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100일 챌린지
요가 35분
독서 - 글글글 X
독일어 - 1시간 아닌 20분 ㅜㅜ (1시간 20분 밀림)
나의 그이는 함부르크에 공연을 갔다. 베를린에서 함부르크까지 두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번 공연은 한 축제의 일부로 호텔, 교통, 식사까지 다 제공해주어 이 어려운 코로나시기 속 그에게 단비같은 시간이었길 바란다. 그래도 하루 만에 다시 그 첼로를 들고 혼자 여행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찡하다.
그래도 예술이란 활동은 정말 나이 제한이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작가들의 혼과 인생의 멋이 묻어나서 오히려 값어치가 더 올라가지 않는가?
한 브런치 글 제목에 '인생은 60부터라는 거짓부렁이' 같은 것을 보았다. 내가 최근에만해도 우리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벌써 팔목 한쪽도 ㅂㅅ 다 되어서 못 해, 난"
"내가 이제와서 그걸 어떻게 배워, 나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몰라~~!"
아직 엄마의 나이가 아니어서 정말 내가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평생 영업에 투잡, 쓰리잡 뛰면서 힘들게 앞만 달려온 엄마에게는 그 마음을 몰라주는 내가 야속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난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하는데, 엄마가 왜 못해?"
"거기 유튜브 보니까 어떤 사장님은 육십 하나에 쇼핑몰을 시작하셨대!"
등등을 이야기하며 엄마가 무어라도 푹 빠져서 즐기든,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이든 찾아 보라고, 아니 같이 찾아보자고 막 했더랬다.
돈은 정말 중요하다. 어렸을 적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학비를 못 내서 서러움을 겪어 봤기에 안다. 그래도 이십대를 보내면서 돈을 '많이' 벌거나, 돈'만' 버는 일을 선택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프리카에서 큰 돈 못 받아도 3년을 보냈고, 국가 장학금을 받고서 대학 졸업하고는 바로 영국 런던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고 페이가 없지만 여기 베를린에서 인권 단체에서 인턴십을 할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베를린에 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서른살.
코로나 시기와 상관없이 난 작년 말부터 올해가 다 끝날 때까지 돈을 벌지 못 하는 내가 이렇게 불안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나는 나와 돈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지금 당장은 비자나 박사 공부나 내 신분이 명확하지 않기에 이것들이 잘 마무리가 되면 적극 돈벌기에 뛰어 들 작정이다.
또 다른 브런치 글을 보면서는 가족 요양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작가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께서 결국은 가족 요양사로 활동도 해보지 못하시게 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작가분은 70세인 어머니를 받아 줄 수 있는 곳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당장 오십대 중반인 우리 엄마도 일 할 곳이 마땅히 없는데... 근데 우리는 점점 고령화 되어갈 것이다.
엄마의 오늘이자 미래...
그럼 나의 미래는?
예술!
글을 쓰는 것이든, 그림이든, 예술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인생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서 배워 볼 만한 외적/ 내적 가치가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꽂혔다. 나이가 들어도 집에서도 우린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어디서든 시를 쓸 수도 있다. 특정 대학에 특정 곳에서 활동해야 예술을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내 노후를 위한 투자는 온라인 빌딩도 실제 건물 구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내면에,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나의 감각, 손, 감성 모든 것을 쏟으면 우리 평생에 무엇이라도 나만의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예술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으로 무조건 이어지리란 보장도 없고, 많이 버는 것은 정말 소수의 일부 예술가들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그래도 노후에도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젊은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나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생은 한 번이고, 이 한 번의 인생에 우리는 우리가 가장 행복한 것을 해야하니까.
그림을 좀 더 꾸준하게 그리고 더 공부해야겠다.
글도 더 열심히 써야 겠다.
첼로도 계속 배울 것이다.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