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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29. 2020

품어주는 마음 (1)

보편적인 사랑, 모성애 

말라위의 공용어는 ‘치체와Chichewa’라는 체와 Chewa족의 언어이다. 치체와어로 ‘어머니’는 ‘아마이 Amayi’이다. 실제 어머니를 부를 때 말고도 말라위에서 보통 나이가 있는 여성들을 존칭의 의미로 ‘누구 어르신, 할머니, 아주머니’ 이런 뜻으로 ‘아마이’를 붙여 이름을 부른다. 가족을 넘어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삶을 더 살아온 어른을 존중하는 의식이 담겨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말라위에서 누구보다 나를 친자식처럼 따뜻하게 챙겨주신 분이 계셨다.  


그녀는 내가 ‘아마이’라는 단어를 ‘어머니’를 뜻하는 단어로 부른 유일한 분이다. 나의 아마이는 바로 냔다 마(Nyandama) 마을 촌장님이다. 냔다마 마을은 음리마(Mlima) 마을의 인구가 많아지면서 10여 년 전에 분리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서로 친척 관계로 맺어진 아담한 마을이다. 냔다마 마을은 마을 공부방의 주요 10개 마을에 포함이 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냔다마 촌장님은 마을 공부방 운영위원회의 임원이었다. 


2013년 8월 14일, 마치 첫사랑을 본 것처럼 그녀를 처음 만난 그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녀의 선한 인상과 몸에 베인 온화한 성품은 이후에 그녀를 알고 지내면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거기에 속 깊은 모성애까지 더해져서, 그녀는 마을에서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따뜻한 분이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도 말하고 있는 상대방이 민망하지 않도록 처음 듣는 것 마냥 반응을 하셨고, 당신의 무릎이 안 좋은 지 오래지만 방문객이 떠날 때면 맨 발로 집에서 나와 큰 길목 앞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먼 손님들이 한 번씩 마을 공부방 행사를 오면, 손님들을 위해서 따로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을 보따리에 싸 오셔서 대접하셨다.


운영위원회 활동과 더불어서 그녀는 촌장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 공부방의 성인 문해 교실의 교사로 활동했다. 문해교실은 마을 성인들 중에서 아직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주민들을 위해서 운영이 되고 있다. 말라위는 아직도 성인 문맹률이 40%가 넘는 곳이다. 아마이 (냔다마 촌장님)도 초등학교를 제때 마치지 못했는데, 나중에 독학으로 검정고시 같은 제도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으셨다. 이 경험을 통해 아마이는 마을의 여성들에게 글과 산수를 가르치겠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을 공부방이 문해 교실을 열었을 때부터 교사로 지원을 하여 지금까지 쭉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수업 중인 아마이의 모습 


하루는 문해 교실 모니터링을 끝내고 조용히 나가려는 나를 붙잡고, 아마이는 말했다. 

“이번 주말엔 뭐해, 집에 있을 거야? 우리 집에 와, 네가 좋아하는 토바 (Thobwa, 현지 곡물음료) 만들어 놓을게.”  

“아 토바, 아마이가 만들어주는 토바가 최고죠, 완전! 알겠어요, 그럼 토요일에 갈게요!” 


토바는 옥수수와 수수를 넣고 발효시켜 만든 현지 곡물 음료이다.


주말에 아마이 댁에 놀러 가면, 냔다마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을 다 만 날 수 있다. 냔다마 마을에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아마이 집 앞에 멍석을 깔고, 아마이가 내주는 과일이며, 땅콩 등의 주전부리를 나눠 먹었다. 


짐베(Nzimbe, 사탕수수)

은데자(Ndeza, 땅콩)

치낭과(Chinangwa, 카사바)

파파야

망고 

제철 과일부터 내가 좋아하는 토바 음료나 수제 와인이나 보드카 등 없는 것이 없다. 물론, 술은 아이들 빼고 나에게만 주신다. 

    

아마이의 남편은 내가 ‘아꼬꼬(Agogo,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한 번 말라리아로 크게 고생을 하셨었는데, 그때 내가 염소 고기를 사 간 이후로 나와 할아버지는 더 가까워졌다. 할아버지는 내가 갈 때마다, 맨발로 뛰쳐 나오시며 듬성듬성 남은 이빨 사이로 환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실은 아이들만 모여드는 게 아니었다. 부녀자들이며, 특히 마을에서 낮 시간에 보기 힘든 건장한 남성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이가 집에서 직접 빚은 술을 팔고 계셨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꼬꼬는 심지어 몇 가지 소규모 비즈니스를 하고 계셨는데, 그 첫 번째는 바로 직접 밭에서 키운 담배이다. 다 쓴 연습장 이면지에 말린 담배를 하나씩 돌돌 말아서 낱개로 팔고 계셨다. 송가니 시장에 가면 구멍가게에서 공산품 담배를 낱개로 한 개비를 100mk(Malawi Kwacha, 약 200원)에 파는데, 아꼬꼬의 수제 담배는 반 값이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두 번째 생명줄은 바로 커피이다. 

'에에? 집에서 커피를 만든다고?' 그것이 나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내 눈 앞에 차곡히 쌓아 놓은 20g짜리 커피 봉지가 가득 든 상자를 보여주기 전까진 말이다. 

말라위는 북쪽 지방이 커피 재배로 유명하다. 마을에서는 값비싼 아라비카 원두커피 대신에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아껴 두었다가 손님이 올 때만 조금씩 꺼내어 대접 해주곤 한다. 근데 여기 촌장님 댁에서 파는 커피는 열매를 따고, 말리고, 또 불에다가 볶고, 절구에 넣어서 갈아 빻는 것까지 셀프로 하셔서는 한 봉지에 한화 50원 정도에 팔고 계셨다. 나에게 커피를 마시냐고 묻더니 이내 열 봉지 정도를 집에 갈 때 챙겨주셨다. 내가 사겠다고 돈을 드리려 하자, 계속 밀쳐내시며 선물로 주셨다. 집에서 맛을 보니, 시내에서 사 먹는 커피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후 나는 촌장님 댁에 정기적으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일생 축적된 삶의 지혜의 절정일까? 부지런함일까? 손자, 손녀들과 밭농사를 짓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서 일까? 아님 두 분의 취미와 재미로 하시는 일들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노부부가 집에서 여러 가지 들을 직접 만들고, 가꾸고, 키워서 장사를 하고 계시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내가 갈 때마다 마당에 키우시는 오리가 낳은 알을 두 개씩 삶아 주셨었다. 내가 안 먹었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를 주고 팔 수 있는 것들을 막 주시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한 번씩 나의 아마이 집에 가야 했다. 어느새 난 초대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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