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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28. 2020

개천에서 메모리 났네! (2)

 마을 공부방 교사에서 최연소 보건소 소장까지 

메모리는 엄마와 단 둘이서 살고 있다. 나는 그녀를 ‘아씨씨 (Asisi, 자매라는 뜻인데, 맥락상 아가씨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다.)’라고 부른다. 워낙 밝고 애교가 많으시기 때문이다. 메모리의 어머니는 언제나 유쾌하고 하이 톤의 싱그러운 목소리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잠깐 인사만 하러 집에 들러도 바로 돗자리를 가져와 깔아주시고는 주섬주섬 집에 있는 것들을 내놓아주시곤 하셨다. 메모리의 음식 솜씨가 되게 좋은데 어머니를 닮은 게 분명했다. 메모리의 아버지는 메모리가 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당시에 미니버스 운전기사로 일을 하다가 차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잃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다리 상처가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몇 개월 뒤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하루는 그녀에게 물었다.


“넌 꿈이 뭐야?”

그녀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


“난 간호사가 되고 싶어!”

“ 와! 정말? 완전히 몰랐네? 근데 왜 간호사가 되고 싶은 거야?”

“사실, 우리 엄마가 HIV에 감염되어서 10년 넘게 약을 먹고 있어. 엄마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건강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돌봐주고 싶어.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보건소가 없는데, 나중에 내가 간호사가 되면 우리 마을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웃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 정말 멋질 것 같아. 히히. 아, 물론 공부방에서 교사로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 마을 공부방에서 언제까지 머무를 메모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이루고 싶은 더 큰, 아름다운 꿈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메모리는 이어서 말했다. 


“간호사가 되려면 간호 대학에 가야 하는데, 난 학비를 낼 수가 없어서 어려울 것 같아.”

“아 대학, 물론 그렇지. 돈은 당장 없지만 그래도 지원서는 써 볼 수 있잖아! 한 번 써 봤어?”

“아니, 어차피 해도 못 갈 텐데...”

“에이, 그래도 지원을 해봐야 그다음이 가능할지 안 할지 알 수 있지. 한번 해 보자!”


그때는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서, 메모리와 나는 여러 간호 대학에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메모리는 교사 활동비를 쪼개서 두 달에 걸쳐 4 곳의 간호대학에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를 내기 위해서 몇몇 서류를 준비해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몇 백 원, 몇 천 원의 돈이 적은 돈이지만 여기서는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이다. 네 군데에 접수할 만큼의 복사본을 인쇄하고, 또 학교로 보낼 우표를 사야 했다. 모자라는 인쇄 값과 우표값으로 2 달러 정도를 보태주었다. 지원 단계에서 금전적으로 내가 해 준 것은 2 달러가 전부였다. 


그렇게 얼마 있다가 나는 2기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잠시 돌아가 있었다. 왓츠앱 Whatsapp 메신저로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루는 그녀로부터 깜짝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4개의 간호대학 중 한 군데에서 1차 합격 통지를 받았단다! 얼마 뒤에 면접 심사가 있었고, 마치 예정된 것처럼 그녀는 그 교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우리의 흥분과 설렘이 어떻게 입학금을 내야 할지에 대한 걱정에 금세 사그라들었다.  


1년 치 학비가 120 만원 정도였는데, 첫 학기 등록을 위해서는 1/3 정도의 금액을 내면 우선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직 한국에 머물렀던 나는 말라위로 다시 파견이 되기 전 시간을 전적으로 주변 지인들에게 이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쏟았다. 그렇게 기적처럼 당장 필요한 60만 원의 돈을 마련해서 등록을 하였고, 나머지 비용은 말라위 수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친한 친구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마저 마련할 수 있었다.


