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돌봄은 필요하다
베를린 집 거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지난해 5주 동안 아프리카 세네갈에 있었다. 20대 청춘의 1/3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보냈는데, 이번엔 2018년 방문 이후 처음 간 것이었고, 특히 서부 아프리카는 처음이었다. 이미 여러 아프리카 나라들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기후와 문화 등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도 뚜렷했다.
(가정의) 식문화의 일부를 이야기해보자면, 말라위는 주로 시마 Nsima (옥수수/카사바 전분 덩어리를 끓여서 죽 보다 단단해질 때 덩어리를 곱게 빚어낸 음식)를 두세 가지 정도 반찬과 함께 먹는다. 이 시마는 주로 손으로 덩어리를 손에 알맞게 떼낸 후 손으로 빚어 약간의 공간을 오목하게 만들어 반찬을 그 안에 넣어 먹는다. 반면, 세네갈에서 주식은 한국처럼 밥이다. 밥을 야채, 고기 또는 생선을 밥 위에 얹거나 섞어서 비빔/볶음밥 등의 단식으로 많이 먹는데, 반찬과 주식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주로 큰 접시나 쟁반을 가운데 두고서 가족이 함께 나눠 먹는다.
세네갈에서 파트너의 가족은 대가족이다. 가족의 거주지는 동시에 가족 멤버 몇몇이 운영하는 가게도 겸해있는 건물이다. 그만큼 한 번 식사를 준비하면 가족뿐만 아니라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같이 먹는다. 그래서 모오든 사람들이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한 번 같이 식사를 하면 최대 열 명이 가운데 밥을 두고 나눠 먹는다.
나는 손님이고, 또 이렇게 한 쟁반에 나눠 먹는 것이 익숙하지 모르기 때문에 때론 목욕탕에서 쓸 법한 작은 원목 의자를 내어주는데, 바닥에 앉아서 먹기 때문에 사실, 의자에 앉으면 높이 때문에 먹는 것이 더 불편하다. 그런 육체적 불편함 뿐만 아니라 다 같이 먹는 자리에서 나 혼자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냥 바닥에 같이 앉아서 먹었다. 이렇게 사람들과 먹으면서 알아차린 것이 있는데, 그건 아이들을 위해서 주변의 어른들이 (꼭 엄마나 아빠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먹는 자리 바로 앞에 고기나 생선 덩어리, 야채를 밥 위에 얹어 놓는 것이다. 또 식사를 일찍 끝낸 사람이 떠난 자리에 아직 못 먹은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면 먼저 먹고 있던 사람들이 이들에게도 먹을거리를 그들 자리 앞으로 옮겨 놓는다. 나는 비록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손님이란 이유로 살코기나 내가 좋아하는 야채를 누군가 내 자리 앞에 두곤 했는데, 이 일은 어떨 땐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도 일어났다. 너무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행동해서 초반엔 매번 고맙다는 말을 하다가 나중엔 그냥 나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 마찬가지로 내 옆에 앉게 된 아가들에게 음식을 놓아주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사소하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생활 속 문화를 발견하고, 식사를 하는 행위와 식사를 하며 보내는 시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각자가 먹을 만큼 음식을 덜어서 자기 그릇, 접시에 담아서 먹을 때 느낄 수 없는 돌봄이 이 나라의 식사 문화에는 소리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여기저기 이런저런 책임감은 점점 늘어나는데 돌봄을 받는 경험이나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래서인지 돌봄을 받는 기분마저도 아직 미성숙하거나 어른으로서의 준비가 덜 된 것처럼 여기곤 했다. 돌봄 받는 경험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과 그곳에서 나의 위치와 무관하지 않기에 어쩌면 우리에게 돌봄을 받을 이유를 찾지 않는다면 자주 경험 못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곳의 문화와 생활 방식과 다른 나라나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은 현지인의 돌봄을 허용하고 더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현지인의 눈에 여행자인 나는 아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 많다. 돌봄을 받으며 나는 감사와 사랑의 표현과 언어 역시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나 역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를 더 폭넓고 자유롭게 맺고 싶단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리고 아무래도 당연한 것이란 건 없는 것 같다.