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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Oct 31. 2020

야간 버스 길티 플레져 (Guilty pleasure)

나의 은밀한 즐거움

솔직히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처음에 무서워했던 야간 버스 여행을 나중에는 즐기게 되었다. 야간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무리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 불리는 말라위라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신변에 위험보다는 좀도둑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 좀도둑은 버스 기사나 버스 요원들을 포함하기에 혹여나 무슨 일이나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정말 서러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북쪽 지방의 도시를 가려고 하면 800km 달려야 한다. 면적만 보면 말라위는 우리나라랑 크기가 비슷한데, 말라위 호수 길이만 587km 달하고 우리나라보다 더 길쭉한 지도 모양을 갖고 있다. 좀바 Zomba 시내에서 저녁 8시 즈음 버스가 출발하여 다음날 새벽 5시 정도면 북쪽 지방을 대표하는 대도시 음주주 Mzuzu에 도착한다. 음주주를 가려면 야간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낸 한국 사무국에서는 어두운 시간에 활동가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삼가길 당부하셨는데, 나의 깜짝 커밍 아웃(?)에 놀라지 않으시길 바란다 (만일이라도 읽으신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시외버스를 타면 중소도시를 지나서 갈수록 ‘정차’ 구역이 있다. 잠깐 쉬기도 하고, 승객만 내려주고 태우고 바로 출발하기도 한다. 크게 보면 말라위도 비슷하다. 대신 여기는 정차 간격이 불규칙하고, 장거리 여행일수록 한 짐을 가득 싣고 타는 이들이 많기에 짐을 다 내리고 싣는 것만 해도 시간이 꾀 걸린다. 그러니, 800km를 달린다면 그저 예상 도착 시간 같은 것은 정해두지 말고, ‘한 숨 자고 해가 뜰 때 즈음이면 다 왔겠지.’ 하는 것이 심신에 좋다. 


야간 시간 시외버스 터미널의 모습 


난 3시간 이상의 장기 버스 이동을 할 때면 한 가지 습관이 있다. 절대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목이 엄청 마르면 한 번은 마시겠지만, 여기선 휴게소가 따로 없고 정차하는 곳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터미널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 번씩 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화장실이 존재는 하지만 피치 못하게 볼일을 봐야 하는 게 아니면 참는 것이 나을 정도로 그리 위생적인 시설은 아니다. 위생 상태는 두 번째 이유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짐이다. 때때로 옆에 앉은 사람이랑 친해지고 대화가 잘 통하면 그에게 맡기고 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처음 본 사람이기에 웬만하면 옷가지가 든 짐은 맡기고, 노트북과 지갑 등 중요한 것은 들고 내린다. 그러다 보니 그냥 물을 안 마시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참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양) 옆에 타는 승객들도 가지 각색이다. 말라위의 시외버스는 한 줄에 7명이 탈 수 있다. 한 줄에 세 열이 있는데, 오른쪽 열과 왼쪽 열에 두 개의 좌석이 있고, 가운데 열에 세 개의 좌석이 있다. 상상해보면 알겠지만, 비행기 안에서처럼 가운데 끼는 것이 제일 고통스럽다. 부녀자들은 항상 갓난아기부터 어린아이까지 애들을 데리고 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리는 한 좌석에 끼어서 앉기에 어쩔 때는 세 명이 을 수 있는 자리에 다섯 명이 끼어서 가도 할 말이 없다. 자리 값을 아끼기 위해서 한 명 자리 값을 내고 타는 엄마에게 무엇이라 할 것인가. 


버스에 타는 승객들도 다양하다. 이웃 국가인 모잠비크나 잠비아에서 물건을 떼다가 잔뜩 실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인도 있고, 시내 기숙사 학교를 다니며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고등학생도 있고, 타지에 둔 가족을 만나러 가면서 고향집에서 이것저것 가득 챙겨서 전해주러 가는 형제, 자매도 있다. 대게 말라위 사람들 중 상인이 아니라면, 대부분 큰 맘먹고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짐도 늘 한 보따리다. 또 언제 여행길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에 비해서 나는 길어야 일주일, 보통 주말을 맞아 놀러 가는 거라 짐이 간소했다.  


비록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을 감수해야 하지만 내가 야간 여행을 좋아하는 게 된 것에는 딱 그 시간에만 그리고 길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광활한 대지 위를 암흑 속에서 달리는 짜릿함은 마치 깜깜한 하늘 아래 빛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사이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다. 버스가 막 달리기 시작하면서 켜져 있던 버스 안 조명도, 엄마에게 보채면 우는 아이들의 소리도, 시내를 지나고 조명이 하나도 없는 도로를 한참 지나다 보면 어느새 버스 안도 고요해진다. 열린 창문 사이로 산뜻한 바람이 들어와 후끈한 버스 안을 식혀주고, 마을 곳곳 태우는 그을린 장작 냄새가 흘러 들어올 때도 있다


창가에 앉는 경우에 나는 얼굴을 살짝 밖에 내밀고 바람 냄새 맡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바람 실 오기가 되어 마치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명상의 기분에 젖은 채 몇 시간이고, 바깥 인위적인 빛도 소리도 없이 오로지 자연의 소리만 들으며 흙모래 길 위를 지나는 그 기분을 아는가? 눈을 감으면 엄마 생각, 어렸을 적의 내 생각이 나기도 하고, 순간 '여기가 어디지?' 하며 내가 가는 종착지가 어딘지 모르는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밤하늘을 보며 여행을 하면서, 긴장에 곤두선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아니, 내가 말라위를, 이 땅을 떠나게 되면 이 밤하늘과 선선하면서 묵직한 이 바람을 가장 그리워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 새벽이 오면 저 멀리 지평선 위로 해가 뜬다. 치텐제 (Chitenje 형형색색의 아프리카 전통천)를 몸에 돌돌 말고 새우잠을 자던 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난다. 한 밤을 같이 보낸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동지의식이 생기고, 남의 아이를 봐주기도 하고, 여행 내내 아껴왔던 음식들을 꺼내어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 맛에 산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해가 뜨고 있는 무렵의  버스 터미널


광활한 지평선, 듬성듬성 우직하게 서있는 바오밥 나무, 거친 땅 위 여백 위 색색 그러데이션으로 물든 하늘, 달빛에만 의존한, 다른 말로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바깥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내 마음은 또다시 충만해져 온다.  


   

노을이 지는 석양 아래  말라위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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