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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28. 2020

개천에서 메모리났네! (1)

마을 공부방 교사에서 최연소 보건소 소장까지   

메모리 Memory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3월 정도였다. 그 당시 메모리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숙학교에서 막 마을로 내려온 타운 냄새가 아직 묻어 있는 소녀였다. 그녀의 집은 마을 공부방에서 어린이집 교사인 미지 Missy 네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미지 집에 놀러 가거나 들리게 되면 간단한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메모리 쟤는 엄청 똑똑해서 무슨 대학에도 합격했었대!”

나는 마을에서 저렇게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여자 아이는 처음 보았기에, 정말 대단한 아이인가 보다 싶었다. 


그러다 우리는 마을 공부방에서 새로운 교사를 뽑는데 메모리가 방과 후 수업 교사로 지원을 했다. 그녀는 지원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장이 있었고, 전체 지원자들 중에 성적도 매우 제일 좋아서 초등학교 최고 학년인 7,8 학년 담당 교사가 되었다. 


사춘기에다가 어느덧 제법 몸에 익어가는 집안일을 도와주느라 핑계를 대고는, 좀처럼 방과 후 수업에 잘 나오지 않던 고학년 아이들이 메모리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메모리는 자기 집 마당에서 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주중이고 주말이고 무료 과외까지 해주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수업을 안 올 수가 있을까? 출석과 함께 실제로 방과 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도 매우 향상되었다. 


말라위의 초등학교 교육 과정은 8학년 체제로 만들어져 있다. 1994년부터 무상교육이 된 이후에 학교를 그만두었던 많은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재등록을 하고자 몰려들었고, 저학년 교실은 항상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로 붐볐다. 그러나,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가사 노동과 조혼 및 어려운 집안 형편 등과 같은 상황과 학년 말 성적 저하로 진급에 실패하는 비율이 많아서, 고학년의 학급 당 학생 수는 확연하게 낮은 것이 일반적인 학교의 풍경이다. 


우리 마을 공부방에도 저학년은 하루에 5,60명씩 오지만, 고학년은 출석부에 적힌 수만 다 합쳐도 스무 명이 안 되었다. 특히, 6,7학년들은 다 합쳐도 어떤 날은 1,2명만 출석을 하는 날도 허다하게 많았다. 심지어 8학년은 이제 고등학교 준비를 한다 하여 출석부 상에만 존재하는 학년이었다. 메모리가 7,8학년을 담당하게 된 것은 아이들이 메모리에게 배우기 위해서 8학년이 공부방에 모습을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얼떨결에 7 학급에서 8 학급을 두 학급을 통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망고가 많이 나는 시기인 11, 12월이면 메모리는 항상 비닐봉지 가득히 망고를 담아서, 자기네 집에서 우리 집까지 약 3km가 되는 거리를 그 망고를 주기 위해오곤 했었다. 여기서 아무리 망고가 흔해도 조금만 큰 길가에다가 내다 팔면 생활비에 보태 쓸 수 있기에 한 봉지씩 그냥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망고도 종류가 몇 가지씩 있어서, 망고 종류와 망고 나무를 심은 땅의 조건에 따라서 당도가 차이 나는데, 메모리네 집 앞 밭에 심어진 망고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맛있기로 소문이 나있었다. 원래 난 망고를 필요에 의해서 사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기저기서 주어서) 특히나 메모리 덕분에 망고 철을 망고만 먹고도 배부르게 지낼 수가 있었다. 


메모리 집 앞 노란 망고. 여러 망고 종류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망고였다. 


하루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서 메모리와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같아서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집 앞에서 메모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또 망고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 와서는 집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메모리는 한 번씩 내가 미안해서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수하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려서는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그날도 말은 못 했지만 하늘이 어둑어둑 해져서 집까지 얼른 빨리 올라가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이었지만 메모리는 어느덧 마을 교사나 직원이 아닌 나에겐 없어서 안 될 든든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매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진 우리는 종종 주말에 우리 집에서 같이 잠을 자기도 했다. 우리는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주로 메모리가 해 준 요리를 함께 먹었다.) 마을 사람들의 비밀 이야기나 각자의 연애사 같은 우리들 만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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