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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Mar 16. 2021

'마치 내일이면 더는 듣지 못할 사람처럼 들으십시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by 헬렌켈러

댕크타게북 독서모임의 첫 번째 책 읽기가 끝이났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읽은 책의 씨앗 문장을 발췌하고, 

최종 감상문을 써보고 서로 공유하기로 했다. 

우리 모임은 나와 두 명의 탈북 여성 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더 많은 여성들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온라인 모임에 함께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적극적 의사 표현 부탁드린다. ✨�




처음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읽은 것이 초등학생교에 다닐 때였다.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너무 어렸을 때 접해서 성인이 된 후 내 머릿 속에 남은 그녀는  '어려운 장애를 극복하고 수 많은 책을 쓰고, 우리 사회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권리를 증진시키는데 큰 힘을 쓴 위인'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위인: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


성인이 되어 거의 20년 만에  그녀의 전기를 다시 읽고나니, 

우선 헬렌 켈러 여사가 어린 시절 내가 범접할 수 없이 그저 우러러만 볼 수 있는 

위인, 아니 그것을 넘은 초인처럼 근접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깨달았다. 

10살짜리 꼬마에게 '위인전 시리즈'에 실린  모든 사람들은 일단 '어른'이었고, 나와 몇 살차이인지 계산도 불가능했고, 그래서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역한 방부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이 '위인'들은 책에만 존재하고 실제 살면서는 만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서른이 되고, 헬렌 켈러 여사의 자서전을 다시 읽어보니, 

어머나, 그녀는 이 전기를 스물 세살에 집필했다!

 (지금 내 나이가 서른 한 살인데�) 


그녀의 전기를 읽어보면, 무려 생후 19개월 때부터 

그녀가 그녀의 삶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개월이면 만 두 살이 되기도 전이 아닌가? 난 내 생애 최초의 자아가 느껴진 경험은 만 6세, 5세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어렸을 적 읽은 위인전은 헬렌 켈러 여사가 직접 쓴 전기를 각색하여 8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의 사회적 업적과 공헌들을 기록한 책이었다는 점에서 그 구성 자체가 헬렌 켈러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독자에게 큰 차이를 주는 것 같다. 업적만 모아 놓은 생애는 위인전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나라는 소시민과는,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었다면 더군다나, 너무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그녀의 전기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어린 시절 내가 '위인'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된 그 시점, 생후 19개월...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임이 틀림은 없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이 책에서 책 분량의 90%를 차지하는 1부는 그녀가 살아온 생애를 설리반 선생님과의 만남과 하버드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 준비 및 시험 과정,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그녀의 성장 과정과 몇몇 미국 유명 인사들과의 만남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녀의 입으로 그녀의 생생한 경험을 그녀로부터 듣는데 그 속엔 우리 보통 사람같은 희노애락, 예상치 못한 좌절과 실망 등이 다 담겨있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너무 상세하게 모든 순간 순간들을 나눠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100년도 더 전에 시청각 장애의 조건에도 상상하고 소통하고, 배우는 열정을 놓을 줄 몰랐다는 점에서 아마 그리고 2부에서 그녀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건네는 동시에 자신의 답변도 내어놓고 있다. 

.

