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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29. 2020

품어주는 마음 (2)

보편적인 사랑, 모성애

“집에 우파(Ufa, 현지 주식인 시마 nsima의 원료인 옥수수 전분이다.) 남아 있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농사지은 옥수수로 한 해 먹을 우파를 저장해 둔다. 농사를 짓지 않는 파견 교사나 다른 현대식(?)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시장이나 주변 이웃에게 사서 먹는다. 내가 먹을 식량이 있는지 생각하셔서 주기마다 물어보셨다. 정말 복 받았다. 아마이뿐만 아니라 다른 촌장님들도 현지 음식을 워낙 잘 먹는 내가 혹여나 집에 우파가 떨어졌을까 늘 걱정해 주셨었다. 너무 바빠 나 자신을 잘 못 돌볼 때는 정말 집에 우파가 하나도 바닥이 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아마이는 손자들을 불러 20kg 정도의 우파를 자전거에 싣고는 우리 집까지 나와 같이 올라가라고 부탁하셨다. 


“너무 많아요, 아마이! 조금만 줘요!” 

“에이, 다른 게 없어도 우파는 집에 항상 있어야 하는 거야. 많이 있을수록 좋은 거지, 뭐!”   


우리나라도 쌀통에 쌀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기도 반찬거리가 없더라도 우파는 충분히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마이에게 우파는 사랑이었다. 아마이가 우파를 챙겨 주는 습관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몇 년 전, 아마이의 아들 중 한 명이 교통사고로 아들 셋과 아내를 먼저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홀로 아들 셋을 키우는 며느리를 돕기 위해서 아마이는 매해 옥수수를 수확하면 꼬박 10km 거리에 사는 그들의 집을 찾아가서 옥수수를 나눠주고 계신다고 하셨다. 


하루는 아마이를 따라서 그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세 아들 중에 막내는 어렸을 때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제대로 약을 먹고 완치가 되지 않아서 그 이후 지체 장애를 안고 산다. 며느리와 손자 셋을 몇 년째 뒤에서 조용히 지켜주면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옥수수, 그거라도 빼먹지 않고 보태 주는 아마이의 마음이 어떨지를 생각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할머니가 너무 반가워 떨어질 줄 모르는 손자들과 시어머니를 마치 친정어머니처럼 어려움 없이 편하게 대하는 며느리를 보면서 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값싼 동정과 기구한 가족사에 대한 충격은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해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묵묵히 곁에서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똑같은 상처도 덜 느끼게 해 줄 수 있음을 아마이를 통해 배웠다.      

손자 아구스틴이 타는 휠체어. 교사 미지, 아구스틴의 어머니, 아구스틴, 그리고 아마이 (왼쪽부터)

그녀의 묵묵한 사랑을 직접 느낀 날이 있었다. 어느 날 온몸이 쑤시고 무거워서, 공부방에 가지 않고 집에 누워만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이자 친한 친구인 미지 Missy가 왔다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8시, “똑똑” 누가 대문을 두드렸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건성으로 대문을 열자, 아마이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시며, 손녀 조이스 Joyce와 서 계셨다. 조이스의 손에는 그녀에겐 다소 커 보이는 보자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삶은 옥수수를 가득 담은 보자기였다. 미지를 통해서 내가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은 아마이가 나를 보러 오신 것이다. 냔다마 마을에서 우리 집으로 오려면 거리가 3km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거동이 불편해서 시장도 잘 안 나가는 아마이가 손녀까지 동원하여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가져다주시려고 이 거리를 아침부터 올라오셨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대문을 열었는데, 눈 앞에 당신이 가장 그때 필요로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을 아는가? 난 대문 앞에 화사한 노란 드레스를 입고서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며 서 있는 아마이를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마이가 나에게 보여 준 사랑만큼 나도 그녀에게 표현을 잘했는지 모르겠다. 아마이는 나에게 드넓은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평생 농사짓고 불 피우고, 산에서 나무를 캐면서 거칠어지고 다 갈라진 손, 살이 다 터서 까진 두툼한 발바닥, 문간 사이로 지나가는 주먹 만한 바퀴벌레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위해서 거침없이 그 맨 발로 해결을 봐주시던 아마이가 언제나 너무 그립다. 


나를 위해 한상 차려주신 아마이. 진수성찬을 먹을 때 우리는 실내로 온다. 밖에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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