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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30. 2020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

무소유가 아니라 이미 소유한 것들을 축복하기 


2018년 말라위의 한 소년의 실화를 그린 영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이 개봉했다. 영화는 이미 10년 전에 출판된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14살 윌리엄이다. 학비를 못 내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만 선생님께 허락을 받은 그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에너지의 원리를 깨우치게 된다. 이후 그는 실제로 마을에서 재활용 자재 및 아버지 자전거에 달린 전등을 이용해서 풍력 발전기를 만든다. 그가 설계한 발전기는 당시 가뭄으로 말라가던 농지에 물을 공급해 식량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주인공 윌리엄 (William Kamkwamba)의 이야기는 그의 이름을 치면 테드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담으로 영화 속 윌리엄의 누나 아니 Annie로 나온 배우는 내가 말라위에서 알고 지낸 친구였다. 워낙 재능이 많고 똑똑한 친구였는데, 넷플릭스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니 너무 반갑다 못해 소름이 돋았다. 


이 정도의 놀라운 일을 마을에서 직접 보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마을에 살면서 자연스레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이든 내다 버리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할 것'이다. 윌리엄이 만든 풍력 발전기가 순전히 마을에서 버리는 철 덩어리들과 자전거에 달린 전등으로만 만들어단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가 다 쓴 식용유 통을 버리려고 내놓았다. 

그러자, 우리 집을 방문한 미지 Missy는 "저거 내가 가지고 가도 돼요?"라고 물었다. 

난 새 통도 아니고 다 쓴 식용유 통을 가져가도 된다고 대답을 하는 거 자체가 이상하다 느꼈지만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미지는 나에게 또 물었다. "혹시 더 버릴 거는 없나요?" 


마을에선 다 먹은 마가렛 버터 통, 설탕 봉지, 빵 봉지 등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식용유는 매번 새 통을 사는 게 아니라 재활용 용기에 덜어다 쓴다. 구멍가게에서는 대용량 식용유를 두고, 사람들이 통을 가지고 오면 덜어준다. 설탕도 한 번에 500g짜리 봉지에 든 것을 사기엔 부담이기 때문에 20g짜리 비닐 용기에 나눠 담아서 다시 판다. 담배를 개비당 파는 것도 이야기했는데, 마을에서의 물건은 대부분 최소 단위로 쪼개어 판매가 가능하다.  


어느 순간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덜어서 먹는 것들을 통째로 (그것이 정상이지만) 사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 눈에 내가 거인처럼 보이진 않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마을에선 조금은 비정상인 게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많았다. 아니면 내 눈에 최소한 그렇게 보인 것일 수 있다. 


아침에 차를 마시는 문화를 갖고 있는 말라위는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는 적어도 차와 설탕을 함께 내놓아야 하고, 좀 더 잘 사는 집이면 거기다가 우유도 함께 내놓는다. 우유도 신선한 우유가 있고 그것보다 조금 저렴한 파우더로 된 인스턴트 우유가 있다. 식사 접대의 경우에 보통은 두 가지 반찬을 내주고, 조금 사는 집은 세 가지 반찬이 있을 때도 있다. 생선이나 고기반찬이 하나 섞여 있다면 그건 정말 특별 대접일 때이고, 내 경험상 매일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나 교회 목사님 정도가 다였다. 반찬을 한 가지밖에 내어주지 못하는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은 적도 있다 (물론 초대해주어 먹지만, 미안해서 많이 먹지 못한다.).

 

음리마 촌장님 댁에서 내어주는 아침 식사 - 식빵, 인스턴트 커피, 차잎, 설탕

작은 일상의 단편에서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을 알 수 있는 근거들이 있는데, 마을에선 너무 많은 이들이 잘 살기보다 어렵게 살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외부인인 데다 이 집 저 집 다 다녀보기에 미세한 계층의 차이를 더 쉽게 인지했고, 그 차이들은 정말 내 마음을 아려오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동경심도 우러났다. 삶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떤 조건에 있든 나를 초대해주고 나에게 귀한 것을 나눠주는 것, 그것을 기꺼이 주인의 마음으로 대접해주는 것에 난 큰 감동을 받았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깊다 보니 음식을 먼저 이야기했는데, 이는 다른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서 큰돈을 모으고, 브랜드도 고르고, 아이쇼핑도 몇 시간은 기본 며칠은 계획하고 여러 군데 비교를 해 봐야 하는 사람들은 이해 하지 못 할 수 있다. 마을에서 가방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 필요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무슨 색? 무슨 브랜드? 무슨 모양? 이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기능을 할 줄 알면 되는 것이다. 

 

유명 식빵 브랜드 봉지이다. 언젠간 쓰일 날을 위해 벽에 걸어두었다. 

심지어 그런 가방도 직접 제작하는 아이들도 있다. 몇몇 아이들이 식빵 봉지를 재활용해서 책가방으로 만들어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초등학교에서는 실기 과목에서 재활용을 해서 악기나 장난감을 만드는 수업도 진행한다. 어쩌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보다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만약에 시장에 가서 신발, 가방, 옷 등을 사야 한다면 모든 것들은 중고 물품이다. 중국 공산품 중에 새것들을 팔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너무 비싸기에 이런 새 물품은 좀 있는 집 사람들이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날 선물로 살 수 있는 정도이다. 평범한 마을 사람들에겐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걸 굳이 부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 중고라고 해도 새 것처럼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송가니 시장의 장날에는 옷 시장만 한쪽에 크게 열리는데, 난 한번 가면 기본 두 시간은 보내곤 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떠올리며 선물을 거기서 고르고, 또래 동료들과 가면 여자들끼리 옷을 맞춰보고 골라주는 재미가 있다. 


음식은 아껴 먹고, 그래도 함께 나누어 먹으며 

물건은 만들 수 있으면 만들고, 재활용할 수 있으면 그 기능을 못 할 때까지 써본다. 

그래도 할 수 없는 것들은 중고로 시장에서 산다. 


우리가 한 번씩 고가 물품을 사면서 '뽕 뽑을 때까지 쓴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물건들에 대하여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각 물건이 제 기능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라위에서 생활한 이후에 나는'옷을 사야 할 필요가 있다면' 지금도 중고 옷가게에서 옷을 산다. 엄마랑 여동생이 입다가 안 입는 옷들도 내가 입는데, 그러다 보니 해외 생활을 하다 계절이 바뀌어서 장만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옷을 잘 사지 않는다. 특히, 유럽은 중고 옷가게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빈티지 옷으로 저마다 남은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게 요즘 사람들의 문화이다. 가격도 1유로 (1,400원)부터 다양하게 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옷들을 살 수가 있다. 한국의 빈티지 가게들은 그에 비해 특정 스타일이나 브랜드 위주로 정형화되어 있고, 값도 비싸다는 게 좀 아쉬울 따름이다. 엄마는 내 패션이 한국에서는 먹히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촌스러운 스타일이라며 면박을 주지만 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패션이나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제 기능을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닐지라도,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겐 축복해야 할 나의 소중한 몸,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인생이 나와 함께 있다. 무엇이든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면 우린 다시 완전한 감사의 마음으로 평온과 동시에 삶을 향해 솟아오르는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아는가, 우리도 윌리엄의 풍력 발전기 같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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