.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독서 모임의 참가자 강 선생님은 한 때는 어둠 속에 사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 속 막연한 고통의 경험에 대해서 다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생각이 바꼈다고 하셨다. 상황에 대한 비유로서의 어둠이 아니라 육체적, 생애적 경험으로서의 어둠 속에서 의지나 마음의 변화로, 또는 상황의 변화로 빛으로 나아가려해도 나아갈 수 없는 그 상황을 어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난 강 선생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헬렌 켈러는 만약 다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3일 동안 한 순간 한 순간 아껴서 무엇을 우선순으로 할 것인지, 볼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그녀는 그녀의 반려견, 학교와 이웃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가족들을 실컫 볼 것이라 했고, 둘 째날은 미술관에 가서 예술 작품을 실컫 감상하고 싶다 하였다. 셋 째날도 자연에 가서 기차를 타며 바깥 풍경을 마음껏 보고, 강가와 숲에 가서 자연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미술관을 가는 것을 빼고는 학교, 집, 집 근처 숲 등 그녀가 보고 싶은 것들은 평소 일상의 삶에서 이미 그녀와 함께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 똑같은 질문은 매일 매일 빛을 보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물어보는 거 자체가 힘들다. 보지 못하는 어둠의 경험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볼 수 있을 때, 들을 수 있을 때 더 이상 그게 가능하지 않을 만큼 그 능력을 발휘하고 감사하라고 이야기한다. 빛을 봄에도 어떤 이들은 빛을 찾지 못한다. 들을 수 있음에도 어떤 이들은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누구나 한번 즈음 어떨 때엔 이런 내 모습을 발견 할 것이다. 헬렌 켈러 여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어둠 속에서도 감각으로, 사랑으로, 용기로 그녀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기억한다고 말이다. 


이번에 그녀의 책을 보며, 생전 그녀가 남긴 스피치 영상을 보았다. 느리지만 또박 또박, 그리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힘과 생명력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내내 소름을 돋게 했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하며 함께 무대로 나오는 온화한 나이 든 여성, 바로 설리반 선생님이다! 글로만, 책에서만 보던 영웅을 만들어낸 숨은 영웅,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은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었기에 난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뿜어낸거 같다. 실제로 헬렌 켈러는 설리반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부턴 책을 쓰는 활동도 뜸해졌고, 오랜 시간 옅어지지 않는 상실의 슬픔에 잠겨있었다고 한다. 


https://www.lionsclubs.org/en/resources-for-members/resource-center/hellen-keller 

헬렌 켈러의 라이온스 국제 클럽 연설 영상 




그러던 차에 나는 2020년 소셜미디어 몇곳에서 그녀의 삶이 사기라고 주장하는 몇몇 미국 개인들의 게시물/영상을 보았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감히 어떤 개인들은 존중과 진정성 없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그렇게 산산조각 낼 수 있다는 것인가? 놀라웠다. 사실/ 거짓 여부를 떠나서 그런 '행위' 자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 태도를 보자면 진지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초등학생 때 격었을만한 힘 센 애가 시덥잖은 이유로 약한 아이를 약올리고는 자랑스러운 줄 알고 히히덕 거리는 모습과도 같았다. 


동시에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게 사실이면 어떡하지? 


그녀의 책을 읽고, 자서전을 읽고, 숟한 눈물과 위안을 받았을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그 어둠이라는 것이 비장애인으로서, 비억압자로서 못 느껴본 나에게도 가슴이 매여지고 당혹스러운데 그게 사실이면 그들에겐 어떤 충격이 될까? 


이에 대해 반박하는 한 영국 여교수의 뉴스 기사가 올라왔다. 그녀 역시 헬렌켈러처럼 시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분이였다. 그 분은 격노와 분노를 억눌러가며 요목조목 감히 그녀의 삶을 사기라고 부른 이들에 대해 비판하였다. 내 마음이 다 시원하다 못해 울컥해졌다. 


https://metro.co.uk/2021/01/17/the-helen-keller-conspiracy-theory-is-ableist-satire-or-not-13895724/


슬프지만 그게 오늘 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반전, 자극적인 것,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확고한 모범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갖추고 있는 헬렌 켈러 여사는 그 타겟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시니컬 하게 한 투고 기자는 이야기했다. 


다시 돌아가서, 위인도 인간이다. 우리가 이상화하고 미화하는 그런 깨끗한 사람은 종교인들 중에도 찾기가 힘들다. 그걸 찾아서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도 아니다. 어떤 근거도,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조건에 대하여 (시각 장애, 청각 장애가 무조건 같은 수준으로 장애를 갖는 것이 아니며, 법적으로 판명이 나는 수준과 실생활의 역량 수준에도 격차가 있을 수 있다.) 무지한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것은 정말 심하게 말해서 역겹고 불쌍하다. 그래도 그녀의 부모님이 당시 식민 무역에 일조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어린 헬렌의 교육과 공부에 전적으로 지지를 해 줄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차후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이유로 특정 집단과 특정 시간 가가웠다는 것 등은 숨길 필요도 없는 사실이며, 이런 점은 시대를 읽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헬렌 켈러 여사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간단한 것 같다. 


