그게 아니라, 우리가 오늘 시장 입구에서 마을 지나서 집으로 오는 내내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하나, 하나’ 하길래, 네가 정말 마을에서 유명하구나 생각했어!”
얼굴이 하얀 사람들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이 지나가니, 나라고 생각하고 ‘하나’라고 부른 것 같다.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여동생이 놀러 왔을 때는 내 동생을 보곤 나와 쌍둥이 아니냐면서, “하나 아위리! (하나가 두 명이야!)”라고 외치곤 했다.
마을에서 유명해진 데에도 역시 어딜 가든 걸어 다녔던 덕이다. 송가니 시장에 갈 때는 약 5km를 걸으면서 서너 개 마을을 지나게 된다. 샛길을 이용해서 마을 공부방으로 갈 때에도 몇몇 집을 바로 코 앞에서 지나치곤 했다. 비록 그들 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집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인사를 건네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로 지나가는 거리가 반복적이다 보니 누가 어디에 사는지 기억하기 쉬웠다.
말라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가장 먼저 배운 말은 '인사 하기'였다. 말라위는 오전, 오후에 하는 인사말이 다르다. 상대의 나이나 위치에 따라서도 표현이 조금 다르다. 초기에는 긴 인사말을 외 위지 못해서, 친구들 사이에 쓰는 정말 간단한 인사말 “보 Bho!(안녕!)”를 동네 방방곡곡 외치고 다녔다.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어른들도 친절하게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와 함께 동행하던 촌장님이나 동료들이 내가 인사를 끝내고 나면 주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아마 내 뒷수습을 하셨던 것 같다. ‘아직 온 지 얼마 안 돼서 치체와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너그럽게 좀 봐줘요.’라고 말이다.
유아교육과 전공에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빠른 속도로 온 마을의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거기에는 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잘 외운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아이들은 내 이름이 ‘하나’라는 것만 알면 되지만, 나는 수 백명의 마을 아이들을 늘 다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매일 자주 보는 아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부모님 얼굴은 같이 외웠다. 특히, 어머니들은 내가 본인의 자식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 대해서 매우 기뻐했다. 한국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직접 부르기보다 '영수 어머니'라고 부르듯, 여기서는 '마 조셉 (조셉 어머니)'으로 조셉의 어머니를 부르는 것이 흔하다. 치체와 (Chichewa) 언어로 엄마/어머니는 '아마이 Amayi'라고 하는데, '누구의 어머니'를 부를 때는 '아마이'를 줄여서 '마'라고 하고 뒤에 자녀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서로의 이름을 불러 줄 때,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서로를 새기게 된다.
다르게 생기고, 문화도 달라도, 어딜 가나 사람의 본질은 똑같은 것 같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노래한 것처럼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한쪽에서만 일어나서는 불가능하다. 양쪽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우리는 하나의 몸짓을 넘어서서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내가 아이들과 주민들의 이름을 외우는 속도를 넘어서서 내 이름을 아는 주민들의 범위는 선교 마을에서부터 송가니 시장까지 점점 확장되어 갔다.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하나!!!” 하며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고 달려오는 이들을 보면, 그들의 이름을 나는 부를 수가 없는 게 미안했다. 그래도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며, 얼굴을 익히고, 미안해도 그들의 이름을 또 한 번 물으며, 다음에는 꼭 기억하리라 다짐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집 앞마당에 둘러앉아서 옥수수 낱알을 까면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들끼리 깔깔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고, 흙먼지와 모레를 옷에 뒤집어쓴 아이들이 모래바람을 내면서 아주 큰 바오밥 나무 아래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길가에 자리를 잡고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팔던 망고를 내 손에 쥐어주며, 집에 올라가며 먹으라고 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고,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주며 새 쪼리 신에 절뚝거리던 나를 구해준 아이의 마음이 고마웠다. 새로 태어난 식구가 있다며 내 손을 끌고, 어둠 속 초가집 한편 막 태어난 새 생명을 보여주며 환하게 미소 짓는 아기 엄마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큰 도로가 입구에서 마을 안으로 자전거 택시를 타고 공부방으로 이동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지나면서 택시 기사들은 모든 주민들이 나를 안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이 동네 사람들은 당신을 아는 거유? 하나! 하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동네 주민들이 물을 받으며 나에게 건네는 인사, 자전거 기사의 땀 냄새를 중화(?)시켜 주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 집에서 맨발과 아랫도리만 걸친 채 나와서 손을 흔드는 3,4살짜리 아이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