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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Nov 27. 2020

깊숙한 곳 어딘가에

#71.

100일 도전 71일째 

요가/명상 1시간

첼로 1시간 10분

독일어 20분

독서 30분 



대범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독일에 살아도 내가 여자라서, 내가 동양인이라서 내가 나라서 저 사람이 저런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들 때마다 너무나 작아지고 어디선가 모를 분노가 올라온다. 근데 조금만 거리를 떼고 보면 별거 아닐 수 있고, 저 사람은 나를 모르고 나도 저 사람을 모르기에 그럴 필요 없는데도 난 모르는 사람과의 갈등에서 늘 내가 잘 못 한 것 같다는 의식이 먼저 생긴다. 어쩌면 그 상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해버린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일 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랑을 주어야하는데.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면에선 도덕적 완벽주의에서 온 것일거고 (실수, 오해, 더딤을 용납하지 않는) 그리고 또 일부는 어린시절 함께 놀던 일진 (?) 친구들에게 왕따 당한 이후였을 것이다. 그래, 밑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밑보인다는 것은 그럼 무엇인가? 남들 눈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그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 


내 나이 열 넷, 만 열 셋이었다. 믿고 함께 놀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당시 왕따가 유행처럼 퍼지던 때였고, 난 원치 않게 내가 놀던 친구들이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이었고, 그 중 리더 여자아이는 우리 무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왕따를 주도했다. 난 내 순서가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우린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하나라고 믿었기에. 아무튼 그때 왕따의 경험은 내가 이후에 전학을 가서도 늘 여러 무리의 반 아이들과 어울려지내도록 나의 성향을 바꿔놓았다. 자동, 반자동으로 난 어떤 것도 싫어하는 것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다 맞춰주었으니 말이다. 


어떤 면에선 늘 여러친구들이 찾는 아이, 속이 너그러운 아이, 함께 있으면 즐거운 아이였지만 난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을 것이다. 나만 특이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닐 것이고, 어려움을 겪은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자랑스러운 과거도 아니고, 아니면 완전히 상담사나 현재 성공담의 과정과 시련의 일부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공개를 하는데, 그 중간에 아직도 그 경험과 느낌을 마주하고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없다. 우린 결과를 알고 싶어하니까. 


그럴때 도움이 되는 것이 또 다시 요가, 첼로, 그림그리기 등 나 자신을 마주하고 표현하는 그런 경험이다. 대화하고 상담사를 찾는 것도 매우 좋다. 근데 난 아직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만큼 내 일상에 이 경험이 그리 치명적지 않았고 (방어 메커니즘을 너무나 잘 스스로 만들어놓았다), 지금 이걸 나 스스로 마주하고, 나의 애인과 함께 살면서 그가 발견하고 그가 지적해주고 또 감싸주며 대화하면서 푸는 것 만으로 난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누가 어떤 이가 타인의 이런 치부와 심리적 트라우마(?)를 당연히 받아줄 수 있겠는가? 정말 고맙고,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함을 매일 느낀다. 솔직히 나라면 나같은 파트너를 벌써 떠났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와 비슷한 경험, 불안, 또는 기억에 때때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 내면을 표현하고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활동들을 찾아서 하는 것을 조언하고 싶다. 내가 조언을 할 위치는 아니다. 나도 알아가고 있으니. 또한 중요한 것은 나는 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고, 내가 내 삶의 컨트롤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너무 자주 들어서 당연하지만 아직 실천해본 적 없다면, 지금이 그 기회다. 나를 더 사랑하고, 독특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보여주는 취미, 활동들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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