나는 해낼거다. 당신은 어떠한가? 나와 함께 할텐가?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처음으로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헬렌켈러법이 제정되었다. 아직 그 내용이 다양하진 않지만 우리나라 법률에 처음으로 '시청각' 장애라는 이름이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애하는 시민들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게 참 많은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책으로 또 삶으로 더 나누고 배우고 함께하는 동지 시민이 되고 싶다.


http://www.goodnews1.com/news/news_view.asp?seq=92245



✨씨앗 문장 발췌✨


1부  

    우리는 마음속에 이런 걸 표현하고 싶다고 미리 그려놓은 게 있다. 그런데 막상 옮기려고 하면 마치 퍼즐 판의 크기와 그림에 딱 들어맞는 퍼즐 조각을 찾기 힘든 것처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생가에 딸 들어맞는 낱말이 쉬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딱 들어맞는 표현을 찾아 헤매곤 한다. …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내 고유의 생각이 내 안에서 삭혀져 표면 위로 솟아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  <얼음나라 임금님> … 나로 하여금 글 쓰는 행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었떤 것이다. p.213  


    그때마다 나는 단어가 됐든 문장이 됐든 다시 말하기를 반복하며 때론 몇 시간이고 내 목소리가 정확하게 울려나올 때까지 계속 되풀이한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실망하고 금세 지쳤다. … 나는 정말이지 내 성취를 보고 기뻐할 가족들의 모습을 쉬지 않고 그렸다.   


    11장- 돌아보면 모든 일이 이 여행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의 온갖 보물이 발아래 펼쳐지고 어딜 가나 즐거웠으며 배울 것은 천지에 널려 있었다. 나는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으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자신의 모든 존재를 하루에 모두 쓸어 담으려는 조그만 하루살이 벌레처럼 스물네 시간이 부족하다 싶을 만큼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았다. 


    (독일인들에 대하여) 듣는 저들보다 제가 먼저, 자신의 영혼 속에 불타오르는 생각을 토해내지 않고서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시민전쟁에 관하여, 투쟁에 관하여) 이들이 끊임없이 치러야만 하는 투쟁이 온갖 장애물에 맞서는 헛된 노력, 싸움의 연속일 뿐임을. 결국 이들에게 있어 삶은 노력과 기회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불균형을 건너는 것임을.   


    p.393 (여러 유명인사 친구들을 둔 것에 대하여) 세상만사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어둠과 침묵 속에서 만난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그러하다. 어떤 처지에 있게 되더라도 나는 상황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의 위선에 대하여) 어떤 손은 태양광선이라도 감춘 듯 가슴까지 따뜻해진다. … 어떤 손은 그렇게 무례할 수가 없다.   


    (허턴씨에 대하여) 그의 사랑과 관심은 그 범위가 실로 광범위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까지 미쳤으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했다.  

2부

    인간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어떤 사건, 어떤 경험, 어떤 만남으로 채워야 할까요?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어떤 행복, 어떤 슬픔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친절함과 활력, 그리고 몇 날, 몇 달, 몇 해일지 모르는 미래의 날들 앞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감각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주어진 날들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시각이나 청각이 손상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축복받은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합니다. 눈과 귀는 집중하지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하면서 모든 풍경과 소리를 흐릿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둠은 시각의 소중함을, 정적은 소리를 듣는 것의 즐거움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 눈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 아주 적은 것을 볼 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보지 못하는 나는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것을 수백 가지나 찾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색이나 품격, 움직임을 보면서 시력의 기적을 고마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마치 내일이면 더는 듣지 못할 사람처럼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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