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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29. 2020

사랑의 마음으로  

점점 가까워진 우리 사이, 파투마와 나 

 

대부분의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우리 동네도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었다. 그래서 오후 다섯 시 반 즈음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서서히가 아니라 순간 급격히 어두워졌다. 누구도 매일 공부방을 나오라고 안 했지만, 나는 아침 일찍 원숭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하고, 집에 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 낮 시간도 공부방 근처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오후 방과 후 수업이 마칠 때까지 있다가 집에 돌아갔다. 


너무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하곤 했다. 저녁 시간이 다 자유시간일 수 있지만 마을에서 현장 활동이 끝나면 한국 사무소에 정기적으로 보고할 사항을 문서로 작성하고, 새로운 사업 계획서도 동시에 써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난 자발적인 야근을 많이 했다.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던 우리 공부방 땅 부지를 내어주신 음리마Mlima마을의 촌장님이 하루는 나에게 조심스레 물으셨다. 


“하나, 너 우리 딸 파투마Pathuma랑 같이 지내볼래? 걔가 이제 열네 살이라 씻고, 밥하고, 다 할 줄 알아.”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파투마한테 물어봤어요? 그래도 애인데 엄마, 아빠랑 지내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 

“거기가 파투마가 아침에 학교 가기도 편하고, 우리도 식구가 너무 많은데 많아서 걔는 오히려 너네 집에 살면 맛있는 것도 더 실컷 먹고 말이야, 하하하”

  

내 눈에는 아직 마냥 어린아이 같고, 같이 살게 되면 내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는 것인데, 과연 내가 잘 키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종종 마을에서 아이들을 불러 주말이면 옥수수, 감자, 그리고 고구마 등을 삶아 먹거나 간단한 요리를 해 먹곤 했지만, 내가 데리고 살았던 적은 없었다.   


 ‘나를 아동 착취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는 마을 사람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염려가 되었다. 


망설이는 나의 마음을 잡아준 것은 파투마의 어머니와 파투마 본인이었다. 파투마 어머니, 그러니까 음리마 촌장님의 사모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고 안정된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나, 걱정하지 마. 파투마가 집에서도 잘했기 때문에, 거기 가서도 말 잘 들을 거야. 어떤 게 걱정이 된다는 거야?” 난 어머니의 말씀에 대답은 않고 파투마를 쳐다 보고는 물었다.   

“파투마, 너 정말 괜찮아? 엄마 보고 싶다고 우는 거 아니야?”  

“아이, 하나~ 키키키키키히히히히 난 괜찮아요!!!”  


그렇게 파투마와 나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나의 온갖 걱정과 다르게 내가 파투마와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제 너 좀 쉬어도 되겠다! 파투마는 좋겠네, 하나랑 거기 그 예쁜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서? 응?” 하며, 파투마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의 동거 소식(?)은 온 동네에 이미 쫙 퍼졌고, 그 핑계로 동네 아이들은 아침 등교 길에 파투마를 기다린다며, 집 앞에 몰려들곤 했다. 


파투마와 함께 살면서 이제 내 몸 하나만 생각해서 대충 끼니를 때울 수가 없었다. 두둑이 먹을 것을 늘 사두었다. 고백하자면 난 정말 마을에서 우리 이웃들이 해주는 음식이 너무 내 입맛에 맞았다. 마을 주민들도 내가 워낙 뭐든지 잘 먹는 것을 알아서 내가 지나가면 나를 불러 밥 먹고 가라고 하곤 했다. 어쩔 때는 하루에도 두 군데에 서서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고, 못 먹으면 반찬이랑 밥을 싸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담아 주기도 하셨다. 이제 그러던 시대는 지나갔다. 집에서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파투마와 함께. 

주방에서 요리 중인 파투마. 그녀가 유명 재즈 가수인 니나 시모네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인가? 

파투마와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침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우리는 이웃 아주머니께서 직접 만든 따끈따끈한 툼부와 Tumbuwa (바나나와 옥수수 반죽으로 만든 현지 도넛) 4개를 사 와서 우유나 차와 함께 아침으로 먹었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집에 함께 올라오고 시장에서 장을 본 신선한 재료들로 파투마와 함께 밥을 차려 먹었다. 집에 한 사람이 더 생긴 것뿐인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혼자 지낼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갑자기 정전이 되어 깜깜해져도, 파투마와 함께 촛불을 켜고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노트북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정말 꿀재미 중에 하나였다.      


파투마는 수줍음이 많고,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은 전형적인 말라위의 여느 아이 들이나 다름없었지만, 난 나에게 관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는 아이들보다 항상 말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용히 보고 있다가 먼저 손을 내미는 그런 속 깊은 아이였다. 그래서 더욱더 겁이 났었는지도 모른다. 파투마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투마와 지내면서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이런 기분일까?’하고 오버해서 생각해 본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마지막으로 말라위를 떠나기 전까지 4개월을 함께 지냈다.    


마을을 떠나기 전 날, 파투마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나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렵지만 꿋꿋하게 지내는 이웃집의 남매 양코Yanko와 주니어Junior, 그리고 파투마를 데리고 칠와(Chirwa) 호수로 놀러 갔다. 아이들은 한 번도 호수를 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좀바 산에서 마을 쪽을 내다보면 저 멀리 수평선 뒤로 뿌연 하늘빛 호수를 볼 수 있었다. 때론 안개에 묻혀서 안 보일 때도 있지만, 난 아이들에게 호수와 호수 안 쪽의 섬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이 여객선이 뒤에 보이는 작은 섬과 호수 밖을 이어주는 교통 수단이다. 


칠와 호수는 외부인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 크지 않은 잔잔한 호수이다. 호숫가 백사장 위에서 뜨거운 햇볕도 느껴보고, 처음으로 호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하고, 또 칠와 호수 안 쪽의 섬사람들이 허름한 모래사장 한쪽 (항구나 터미널 같은 것이 따로 없어서)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곧 마을로, 9남매가 부대껴 지내는 전기가 없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판타지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집이 가난해서 어린 나이에 벌써 산만한 짐을, 책임감을 짊어진 아이들을 보면 매일 데리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그건 나의 굉장한 이기심일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허상과 일상에 대한 불만을 가져다줄 수 있기에 늘 최소한으로 도움을 주거나, 외면해야 했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이니까, 조금 이기적이기로 했다. 


멀리 뛰어 오른 파투마와 나, 그리고 아직 뜀박질을 준비중인 양코 


내가 떠나는 당일에 파투마도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더 큰 짐을 챙겨 수도 릴롱궤로 떠났다. 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듯, 파투마도 그녀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새로운 일상은 우리가 함께 살던 시간과는 아무래도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날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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