간호 대학은 3년 과정이었다. 1년 학비를 이제 겨우 냈는데, 아직 대학생이었던 나로서는 메모리를 경제적으로 졸업까지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다. 막상 시작했고, 계획한 듯 지금까지 척척 왔는데, 졸업까지 무사히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메모리는 담담하게, 꿋꿋하게 그녀의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하는 걱정의 몇 십배로 그녀도 고민을 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까지 다 강구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대부분 형편이 좋아서 대학에 올 수 있던 다른 동기들이 노트북을 쓸 때, 공부하며 엄마도 부양해야 했던 그녀는 친구가 과제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이 되어서야 친구의 노트북을 빌려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과제를 했다. 주변 친구들이 강사가 나눠주는 유인물을 복사할 때, 그녀는 직접 노트에 수기로 베껴가며 수업을 따라갔다. 그녀의 이러한 노고는 1학년 전체 학기 말 시험에서 180명 중에 30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이렇게 늘 포기하지 않고 상상 이상의 노력으로 학업에 매진하는 메모리라는 신입생의 이야기가 대학교 학과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는 메모리를 일반 학생이 아닌 정부 장학생으로 선정해주었고, 그렇게 메모리는 2학년과 3학년 학비의 10%만 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메모리는 주유소 아르바이트와 간호 대학 주변 중산 가정집에서 청소 일 등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서 학비를 댔다.


우리 집 현관 입구에서 찍은 메모리의 프로필 사진 촬영. 메모리는 똑똑한 것뿐만 아니라 참 곱고 예쁜 친구이다.   


메모리가 없는 마을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조금 외롭고 심심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을 멋있게 꿋꿋하게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마음속 깊이 너무나 기뻤다. 대학교 방학 시즌이 되어 마을로 돌아오면, 우리는 예전처럼 우리 집에서 맛있는 것도 해 먹고, 학교에서의 가십도 이야기하며, 마치 연인들처럼 그간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무엇보다 학기가 지날수록 대학 생활을 하는 여대생의 향기를 푹푹 풍겼다. 그녀는 좋은 향기가 나는 비누로 바꿨고,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손거울을 항상 들고 다녔다. 또한, 헤어 스타일도 더 과감하고 다양해졌다! 


방학에 집에 오면 게을러질 법도 하지만, 메모리 사전에 그런 일은 없다. 어머니를 거들어 매일 새벽같이 밭일을 했고, 시간이 날 때는 우리 마을 공부방에 와서 아이들의 수업 지도를 도와주곤 했다. 그녀는 유일하게 마을 사람들 중에서 필요한 것을 제대로 나에게 먼저 말을 못 꺼내는 친구였다. 나중에 내가 어려운 사정을 어쩌다 알게 되어, ‘왜 진작 말 안 했어?’ 하고 물으면, 그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메모리는 꾸준히 나와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그녀가 업데이트해주는 마을의 소식을 들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가 염려의 한숨을 쉬었다가 한다. 무엇보다, 3년의 간호 대학 학업을 마치고 좀바 정부에서 실시하는 마을 보건 프로젝트에서 인턴으로 활동을 하다 취업이 잘 안 되어서 적은 월급이지만 쉬지 않고 경력을 쌓던 메모리가 2019년에 말라위에서 가장 큰 에이즈 보건 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최연소 지역 매니저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한, 네가 내 인생의 성장과 변화에 가장 큰 일부인 거 알지? 내가 항상 고마워하는 것도 알지?" 

"아, 그만 좀 해! 내가 너에게 해 준 건 지원서 넣어보라고 이야기한 거, 그게 다야."


그녀는 최연소로 매니저 자리에 간 비결 (?)은  '신의 은혜'라고 말한다. 아직 한창 연애하고 꾸밀 나이에 (실제로 그러고 있으나, 그녀에겐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매니저라는 지위에서 한 지역의 보건소의 대표로서 활동을 하니 너무 바빠 여유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스물한 살,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한 마을의 소녀가 스물여섯에 보건소 장이 되었다. 

마을에서 메모리처럼 꿈이 있고, 무엇보다 그것을 해 낼 역량이 있지만 경제적인 힘이 안 되어서 시도 조차 하지 않는 소녀들이 얼마나 많을까? 메모리가 꿈을 이루기 전에 나에게 말한 것처럼, 마을의 수많은 소녀들에게 희망을 주고, 목소리를 줄 수 있는 훌륭한 여성 롤모델이 되는 날을 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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